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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Mar 09. 2021

까만 머리 앤은 왜 주식에 빠졌을까

하는 것과 하는 자들을 바라보는 것의 차이

어른이 되어서도 빨간 머리 앤은 내 마음속 우상이었다. 그녀처럼 햇살 같은 존재로 살다가 길버트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내 꿈이기도 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내 영어 이름도 앤(Anne)이라 불렀다.

하지만 현실 속 내 남편은 스물아홉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서른넷에 공부를 더 하겠노라고 유학을 가 부인의 뒷바라지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길버트는 의사가 되어서 앤과 결혼했지만 난 의사를 만들겠다고 남편을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던 몇 년 동안은 그래도 여전히 내 마음속엔 빨간 머리 앤이 살고 있었다. 나이 서른에도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묻는 남편에게 "빨간 머리 앤 열 권짜리 전집!"이라 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앤은 내게 세상 큰 행복의 메시지를 전해줄 것만 같았다.

날 웃게 만드는 빨간머리 앤 전집이 여전히 우리집 책장을 지키고 있다!


스물넷부터 학교 밖에서 글쓰기 지도를 하던 내 일은 남편 중국 유학을 따라가서도 지속되었다. 아이들과 더불어 책 읽고 관찰하고 밖에 나가 놀고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그때 내 모습은 여전히 꿈꾸는 소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적어도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둘째가 태어나고 아이 양육은 고스란히 내 담당이었고 더욱이 외국이라 애 봐줄 부모님도 곁에 없어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러 나갈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유학생이고 이제 식구까지 한 명 더 늘었으니 뭔가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집에서 아이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여러 고민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젖먹이 아이를 업고 뭘 하는 일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로 한국 주식이 선택되었다. 물론 첫 시작은 남편의 권유다. 빨간 머리 앤이나 좋아한다고 냉철한 현실 감각이 너무 없다는 나한테 세상을 배우려면 주식을 해야 한다며 남편은 나를 꼬드겼다. 그때 상황은 설득이 아니라 정말 꼬드김이라고 해야 맞다. 주변 친지들이 주식으로 망한 걸 봐와서 주식 이꼬르 패가망신이라고 생각하던 난 쉽사리 고집을 꺽지 않았고 남편은

"우선 삼백만 투자해봐. 까먹어도 뭐라 안 할게. 해봐야 세상 흐름을 배울 수 있어. "

난 나름대로 세상 흐름에 발맞추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넌 우물 안의 개구리야. 주식을 해봐야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3의 물결> 같은 흐름을 이해할 수 있어." 남편은 내가 어려워하는 분야를 콕 집어 지적을 했고 결국 내 무지함에 백기를 들고 주식 계좌를 개설하며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은 남편의 권유대로 한국 돈 삼백만 원이었다. 정확히 반으로 나눠 대웅제약과 LG 두 종목을 샀다.

일주일 만에 대웅제약은 오십만 원, LG는 삼십만 원의 수익을 거뒀다.

그 전엔 팔십만 원을 벌기 위해 난 많은 노동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젖먹이 애를 떼어놓고 수업을 하러 갔다가 불은 젖을 다시 먹이러 정신없이 뛰어다니기를 일주일에 세 번씩 꼬박 한 달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앉은자리에서 쉽게 벌었다고 생각하니 노동이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졌다. 내가 힘들여 돈 벌러 다닐 필요 없이 컴퓨터에 깔린 주식 앱이 내 대신 일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난 차츰 주식의 마력에 빠져갔다.


중국과 한국의 시차는 중국이 한 시간 느려 아침 8시가 되면 한국 주식이 개장을 한다. 남편을 학교에 보내고 큰아이 또한 8시 전 유치원 등교라 데려다주고 나면 8시 한국 주식장에 맞춰 집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난 그렇게 날마다 땡순이가 되어 모니터 앞에 앉았다. 주식 시장이 끝나는 중국 시간 2시까지는 모니터 앞과 둘째 아이 육아를 번갈아가며 정신없는 엄마로 살았다. 왠지 그 앞을 완전히 떠나면 나도 모르게 주식 시장에서 도태될 것만 같은 불안이 엄습해서 아이한테 미안한 날도 많았다.

주식을 하면서 동호회 카페에 가입을 했다. 그들이 추천하는 종목은 대형주보다 단타 치기 쉬운 소형주들이 많았다. 주식을 하다 보니 처음 투자를 하고 세상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에서 멀어지며 도박성 종목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동호회 추천주는 날마다 바뀌고 그걸 따라서 투자하다 보면 붉은 바다와 푸른 바다를 오가며 서핑보드를 타고 파도타기 하는 기분이 들었다. 파도를 무서워하는 내겐 짜릿함과 스릴이 아닌 공포였다.

그렇게 난 날마다 미쳐가고 있었다. 다른 일상은 모두 2시 이후로 넘겨 버리고 주식 창을 보며 널뛰듯 오르락내리락하는 주가에 따라 기분마저도 롤러코스트를 타듯 변동이 심했다. 수익이 생기면 주식을 권유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 손실이 큰 날에는 주재원 부인이 아닌 걸 원망했다. 한마디로 중심이 없는 감정 통제 불능자가 되어갔다.


주식 시작 한지 1년이 지나 2010년 한 해를 마감하며 난 내 단타 인생도 같이 마감했다. 그 해 11월에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연평도 바다가 불바다가 된 날 전쟁이 일어날 거 같은 분위기 속에서 주식에 빠진 사람들은 주가와 환율이 미친 듯 널뛰기하는 모습에 공포를 느꼈다. 나 또한 사람이 죽고 다친 것에 마음 아파하기보다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에 더 염려를 했으니 얼마나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었던가.

봄꽃이 피었는지 여름 태양이 이글거리는지 나무들이 가을의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는지 주식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줄 몰랐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주식이 나를 피폐하게 만든 것만은 아니다. 많은 부분에서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주식에서 수익을 제법 낸 나는 그 돈으로 여행을 다녔다. 유학생이라 해외에서 또 다른 해외로 여행을 간다는 건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데 주식 덕분에 우리 가족은 5성급 호텔에서 마음 편하게 묵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그 전에는 전염병이 돈다고 하면 그저 두려움과 공포감에 국가의 처분만 기다렸는데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 돈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거다. 주식을 하기 전엔 적은 돈도 아끼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느라 진정 소중한 것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주식을 하면서 눈앞에서 큰 단위 숫자가 오고 가는 것을 경험하고는 소소한 돈의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난 지금도 여전히 주식을 한다. 다만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투자를 하기 때문에 주가의 오르 내림에 정신줄을 놓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이 주식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주식에서는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아라"는 말이 있다. 매수와 매도 시점을 절묘하게 맞춰야 좋은 수익을 낼 수가 있다.

사람마다 전성기가 다르듯이 주식도 종목마다 오르는 시기가 다르다. 몇 년을 한결같은 주가로 갑갑하게 하는 종목도 있지만 때가 오면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앞으로 전진한다. 둘 다 세상 풍파에 변동이 심하고 그 안에서 어떤 자세를 갖고 내 모습을 지켜 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그리고 가치를 알아주는 이를 많이 만나면 제 빛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주의할 점은 절대 단타처럼 한 방에 인생 역전하려고 하면 안 된다. 주식을 한 때 도박처럼 대했다가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지는 걸 직접 겪은 이로서 인생 한 방이다 이런 자세는 매우 위험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 나에게 "주식을 모르던 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주식시장으로 뛰어들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예스"라고 답할 것이다.

다른 긍정적인 효과를 다 떠나서라도 세상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준 건 정말 나에게는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지금같이 너도 나도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호황기였다면 아마 꿈꾸는 낭만적인 빨간 머리 앤도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인 성격이니 개미 군단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주식을 한다고 모든 기준이 돈에 집중되어 낭만을 잃는 건 아니다. 가치 종목에 목적이 뚜렷한 투자를 한다면 여유 있는 주주가 되어 오히려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된다.

나 또한 여전히 내 대신 일해주는 주식 앱 덕분에 오늘도 빨간 머리 앤을 숭배하며 까만 머리 앤으로 살길 꿈꾸어 본다.

하는 것과 하는 자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정말 큰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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