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신년운세
바야흐로 봄이다.
내가 머물러 있는 말레이시아엔 사계절 온통 여름뿐이지만 한국 커뮤니티를 통해 새싹처럼 간질간질한 봄소식을 여기저기서 전해 듣는다.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려요.”
“말갛게 쑥이 돋아서 쑥 뜯으러 가요.”
“봄바람이 코 끝으로 들어와 봄 향기 맡으러 갑니다.”
“봄동이 파릇파릇한 게 정말 먹음직스럽네요.”
봄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연둣빛의 싱그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게 가슴을 막 설레게 한다. 살짝 눈을 감고 봄이란 한 글자만 떠올려도 어디선가 봄바람이 훅 불어와 봄볕이 있는 어딘가로 나를 데려가 줄 것만 같다.
난 봄 맞을 채비의 하나로 신년운세를 본다.
양력 1월 1일부터 새해지만 음력이라는 시간 안에서 자란 습성 때문인지 정월대보름이 지나야 신년을 영접한 몽롱함에서 깨어나 정식 새해를 맞은 느낌이 든다.
교회에 다니는 내 가까운 지인들은
“점 보지 말아라. 미신을 섬기면 안 된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이런 말로 은근히 나를 압박한다.
그렇다고 점을 보는 이유가 꼭 내 운명을 점술가에게 몽땅 맡긴다는 의미로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난 그들을 신성시 여기진 않는다. 내가 보는 점들은 대부분 학문적으로 역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봐주는 인간 세상의 통계라서 신의 영역엔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끔 그들의 조언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 어떤 의미로 보면 정신과 의사한테 상담받고 난 후의 느낌이라고 할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새 마음을 갖고 무얼 시작하게도 해준다.
올 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정월 대보름이 막 지나고 암자에서 요양 중인 역술가한테 신년운수 상담을 받기로 했다. 왠지 절에서 기거하고 있다고 하니 스님이 아닌데도 성스러운 느낌이 조금 들었다.
전화 상담을 시작하기 전 남편한테 궁금한 게 있는지 물었다.
“당신 글 써서 대박 나는지 물어봐. 하하.”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작년 일 년 내내 코로나로 인해 중국 출장을 가지 못한 나는 집에서 자택 근무를 하느라 바쁘긴 했지만 몸을 움직이며 하던 열정을 쏟을 곳이 없어 늘 허전했다. 테니스, 요가, 배드민턴 세 가지 운동을 하는데도 정신적으로 충족이 안돼서 그런지 빈 깡통처럼 겉만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았다. 정신이 허해지니 갑자기 내 나이에 집중이 되면서 늙어감이 두려웠다.
몇 달을 머릿속이 허무의 상념들로 뒤엉켜 복잡함의 극치로 내 달았을 때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 때 사춘기 소녀 시절엔 산속에 틀어박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막상 세상과 섞여보니 난 조용히 초야에 묻혀 글 쓰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못되었다. 사람들과 북적거리며 어울려 사는 삶을 너무 사랑했다. 그래도 나이 들고 은퇴하면 언젠가 글 쓰기를 업이라 생각하고 꼭 하리라고 막연히 마음은 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이 서둘러 올 줄은 몰랐다.
뭔가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노트북 하나 달랑 식탁 위에 펼쳐 놓고 맨날 틈 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밥 하다가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말들이 불현듯 생각나면 핸드폰에 메모를 했다. 나이 드니 생각이 제자리에 붙어있질 못하고 연기처럼 흩어졌다. 글을 다 써 놓고도 마음 한 켠이 불편해 다시 앉아서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은 밥 먹은 후 치우지 않은 반찬 옆에서, 어떤 날은 빨래를 널다 말고, 어떤 날은 싱크대에 설거지를 수북이 쌓아 놓고도 노트북에 타닥타닥 글자를 치고 있노라면 그냥 그 시간에 몰입되어 주변에 흐트러진 상태가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하루는
“당신 쓸데없는 짓 하는 거 같다. 앉아서 글만 쓰고. 맨날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거랑 뭐가 달라.”
듣고 보니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도 예전에 기타 치는 남편한테 베짱이처럼 논다고 뭐라고 했었으니.
내 입장에서 기타리스트는 에릭 클랩톤 정도는 되어야 연주 자격이 있는 거고, 남편 입장에서는 조앤 롤링 정도는 되어야 글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서로 좋아하는 분야에 관심이 없고 존중이 없는 상태에서는 상대방이 뭘 집중해도 그게 돈이 안된다 싶으면 한낱 쓸모없는 취미 정도로 간주해 버리고 마는 게 인지상정이다.
“나 꼭 책을 내고 말 거야.”
애초에 큰 욕심 없이 시작한 자기 위로의 글쓰기가 남편의 한 마디에 갑자기 <조앤 롤링의 발 끝에는 따라가 보리라>는 포부를 보이고 말았다.
이런 다짐이라도 내뱉고 나야 글 쓸 자격이라도 주어진다고 생각한 걸까?
역술가 선생님한테 신년운세를 다 보고 마지막으로 히든카드 한 장을 딱 꺼내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글을 쓰고 싶은데요. 괜찮을까요?”
“설마 하던 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건 아니죠?”
별생각 없이 물어봤는데 내가 전업 작가로 나서겠다고 했다간 큰 일 날 분위기다.
“아뇨. 하던 일 계속하면서 글 쓰기도 하려고요.”
“네. 글 쓰세요. 대신하고 있는 일 계속하면서 글을 쓰면 됩니다.”
“저 책을 내면 잘 팔릴까요?”
“극소수의 마니아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들은 게 아닌 전화 통화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어쩜 저렇게 솔직하고 딱 부러지게 말해 줄까 라는 원망도 살짝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화를 끊자 남편이 물었다.
“뭐래?”
“응. 글 쓰래.”
다른 부연 설명은 해 봤자 다시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받을까 두려워 내 글쓰기 행위를 합리화시켜 버리듯이 이 한 마디만 툭 던졌다.
그냥 소수도 아닌 극소수라고 발음한 역술가의 말을 그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야 앞으로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정해진 운명이라서 타당한 자유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소리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머지않아 오십을 맞을 내 인생은 이제 가을로 접어들었다. 내 앉은자리가 앞으로 추레하지 않으려면 그동안 일구고 가꿨던 것들을 잘 보존하고 수확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내 인생은 봄을 맞은 것처럼 설렌다. 노트북을 켜고 하얀 종이 같은 빈 공간을 들여다보면서 무슨 이야기로 채워야 할까 고민스럽기도 하지만 그 고민하는 시간들이 고통이 아닌 나를 토닥토닥 위로하는 시간으로 느껴진다. 내가 쓸 문장들이 해리포터처럼 유명해질 글이 아닐지라도 봄바람처럼, 혹은 봄햇살처럼 사람들 마음에 가볍게 내려앉아 한 움큼의 웃음이 되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의 극소수 마니아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