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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Mar 03. 2021

나의 극소수 마니아들을 위해

봄맞이 신년운세


바야흐로 봄이다.

내가 머물러 있는 말레이시아엔 사계절 온통 여름뿐이지만 한국 커뮤니티를 통해 새싹처럼 간질간질한 봄소식을 여기저기서 전해 듣는다.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려요.”

“말갛게 쑥이 돋아서 쑥 뜯으러 가요.”

“봄바람이 코 끝으로 들어와 봄 향기 맡으러 갑니다.”

“봄동이 파릇파릇한 게 정말 먹음직스럽네요.”

봄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연둣빛의 싱그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게 가슴을 막 설레게 한다. 살짝 눈을 감고 봄이란 한 글자만 떠올려도 어디선가 봄바람이 훅 불어와 봄볕이 있는 어딘가로 나를 데려가 줄 것만 같다.



난 봄 맞을 채비의 하나로 신년운세를 본다.

양력 1월 1일부터 새해지만 음력이라는 시간 안에서 자란 습성 때문인지 정월대보름이 지나야 신년을 영접한 몽롱함에서 깨어나 정식 새해를 맞은 느낌이 든다.

교회에 다니는 내 가까운 지인들은

“점 보지 말아라. 미신을 섬기면 안 된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이런 말로 은근히 나를 압박한다.

그렇다고 점을 보는 이유가 꼭 내 운명을 점술가에게 몽땅 맡긴다는 의미로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난 그들을 신성시 여기진 않는다. 내가 보는 점들은 대부분 학문적으로 역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봐주는 인간 세상의 통계라서 신의 영역엔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끔 그들의 조언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 어떤 의미로 보면 정신과 의사한테 상담받고 난 후의 느낌이라고 할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새 마음을 갖고 무얼 시작하게도 해준다.



올 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정월 대보름이 막 지나고 암자에서 요양 중인 역술가한테 신년운수 상담을 받기로 했다. 왠지 절에서 기거하고 있다고 하니 스님이 아닌데도 성스러운 느낌이 조금 들었다.

전화 상담을 시작하기 전 남편한테 궁금한 게 있는지 물었다.

“당신 글 써서 대박 나는지 물어봐. 하하.”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작년 일 년 내내 코로나로 인해 중국 출장을 가지 못한 나는 집에서 자택 근무를 하느라 바쁘긴 했지만 몸을 움직이며 하던 열정을 쏟을 곳이 없어 늘 허전했다. 테니스, 요가, 배드민턴 세 가지 운동을 하는데도 정신적으로 충족이 안돼서 그런지 빈 깡통처럼 겉만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았다. 정신이 허해지니 갑자기 내 나이에 집중이 되면서 늙어감이 두려웠다.

몇 달을 머릿속이 허무의 상념들로 뒤엉켜 복잡함의 극치로 내 달았을 때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 때 사춘기 소녀 시절엔 산속에 틀어박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막상 세상과 섞여보니 난 조용히 초야에 묻혀 글 쓰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못되었다. 사람들과 북적거리며 어울려 사는 삶을 너무 사랑했다. 그래도 나이 들고 은퇴하면 언젠가 글 쓰기를 업이라 생각하고 꼭 하리라고 막연히 마음은 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이 서둘러 올 줄은 몰랐다.



뭔가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노트북 하나 달랑 식탁 위에 펼쳐 놓고 맨날 틈 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밥 하다가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말들이 불현듯 생각나면 핸드폰에 메모를 했다. 나이 드니 생각이 제자리에 붙어있질 못하고 연기처럼 흩어졌다. 글을 다 써 놓고도 마음 한 켠이 불편해 다시 앉아서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은 밥 먹은 후 치우지 않은 반찬 옆에서, 어떤 날은 빨래를 널다 말고, 어떤 날은 싱크대에 설거지를 수북이 쌓아 놓고도 노트북에 타닥타닥 글자를 치고 있노라면 그냥 그 시간에 몰입되어 주변에 흐트러진 상태가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하루는

“당신 쓸데없는 짓 하는 거 같다. 앉아서 글만 쓰고. 맨날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거랑 뭐가 달라.”

듣고 보니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도 예전에 기타 치는 남편한테 베짱이처럼 논다고 뭐라고 했었으니.

내 입장에서 기타리스트는 에릭 클랩톤 정도는 되어야 연주 자격이 있는 거고, 남편 입장에서는 조앤 롤링 정도는 되어야 글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서로 좋아하는 분야에 관심이 없고 존중이 없는 상태에서는 상대방이 뭘 집중해도 그게 돈이 안된다 싶으면 한낱 쓸모없는 취미 정도로 간주해 버리고 마는 게 인지상정이다.



“나 꼭 책을 내고 말 거야.”

애초에 큰 욕심 없이 시작한 자기 위로의 글쓰기가 남편의 한 마디에 갑자기 <조앤 롤링의 발 끝에는 따라가 보리라>는 포부를 보이고 말았다.

이런 다짐이라도 내뱉고 나야 글 쓸 자격이라도 주어진다고 생각한 걸까?



역술가 선생님한테 신년운세를 다 보고 마지막으로 히든카드 한 장을 딱 꺼내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글을 쓰고 싶은데요. 괜찮을까요?”

“설마 하던 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건 아니죠?”

별생각 없이 물어봤는데 내가 전업 작가로 나서겠다고 했다간 큰 일 날 분위기다.

“아뇨. 하던 일 계속하면서 글 쓰기도 하려고요.”

“네. 글 쓰세요. 대신하고 있는 일 계속하면서 글을 쓰면 됩니다.”

“저 책을 내면 잘 팔릴까요?”

“극소수의 마니아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들은 게 아닌 전화 통화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어쩜 저렇게 솔직하고 딱 부러지게 말해 줄까 라는 원망도 살짝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화를 끊자 남편이 물었다.

“뭐래?”

“응. 글 쓰래.”

다른 부연 설명은 해 봤자 다시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받을까 두려워 내 글쓰기 행위를 합리화시켜 버리듯이 이 한 마디만 툭 던졌다.

그냥 소수도 아닌 극소수라고 발음한 역술가의 말을 그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야 앞으로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정해진 운명이라서 타당한 자유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소리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머지않아 오십을 맞을 내 인생은 이제 가을로 접어들었다. 내 앉은자리가 앞으로 추레하지 않으려면 그동안 일구고 가꿨던 것들을 잘 보존하고 수확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내 인생은 봄을 맞은 것처럼 설렌다. 노트북을 켜고 하얀 종이 같은 빈 공간을 들여다보면서 무슨 이야기로 채워야 할까 고민스럽기도 하지만 그 고민하는 시간들이 고통이 아닌 나를 토닥토닥 위로하는 시간으로 느껴진다. 내가 쓸 문장들이 해리포터처럼 유명해질 글이 아닐지라도 봄바람처럼, 혹은 봄햇살처럼 사람들 마음에 가볍게 내려앉아 한 움큼의 웃음이 되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의 극소수 마니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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