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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y 25. 2024

인상주의와 비트맵,
붓질과 브러쉬질

인상주의impressionism 또는 인상파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색채, 색조, 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 미술 사조이다.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폴 세잔 등이 있다. 

빛이 사물에 어떻게 비치는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는 풍경들을 빠른 붓터치로 잡아내려 했던 모네의 작품을 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비트맵 방식의 이미지를 이루는 단위, 픽셀이다. 디지털 이미지는 벡터와 비트맵 방식으로 나뉜다. 점과 선으로 이미지를 구성하는 벡터 방식과 네모 이미지인 픽셀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구성하는 비트맵 방식. 비트맵 방식은 효율적으로 이미지를 빠르게 표현할 수 있고 정교하고 화려한 표현이 가능하여 사진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마치 모네의 빠른 붓터치가 그의 그림을 이루는 하나의 단위인 것처럼, 비트맵 이미지는 인상주의 풍의 그림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수많은 픽셀들이 횡으로 종으로 이어져 이미지를 이룬다. 가까이서 보면 다른 색을 가진 네모들의 나열일 뿐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들이 하나의 형태를 만든다.


선과 면이 이미지를 구성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인상주의 그림들은 홀대를 많이 당했다. 임산부에게 좋지 않은 그림이라며 낭설을 퍼뜨리기도 하고, 자다가 일어나 빗자루로 그린 그림이라는 풍자가 난무했다. 이는 마치 디지털 페인팅이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전통 회화 작가들이 가졌던 비판적인 의견과 비슷한 모습이다. 타블렛이라는 기기가 생기고,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이 발명되고 나서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디지털 드로잉은 새로운 미술 사조가 되었다. 물리적 그림이 아닌, 실행 취소(ctrl+Z)가 가능한 그림이 생겨난 것이다. 붓질은 되돌릴 수 없지만 브러쉬질은 되돌릴 수 있었고, 컴퓨터만 있으면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디지털 드로잉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이때 전통적 회화를 고집하던 작가들은 종이에 그리는 그림이 아니면 진짜 그림이 아니라며 디지털 드로잉의 방식을 비난한다. 지금은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세계적인 거장도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등 새로운 방식이 오히려 환영받고 있지만, 극 초반에는 디지털 드로잉이 만화나 애니메이션 풍의 그림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유화나 수채화 등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다. 아마 모네도 그런 기분 아니었을까? 꼭 선을 그어야만 그림인가. 붓을 뭉개고 찍어서 그린 그림은 그림이 아닌가? 일반적인 게 아니면 외로운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마 19세기든 21세기든 똑같은 것 같다.


이쯤 되면 무엇이 진짜인지, 픽셀이 그림인지 붓질이 그림인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본질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열렬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의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의 자아 실현의 욕구가 아닐까. 그림을 그리는 것은, 픽셀을 나열하는 것은, 결국은 다른 방식으로 세계에 말을 거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미동微動도 하지 않는 입자는 없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어떤 방법으로든 서로에게 또 세계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의 역사가 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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