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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y 23. 2024

지극히 개인적인

내밀하고 내밀한

2024년 5월 1일

엄마와 가족, 미안함과 사랑, 고마움에 대해서는 사는 내내 생각하고 겪어도 끝끝내 종결짓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힘들 때는 이런 문제들에 마주하고 싶지 않다. 인터넷에서 남의 엄마 고양이 강아지만 봐도 울어버리는 지금 내가 이런 문제들을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기 때문이다. 가끔 아빠와 나의 기형적인 관계를 생각하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차근차근히 짚어봐야겠다 싶기도 하지만 이건 너무나 깊고 또 거칠어서 어디를 다듬어야 어떤 구멍으로 들어가서 어디 불을 먼저 켜야 할지조차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럴 때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을 생각한다. 가슴에 큰 구멍을 몇 개 안고 멀쩡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어서 그래서 인생이 아직은 막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생기겠구나 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살아야지. 이제는 애써 되돌리려 하지도 않고 완벽한 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몸부림치지도 않고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없었음에 원망하지도 않는다. (않으려 노력한다) 각자가 어떻게든 제 자리에서 잘 살아있다는 것 그게 내가 유일하게 만족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게 꽤나 힘들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래놓고 또 울까? 나도 이젠 내가 우는 게 싫다. ㅁㅁ처럼 남이 우는 걸 싫어해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땐 울고 싶을 때 이를 악물고 참았었다. 울음이 새어나가면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와르르 쏟아질까봐 겁이 났고 내가 겁내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 놓고 울고 싶다. 울면 다음날 생활을 잘 못하니까 울고 싶은 날이 있어도 울음이 비집고 나와도 현실감으로 틀어막는다. 되게 잘 막아진다. 지금 울어서 후련한 것보다는 내일이 힘든 게 더 싫은 나이가 되었나? 아니면 지금 운다고 해서 후련해지지 않을 것을 알게 되었는지.

누군가가 나를 다정히 안아준다면 품에 안겨서 더 이상 울지 못할 만큼 울고 싶다. 그날 이후로 절대로 울지 않기 위해서.


2024년 5월 10일

내가 누굴 좋아할 때 어땠었지?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음 아파하고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밤을 새고 볼에 댄 핸드폰까지 따뜻하게 만들 정도로 할 말과 품은 마음이 많았다. 가난과 기침 사랑은 숨길 수 없다더니 꼭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맞는 말 처럼 느껴졌다. 그의 시계에 나를 맞추고 그의 욕망에 나를 투영시켜 나는 그런 것들도 좋아하는 사람이니 날 사랑해줘 라는 말을 온몸에서 뿜어내고 다녔다.


2024년 5월 15일

감사나 사랑은 제때 표현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너무 빨리 사그라들고. 구구절절 행복하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끼는 이유를 적어놓지 않으면 그리고 계속해서 일깨우지 않으면 너무 쉽게 흐려진다. 아팠던 기억들은 자연스레 흉터로 남지만, 내가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좋았고 또 그런 것들 특정 사람들 어떤 분위기를 왜 좋아하는지는 파고들어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걸 굳이 굳이 잡아서 생각해야 삶이 버텨지는 거 같다.


2024년 5월 16일

첫 곡을 들으면서 참 별 생각을 다 했다. 중학교 까마득한 그때부터 T시에서 고군분투 우리 둘 다 각자의 시간을 잘 살고 너는 무대 위 나는 모니터 앞에서 자기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구나 그때 교실에서 노래부르고 기타치던 너의 목소리와 손가락을 나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듣고 본 적이 있었나 아니면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애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손짓 발짓 목소리로 함성을 지르고 한 물결을 이루면서 호응해주는 걸 보니 참 우리 00이 지금 정말 행복하겠구나

나도 정말 행복했으니까

팔이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도 캠코더를 놓지 않고 계속해서 직캠을 찍었다 처음엔 다 나오게 찍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00이한테 계속 줌을 땡겼다..ㅎ..

00이 노래 중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노래인 **이 있는데, 발라드라서 거기서 불러줄 거라는 기대도 안했었다. 근데 메들리 중에 그게 나왔는데 진심 손으로 입을 헉 막고 오바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첫곡 마치고 내 이름을 호명해줬어!! 여기가 중학교 동창이 나온 학교라고.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다고 하는데 눈물 날 거 같고.. 나 여기 있다고 손짓으로 흔들었는데 못 본 것 같았다.

푸른 잎사귀들로 가득찬 무대 뒤편과 지는 노을 신난 사람들 나는 참 축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00이가 노래하고 있는 동안은 참 우리 학교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생각했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겪은 일을 미화하고 싶지도 않고 이상한 건 이상한 거지만 그냥 그럴 때가 있잖아?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거나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가득한 곳이 갑자기 그 어느 때보다 익숙해서 편안하게 느껴지는 순간들. 지긋지긋해도 지긋지긋할 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서 악보다 정에 굴복하게 되는 때가 있잖아. 그래서 나는 가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나를 내내 감쌌던 기묘한 감정들의 정체를 어제 알아서.

그리고 내가 살짝은 질투했고 부러워했던 애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비뚤어진 마음 없이 투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된 게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우리 둘 다 서로의 성공을 (아마 00이는 예전부터 그랬을 테지만) 진정으로 바랄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적은 확률인지. 모교에 내 친구가 가수로 공연을 왔고 그걸 내가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많은 선택과 노력 실패 물리적인 시간을 겪고 나서야 자연스러운 양 천연덕스럽게 앞에 펼쳐지는 건지. 수많은 공연 중에 하나였다고 나는 갈무리하기 싫더라고. 그 애의 삶을 나는 잠깐 봤고 우리는 그때 친했으니까.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어떤지 알았으니까.


남의 성공을 엿보는 일도 꽤나 달콤하구나, 했지. 너무 너무 행복했거든. 그 애의 영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초판 앨범들의 배경은 내가 너무 잘 아는 동네 아파트 복도거든. 00이가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그때의 기억들을 영감삼아 노래하는 게 난 정말 위로됐어. 누구도 따라하지 않고, 조금은 밋밋하거나 천재적이지는 않을 수 있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꾸준하게 노래하는 게. 그래서 그때 행복했어. 그걸 엄청 크게 내지르는 걸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니까.



2024년 5월 21일

독서모임을 갔다왔다. 혼자 치과도 갔다 왔고, 다이소에 들러서 필요한 것들을 몇 개 샀다. 혼자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굳이 내 일상을 조목조목 말할 사람은 없다. 내내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실내화를 신고 집을 치우는데 문득 즐거웠다. 내가 만드는 대로 굴러가는 일상이 갑자기 사랑스러워졌다. 꽉 찬 쓰레기통을 비우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피그마 이메일을 학교 계정에서 지메일로 변경했다. 묵혀왔던 프로젝트 파일들을 새로 업데이트했다. 별 거 없었다. 썩어서 곰팡이라도 피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대로였다. 몇 달 전에 비해서 내 실력은 정말 좋아졌다는 것만 확인했다. 기분이 좋았다. 잘 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는지 어깨가 내내 아팠는데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내 삶을 직면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다니. 주체적으로 의식하며 사는 순간들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원동력인지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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