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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r 22. 2024

일기 발췌

올 초 가장 사적인 기록들의 모음

2024-01-15-월요일


언제나 그랬듯이 어깨가 아프고 피곤한 월요일이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너무나도 익숙한 출근길을 따라 영혼 없이 몸을 싣고 학교에 도착. 재무팀에 서류를 갖다 주러 갔다가 아무도 없는 학교의 모습이 내겐 더 익숙하겠구나 생각했다. 눈이 곳곳에서 얼면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좀처럼 녹지 않는다. 지긋지긋해! K의 말을 떠올리며 바라보는 디자인관 중앙 통창은 그래도 아름답다. 수직으로 연결된 아름다운 전등은 볼 때마다 디자인사 수업시간에 배운 바우하우스로 연결된다. 뜬금없이 보라색 페인트로 칠해진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생각했다. 춥고 어딘가 보편적이진 않았지만 아름다웠던 이곳을 오래 기억하게 되겠구나.


연결되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은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게 나는 혼자서도 완전한 척하다 나 그대로 완전했음을 조용히 안다. 원래 삶이 지루한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렇다.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나누는 얘기들은 조미료니까. 삶은 원래 칙칙하다. 회색빛 일상들에 뿌려지는 무지갯빛 스프링클은 배경이 무채색일 때 더 화려해 보인다. 인정하기 싫은 마음과 궁금한 감정 속에 나는 기대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의 카톡 알람을 끈다. 존나 어이없다.


*알바 구할것(..!)

*나를 아낄 것

*나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할 것

*책을 하루에 10분이라도 읽을 것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마치 연락을 기다리지 않았던 사람처럼 나는 새초롬해진다.


그림을 그리려면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것을 그리는 것은 강요다. 나에게 그림은

언제나 최후의 도피처

마지막의 마지막에 도망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 마지막에 숨 틀 수 있는 나만의

대지.


2024년 2월 1일 목요일


잔잔하게 생각들이 많지만 어느 하나 명확하게 해결하지 않아도 잠이 잘 오는 요즘이다.

잠은 잘 자는데 이러다가 확 무너져버릴까 겁도 나고.

(중략)

정신 차리고 보니 2월인데 그냥 지금 심정은 좀.. 쉬고 싶은 느낌? 지친다.


2024년 2월 3일 토요일


나는 그 얘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랑 다른 사람의 얘기는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게 된다 내 의지가 아니라도. 내 딴엔 충격이었던 게 그걸 진짜 모른다는 거였다. 어쩌면 K가 슬펐던 이유는 서로가 같다고 생각(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던 영역에 사실은 자기 혼자만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 같다. 사람은 너무 다르고 그 마음은 본인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도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다. 예측이 틀릴 때가 있으니까 괜한 시간 낭비일 수도 있다. 그치만 우리는 언제나 모든 걸 다 말할 수는 없고 어느 정도는 생각이나 분위기를 상대와 공유한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데 사실 가치관이 달랐다면 영역이 겹친 줄 알고 착각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나도 K와 싸웠을 때 (But 나만 싸웠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현타가 오고 슬펐던 게 내가 기분이 나쁜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 너에게는 생각조차 불가능한 영역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들이 송두리째 깨져버리는 느낌이었다.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완전한 타인으로 느껴져서 슬프고 기분이 나빴다. 근데 K도 그걸 몰랐던 사람인 거다 똑같이. 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K는 아예 그 생각이 존재하는 것조차 몰랐던 거니까.


사소하고 별 것도 아닌 것들에 자꾸 오락가락하는 마음은 또 오랜만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또 무섭기도 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어차피 불가해한 일이니까 사랑은.

어쩐지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한 요즘이다.

언제쯤이면 좀 덜 슬퍼질까 모르겠다.


2024년 2월 4일 일요일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면 끝난 게 아닐까? 그래서 모든 걸 다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관계의 지속성이 유지되려면 비밀과 고독이 key라고 생각한다. 혼자 보낸 시간들에서 정리된 생각과 가치관 그런 사유들에서 나오는 나만의 고유함은 상대로 하여금 나를 궁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뻔히 읽히는 사람은 궁금하지 않으니까. 어느 누구와도 같은 생각과 SNS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하고 출처 없는 밈들로 표상되는 사람은 universal 할 수는 있지만 iconic하지는 않다. 남과 나를 구별해 주는 가장 확실한 건 생각이다. 생각하고 쓰는 걸 멈추지 않는 사람은 섹시하다.


무력하고 별 것 없다고 느끼는 하루라도 생각하는 것은 있기 마련이구나

끊임없이 쓰고 정리하고 사색하자

가끔은 기록이 남고 내가 죽었을 때 기록이 혼자 남을 걸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해서 계속 기록할 것이다.

나만 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생의 순간들을

나보다 애정 있게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2024년 2월 11일~12일 주말


어쩌면 안 될 것들을 가지고 내가 불씨를 피워보려는 헛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지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미련을 가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굳이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내가 부디 그걸 까맣게 몰랐으면 좋겠다

항상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게 기분이 별로다


2024년 2월 20일 화요일


사람들과 대화할 때, 우리가 지켜야 하는 혹은 타인과는 굳이 명시된 언어로 나누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모두가 그 사실이나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도 예의를 위해 언급하지 않기도, 또는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관계에서, 대화에서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어서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것들이다. 명시적 언어로만 끝맺을 수 없는 구차한 의문들이 나만 가지고 있던 생각이 아님을 알게 하는 속마음을 다루는 콘텐츠들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던 외로움을 줄이고 소속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늘 인기를 얻는다. 나는 내가 생각이 많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려웠다. 남들과 대화할 때 내가 자각하고 있는 것들 중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가 헷갈리고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4차원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 할 말을 다 하네 또는 말이 생각보다 없다는 말 두 개를 동시에 듣고 살았다. 나에 대한 평가는 그들(청자)의 예민함에 따라 가지각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고 오랫동안 혼자만 말하거나 생각만 했지 남들에겐 결국 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공유 욕구가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했을 때 나에게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고 했다. 생각이 너무 많다는 말은 절대 내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없어서 나는 긴 시간 동안 궁금한 만큼 답답했었다. 그래서 외로웠다. 더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텐데 그것에 관해서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근데 S는 내가 물어보면 거의 모든 것들에 대답해 줬다. 그래서 신기했다. 이런 것까지 대답해 주나? 싶을 정도로 별 것까지 다 질문했다. 그래서 하굣길이 즐거웠다. 나는 타인에게 너무 많이 맞춰서 힘들었다가 S에게서 진짜 내 모습을 찾았다. 궁금한 건 묻고 또 물어보던 어릴 적의 내가 거기 있었다. 아무리 황당하고 맥락 없는 질문이어도 S는 최대한 웃기거나 진지하거나 충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인지적 한계가 같은 사람에 대한 신기함과 어디까지 더 깊게 생각하는지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증거였다. 더 깊어지고 하찮아질수록 나는 우리가 점점 더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작고 얕은 뿌리까지 공유하는 것은 내내 혼자였던 나에게 엄청난 해소가 되었다.


2024년 2월 25일 일요일


통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 건지 쫑알쫑알 계속 한참을 떠들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열성적으로 질문해 주고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족하구나 싶은 충만감이 느껴졌다.


2024년 2월 27일 화요일


아니면 나는 그냥 사랑하는 내 모습이 좋아서 그 사람이랑 있을 때의 내가 좋아서 그걸 사랑하는 걸까.

쉬운 게 사랑이고 어려운 건 사랑이 아니라는데 나에겐 늘 어려웠던 것 중에 하나가 사랑이었어서 나는 아직도 확신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작업을 하니까 삶이 계속 이런가 하는 생각이 문득 다시 든다. 도태되는 건 아닐까 가 제일 겁나지만 문득 또다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이 시간은 나 말고 누구라도 조용히 혼란스럽고 외로울 것이라는 조그만 결론. 누가 '이거 해' '저거 해'라고 말해주지 않아서 불안해한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삶의 형태가 오롯이 나의 선택에 맡겨져 있어서 그런 거구나. 초보운전이 차를 잡으면 신남보단 불안함이 클 테니. 이 애매한 힘듦은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2024년 2월 28일 수요일


아무의 간섭이 없는 시간들이 앞으로 내 삶에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니 삶의 지금이 너무나도 소중해졌다. 가끔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전화를 하고, 그리고 나서도 사랑하는 할 일들로 꽉 채워진 하루들이 요즘은 너무 짧게 느껴질 만큼 좋다. 예전엔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빨리 갈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땐 킬링 타임 콘텐츠들에 빠져 있었다. 시리즈가 많은 미드나 완결 난 웹툰을 발견하면 괜스레 마음이 든든해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하고 싶은, 해야 하는 것들에 비해 나에게 남은 시간은 엄청 적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밥을 먹는다거나 빨래를 개는 게 엄청 행복하다.


(중략)


켜켜이 쌓인 고독의 시간들이 나의 결을 어떻게 만들고 있을지 모르겠다. 궁금하다.

작업이나 그림 글에서 조금씩 드러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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