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형사는 조석태를 데리고 자신의 테이블로 갔고 나는 성춘식을 내 테이블 앞에 앉혔다.
" 성춘식! 슬슬 시작 해 볼까?"
아까의 태도와는 달리 성춘식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없었다. 전과도 많았던 만큼 이 상황이 익숙했을 것이고 나름 진술할 내용도 확실히 정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자백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이곳의 생리이자 법칙이다.
" 자! 정식으로 묻겠다. 채권 가방 어디서 났어?"
성춘식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 서부 정류장에서 주웠습니다."
" 언제 주웠으며 서부 정류장에는 무슨 일로 갔었나?"
" 저와 조석태는 마산에 살고 있고 1주일 전에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대구에 왔습니다. 가방은 정류소에 내려서 배가 고파 우동을 먹으러 같이 식당에 갔는데 우리가 앉은 옆자리 의자 밑에 있었습니다."
" 그때 너희들 외에 아무도 없었나?"
" 예. 그때 당시에 저와 조석태만 있었습니다."
" 가방은 왜 열어 보았나?"
" 그거야 가방 주인이 없는 것 같았고 안에 무엇이 들어있나 궁금해서 열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안에 큰 금액의 채권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가방을 왜 파출소나 정류장 사무실에 가져다주지 않았나?"
" 경황이 없었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길에서 주웠다면 유실물 습득이 되겠지만 식당 안에서 주웠다면 절도범이잖아. 이 자슥아!”
성춘식의 진술은 전혀 논리에 맞지 않았다. 나는 순간 화가 났지만 이내 삭혔다. 아까 같은 경우는 그냥 역정을 내었는데 그 것은 아직 제대로 조사를 시작하기 전이었고 어찌 보면 기선을 제압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 좋다.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그 채권을 어떻게 할 셈이었지?"
"일단 우리는 묵을 숙소부터 찾는 것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값싼 여관을 찾다가 아까 있던 여관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채권은 파출소를 찾아서 신고하려고 했는데 일자리를 알아본다고 차일피일 미루다 신고를 못 하게 되었습니다."
성춘식의 진술을 점점 더 신빙성을 잃어갔다. 그렇다. 범인들의 진술은 항상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가끔 수사에 난항을 겪는 이유는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단서나 증거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범인들은 항상 그런 진술로 계속 주장한다.
" 지금 네 말이 논리적으로 바르다고 생각하나? 차일피일 미룬 게 1주일 씩이나 걸렸다고? 이봐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출처가 알 수 없는 큰 돈을 주웠는데 다른 일을 볼 겨를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너와 조석태가 이 돈에 관해서 얘기를 안 했다고 할 수 있겠나? 즉 내 말은 1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너와 조석태가 이 채권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과 상의를 했다는 거야“
"형사님. 대체 우리한테 뭘 원하십니까? 1주일 동안 파출소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이 물건을 훔치기라도 했다는 말씀이라 예? "
나는 고개를 들고 팔짱을 끼며 성춘식을 쳐다보았다.
"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네 말에는 앞뒤도 안 맞고 전혀 논리적이지도 신빙성도 없으니까."
" 그럼 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를 대십시오. 형사님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 붙잡아 두지 마시고요. "
"그렇지 않아도 검찰에 구속영장 신청을 할 거다. 조금만 기다려라"
나는 검찰에 성춘식과 조석태를 신분증 위조 및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에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해 주었다.
범행을 부인하는 이 둘을 구속하여 수사를 계속했으나 성춘식과 조석태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용의자가 혐의를 계속 부인하게 되면 형사들도 독해진다. 정상적인 수사가 불가 하다고 판단이 되면 형사들 또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더 나아가 치졸한 방법까지 동원한다.
그중 하나가 음식이나 담배를 가지고 거래하는 경우인데 보통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용의자들이 짜장면이나 국밥 등등 맛 좋은 음식을 먹거나 극 중 형사에게 음식 시켜 달라고 떼쓰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주 수사에 협조를 잘하는 용의자의 모습이고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는 용의자들에게는 그러한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이런 용의자들에게 줄 것 다 주고, 해줄 것 다 해주면 자백은 언제 받아 낸다는 말인가?.
배고픔 앞에 인간은 장사가 없기에 형사들은 치졸해 보여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도 쓴다.
나와 배 형사는 성춘식과 조석태가 자백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정적으로 이들이 입을 열게 할 만한 것을 물색했다. 그러자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쳤다. 나는 배 형사를 불렀다.
"배 형사! 잠깐 이리로 와봐!"
배 형사는 재빨리 내게로 왔다.
"예! 부르셨습니까? 형님?"
"이 새끼들 한번 돌리자“
나는 이들이 금고 털이 전문범들이라 먼저 대구 시내를 중심으로 하고 전국의 금고털이 피해자 목록을 전산 조회하여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증거도 없이 바로 금고 털이한 것을 자백하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예? 돌리기요 형님?”
“그래 저놈들 먹는 것 가지고 해봐야 씨알도 안 먹히네.”
“그럼 어떻게 할까요? 형님!”
“일단 최대한 추궁할 수 있는 데까지 추궁하고 있어 봐! 그래도 씨알이 안 먹히면 이 두 놈 과거 사건기록 가지고 조져야지 ”
“사건기록이요?”
나는 오른손으로 내 턱을 만졌다.
“ 그래. 일단 배 형사! 자네는 지금처럼 조석태가 지겨워 미칠 정도로 하던 대로 하고 있어 봐! 내가 조금 있다가 이야기 할께 ”
배 형사는 알았다는 듯 다시 조석태에게 갔고 나 또한 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성춘식을 조사하기 위해 테이블로 갔다.
성춘식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어이! 성춘식! 잠 오는 모양이지? ”
성춘식은 눈을 떴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 아이구.. 잠도 안 재우고 계속 똑같은 질문만 계속하시니 잠이 올 수 밖에요 ”
“ 그러게 이 사람아! 니가 솔직하게 자백하면 뜨끈한 돼지 국밥 한 그릇 먹고 푹 자게 해준다니까? ”
성춘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형사님 예.. 진짜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니까요? 신분증은 과거 전과 때문에 위조했고 채권 가방은 진짜 주운 거라니까요. 진짜 대체 뭘 원하십니까? 제가 훔치지도 않은 물건을 훔쳤다고 해야 하는 거라 예? ”
“ 야 임마.! 생각해 봐라. 서부 정류장에서 누군가가 그 큰 돈을 잃어버렸다고 치자. 그런데 아직 서부 정류장에 그 물건 찾는 전화가 한 통도 없단다. 그리고 우리가 서부 정류장 관할인 송현파출소에 확인을 해봤는데 신고 들어온 게 없다 카더라.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이가? ”라며 담배를 한 대 빼물었다
“ 아니 그것을 왜 나한테 그럽니까? 진짜 미치겠네. 형사님 담배나 한 대 주이소 ”
“ 뭐 담배? 니 하는 꼬라지 보니 뭐가 이뻐다고 담배를 주겠나? 담배는 그냥 공짜로 생기는 거가?”
은근히 담배 냄새를 많이 맡게 뿜어내 보기도 한다.
경찰서에 들어와 밥도 옳게 못 먹고 관식을 먹고 있고, 며칠 째 못 피운 담배 생각도 나니 여러 가지로 불편한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형사와 용의자는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진다. 형사들이 음식이나 담배를 가지고 괴롭히면서 같은 질문을 수백 번 하는 것도 용의자가 수백 번 부인하는 것도 서로가 지치게 하기 위함이다.
형사가 지치면 용의자는 무혐의로 풀려나고 용의자가 지치면 자백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성춘식과 조석태는 지구전에 강한 놈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까 배 형사에게 지시했던 것처럼 돌리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좋아.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