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 반가운 편지 ◆
연말이 되면 교도소에서 오는 편지나 연하장이 많다.
수형자 대부분이 불루 칼라 출신이라 길게 쓰는 편지는 드문편이나 연말연시에 보내는 연하장은 그냥 몇 자만 적어도 되니 선호하는 편이고 옆 수형자가 보내면 혼자 그냥 있을 수가 없으니 보내는 경우가 있다.
(교도소 안에도 우체국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판매 하고 있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범죄자들은 다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그동안 겪어본 범죄자들은(대개가 절도, 조폭) 너무나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다만 어릴 적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갔을 뿐이라고 생각을 하는 바이며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어릴 때부터 바른 인성을 가지도록 교육과 지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어릴 적 태어날 때부터 흙수저로 태어나 사회의 냉대 속에 커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자신도 모르게 암흑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다가 인정을 받고 싶어 남들이 싫어하거나 가지 않는 길을 걸었고, 끼리끼리 통하는 친구들끼리 모이니까 합이 법을 위반하였다고 본다.
많이 배워 타인을 이용하거나 배신을 하면서 나만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자들보다 못 배워도 여럿이, 같이, 천천히 가는 이런 친구들이 도리어 인간냄새가 날 때가 많다.
그래서 남을 이용하거나 상처를 주면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는 그야 말로 냉철하게 법의 잣대로 엄하게 상대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안하고는 안 되어서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는 구속송치 되고 난 뒤 친한 친구나 형제들같이 면회도 가고 차입금도 넣어주면서 정을 쌓기도 했고 또, 안에서 들은 정보를 제공 하여 주며 정보원 노릇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른 한명을 더 소개하기로 한다.
사무실로 검열필 도장이 찍힌 연하장이 아닌 편지가 한통 왔다.
보낸이는 서교준(가명) 이었다.
서교준은 앞에 언급한 사건(노숙차량)의 피의자중 1명이였고 일당 중에 브레인이었는데 머리 회전이 상당이 빠른 친구였다.
체구가 적지만 영특하게 생겨서 친밀감이 가는 사람으로 어릴 때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고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았다면 제 몫을 하고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흙수저로 태어나다 ◆
대구 서구의 빈민촌에서 태어나 아버지는 생사를 모르고, 집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며 벌이가 신통찮은 조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같은 또래 중에서는 제법 똑똑하여 어디를 가나 귀여움을 받으며 지냈다고 한다.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가 되었는데 당시 학교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에게는 항상 표적이 되어 겨우 얻은 용돈을 털리는가 하면 심부름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하루는 학교 점심시간에 일진들에게 불려가 학교 밖 슈퍼에 가서 담배를 사오라는 말을 듣고 몰래 담치기를 하여 슈퍼에 담배를 사러갔으나 슈퍼 주인이“ 학생이 무슨 담배냐”며 안판다고하자 “아지매! 알다시피 선생님 심부름이니까 나올 수 있다”며 선생님의 심부름을 강조하여 원하는 담배를 살 수 있었다.
담배를 사고 다시 담치기를 하여 들어 갔는데 그만 훈육선생님에게 들켜 버렸는데 담배까지 걸려서 교무실로 끌려 간 다음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혼이 나며 반성문을 쓰게 되었지만 누가 시켜서 간 것이 아니라고 제 딴엔 의리를 지켰는데 다음날 부모님을 모셔 오라고 하는데 할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는 교준이는 할머니에게 학교로 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다음날 학교 간다며 나와서는 학교를 가지 않고 무작정 시내로 들어가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해서 동성로 대구백화점 뒤편 작은 식당들이 즐비한 곳에서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 “뭐 먹을것이 없나”며 물었다.
“저기 중국집에 심부름을 하면 밥을 준다”는 말을 듣고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중국집에 들어가 “심부름을 할 테니까 밥을 달라”고 하자 주인은 본래 이런 아이들이 자주 오는데 며칠 있어면 제 풀에 지쳐 간다는 것을 알고 돈을 안주고 일을 시킬 수 있어 좋다며 일을 시키기 시작을 했다.
그릇 찾는 일부터 배달도 하고, 주방 잔심부럼을 하면서 며칠이 지났는데 그때서야 혼자 계신 할머니 생각도 나고, 학교 생각이 나서 주인 몰래 중화요리식당을 나와 집에 가서 할머니에게 잘못 했다고 하고 다음날 다시 학교에 갔으나 학교에서는 교칙을 어긴 일과 무단결석으로 인한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자꾸 할머니를 데려 오라고 하니 식당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할머니를 어떻게 모셔 갈 수가 없어서 집에서는 그냥 학교를 간다고 하고 집을 나가서는 또, 혼자 이리저리 다니다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칠 시간에 맞쳐 집에 들어가면서 아예 학교를 그만둔 것 이었다.
학교를 안가고 돌아다니다 보니 이것저것 먹을 것도 많고, 하고 싶은것도 많은데 돈이 없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배가 고플 때는 슈퍼나 가게에서 주인 모르게 빵이나 요기거리를 훔쳐 먹기를 하면서 내공이 생기기 시작을 하였고, 같은 입지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범죄의 길로 들어서다 보니 주변에는 전부 전과자 친구들뿐이었다,
그래도 그 친구들이 자신을 인간 대우 해주고 같이 있을 수 있는 친구로 인식을 하고 세월을 원망하며 지낸 친구였다.
교도소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들어간다.
남자와 여자를 바꾸는 것 외에는 전부 다할 수 있고, 무었이던지 만들어 낸다고 하는 곳이 교도소이다.
“형님! 무고하신지요?”로 시작하는 문장은 어느 수필가들의 글 솜씨보다 더 아름답고 정겹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계절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서, 두루두루 안부를 묻고
“지금은 반성을 하고 있다.”
“앞으로 출소를 하면 열심히 일을 해서 잘 지내겠다”는등 반성문 비슷하게 온다,
세상에 꽁짜는 없다며 나쁜 짓 하지 말고 교도소 안에서 기술을 익혀 나와 잘 살아라 라는 답장을 보내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 면회를 하면서 차입금을 넣어 주기도 했는데 가끔이 연락이 오더니 요사이는 살 만 한지 연락이 없다.
출소한지 오래되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하루는 전화가 와서는 요사이는 아무른 연고가 없는 대전에서 고물상을 하고 있는데 잘 지낸다고 해서
“야 또 장물 거래하나?”하니
“형님 이제는 다 끊었습니다. 고물상은 조금 추하고 남들이 싫어 하는것이지만 열심히 하니 돈이 됩니다.” 라는 소리를 듣고
“고물이라도 조심하고 부디 확인하고 물건을 사라”고 잔소리를 늘어 놓았더니 “잘하겠다”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이가 들어 나쁜짓은 안하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을 가지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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