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악어새
며칠 뒤 전화가 왔다.
“형님! 어디 있는지는 나도 알 길이 없고 00동 창배가 성구형이랑 연락이 된다카던데요”
“뭐 창배가?”
“광수대에서 창배를 매일 만나 빨리 내어놓으라고 지랄하는 모양인데 모른다고 했다카던데 창배 말고는 연락하는 데가 없다고 합니다. 형님이 창배를 잘 아니까 구슬려서 협조하라고 하면 조금 도움이 안 되겠습니까?”
“그것 말고는 없나?”
“그 양반이 워낙 숨어 다니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창배 연락처는 옛날 그 번호가 맞나?”
“맞을 낍니다.”
“알았다.”
그러고 나서 창배에게 전화를 걸어 김성구의 소재를 물었으나 전혀 모르겠다고 했지만 작금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지금 자진 출석하면 합의를 보게끔 도와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나중에 검거하게 되면 살인 미수로 처리하겠다”라고 당근과 채찍을 제시하면서 담당 형사를 보낸다고 했다.
다시 00청 계장에게 전화를 하여 담당 형사를 창배에게 보내어 대화를 하면 협조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 후 담당 형사가 창배를 만나 이야기를 했고 창배가 김성구를 설득하여 자진 출석시켜 합의를 본 다음 구속을 시켜 일단락되었고 김성구는 전과와 흉기 사용이 있어 1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고 했다.
김성구는 예전에 자기 처를 후배가 조금 놀렸다고 불러서 팔공산 밑 야산으로 데려가 목만 나오게 신체를 묻고 촛 물로 팔과 얼굴에 떨어지게 하였을 뿐 아니라 검거하러 간 형사에게 칼을 휘둘러 검거 시 발포 명령까지 내렸던 인물로 대구에서는 그야말로 법을 조롱하며 생활하였던 폭력배이고 15년 형을 살고 나왔던 인물로 관찰 인물이었다.
교도소 수형생활 중 장기형을 받게 되면 타 지역으로 이감을 가야 하지만 이감을 시키려고 하면 자해 행위를 하는 등 교도관들에게도 위해를 가할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자이다.
교도소 수형 당시 수많은 조폭들이 입감을 하면 자칭 00교도소 제왕인 김성구의 보호 아래 수형생활을 하여서 김성구가 출소를 하니 각 지역 조폭들이 하늘같이 받들게 되었고 안하무인격으로 활동을 하였다.
◆개업 신고를 왜 안 하나?◆
◇◇동에 있는 신 건물 지하에 00관(나이트클럽)이 오픈하는 날, 후배 서너 명을 거느리고 갔는데 주인이 대접을 잘하여 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손님들로 북적이는 나이트클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영업을 방해하고 나갔던 것이다.
나중에 피해 사실을 듣고 김성구를 잡으려고 서부경찰서 전 형사가 매달렸으나 오리무중이었다.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김성구 주거지를 수색하였더니 일본도와 공기총이 나와서 압수하여 총포 도검 죄도 추가를 하였다.
며칠 뒤 00동 고개 마루 전파상에 있다는 첩보를 듣고 계장, 과장에게 보고하여 전 형사 비상을 걸어 집합시킨 후 김성구 검거 작전에 들어갔는데 웬일로 형사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시간은 급하고 있는 형사들끼리 조를 만들어 출동 후 전파상에 앉아 있는 김성구를 검거하여 사무실로 데려와 조사를 시작하는데 형사들이 악명이 높은 김성구와 눈을 안 마주치려고 또 자리를 떠나는 것이었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해야 되는데 저마다 꽁무니를 빼는 바람에 내가 조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니 놈이 까불어 봐야 범죄자고 나는 형사인데..’라며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 후 읽어보고 하고 서명 날인을 하라고 했는데 서명 날인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서명 날인을 거부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날인 거부”라고 명기 후 그대로 유치장에 입감 시켰다.
다음날이 되어 “나를 좀 보자”라고 하여 갔더니 어제 서류에 서명 날인 안 한 것 잘못했다고 하면서 지장을 찍겠다는 것이었다.
징역살이를 많이 해본 사람일수록 징역 가는 것을 싫어하기 마련이니까 순순히 말을 듣게 되었고 2년 6월 형을 살고 나온 뒤 나와는 친하게(?) 지내다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 악어와 악어새 ◆
김도형은 나에게 이런 정보를 줄 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지만 빠른 정보 수집으로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만 피해가 적고 구설수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김도형은 내가 형사를 처음 할 때부터 알았다.
그 당시는 그저 평리동 주변의 건달이었는데 다방에 오락기를 넣어 놓고 주인과 반반 먹기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술 한 잔 먹으면 주변 사람에게 막말을 하다가 시비가 되어 경찰서에 오게 된 것이었다.
김도형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어 3년 6월형의 실형을 받은 뒤 이감되어 전라도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였다.
여름휴가를 받았는데 장마철이라 어디 갈 곳도 없고 하여 광주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고 있는 김도형 면회를 가야겠다 싶어 옆자리에 처를 태워서 88 고속도로를 지나 지리산 휴게소를 지나는데 비가 엄청나게 내려 몇 m 앞 도 안 보여 지리산 휴게소에 들어가 한 시간 정도 쉬다가 광주로 갔다.
지금은 왕복 4차 로지만 그 당시는 2차선으로 제대로 속도를 낼 수가 없어 00에서 00까지는 4시간이 넘게 걸렸었다.
깜짝 놀랐다고 하면서 ”누가 추가 뛰우러 온 줄 알았다 “고 하는 것이었다.
(경찰관이 교도소 올 때는 추가 사건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을 위하여 출입을 한다)
그리고는 먹고 싶은 것이 뭔가 물어보고 조금의 돈과 매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서 넣어 주었더니 동네에서 형, 동생 하는 놈들도 면회를 안 오는데 장마철에 귀한 형님이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면서 너무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형기를 다 마치고 출소 뒤에는 ”형님에게 충성을 다 하겠다 “고 한 말한 사실이 있는데 사실 내가 퇴직 때까지 중요 정보를 몇 건 준건 사실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정을 주니까 그것을 못 잊는 의리남인 것이다.
정보원은 그냥 주워지는 게 아니다.
내가 겪은 범죄자들은 대개가 단순했다. 나에게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며 괄시와 냉대 속에서 유소년 기를 마쳐서 인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들이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와 같은 연대의식을 가지고 가족같이 대한다면 전부 내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측에 있다고 본다.
고의가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분명히 후회를 하고 있을 때 다정한 말 한마디로 위로를 해줄 수 있다면 내편으로 만들고 착한 시민으로 정착이 될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구속되어 교도소에 보낸 후 시간이 날 때 수사 접견으로 가거나 일반 면회를 하면서 차입금 조로 돈을 조금 넣어주고 필요한 물품을 넣어준다면 죽을 때까지 변심하지 않고 고급 정보를 보내준다.
교도소 안에는 별의 별사건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고 기술도 다양하다.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만들어 내는 기술 말고는 다 만들 수 있다고 하는 말들이 거짓은 아니라고 본다.
밑으로 조직폭력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넝마주의 출신 범죄자들부터 다방 마담, 룸살롱 큰 마담부터 새끼마담, 환락가 포주들까지도 모두 나의 정보원이라고 생각을 하며 범죄꾼들과 싸워야 한다.
어쩌면 악어와 악어새 같이 공존을 하며 범죄를 척결했다. 요사이는 이런 일들이 통용 안 되지만 또, 그렇게 하는 형사들이 없다고 본다.
#정보원 #조폭 #자존심 #전쟁 #선후배 #의리 #예의 #제보 #교도소 #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