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義理) 란?

아베크족 보호

by 써니짱

두류공원(頭流公園)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과 성당동에 위치한 도시근린공원이다. 대구문화예술회관 뒤편의 금봉산과 이월드가 세워진 두류산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1965년 2월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본격적인 개발은 1977년에 이루어졌고 면적은 1,653,965 m²이다. 한편, 1986년 3월 22일과 3월 23일에 이곳 운동장에서 86 춘계 축구대제전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두류산은 산이 둥글게 펼쳐져 있어 두리산이라고 불리다가 두류봉 또는 원산으로 쓰여 오다가 근래에 와서 두류산으로 지칭되었다.


두류정수사업소 동북쪽 산 아래에 노송나무 3그루가 있었는데 이 나무를 당산목(堂山木)이라 불렀고, 그 나무가 있었던 동쪽 안쪽에 위치한 마을을 안땅골(內唐山), 동남쪽 두류공원 야구장 서쪽 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을 바깥땅골(外唐山)이라 불렀다.


마을사람들은 5월 파종을 끝낸 후와 10월 추수를 마친 후 술과 떡을 만들어 당산목 밑에서 제사를 올리고 이를 당산제라 하였다.


1914년 내당동, 외당동을 내당동으로 통폐합하였고, 1988년 1월 1일에 대구 달서구의 신설로 서구 내당동이 나뉘게 되었는데, 달서구로 편입된 내당동은 두류산의 명칭을 따 두류동이라고 칭하였다.


대구시에서 두류공원에 많은 투자와 관리로 선진국형 위락시설이 되어 있어 대구의 달서구 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명소가 되어 있다.


하지만 1990년 초까지 두류공원이라는 이름만 있었고, 서부경찰서 관할로 그저 낮은 산에 도로와 산책로가 있을 뿐이고 가로등이나 방범등이 없어 밤만 되면 아베크족들이 즐겨 찾는 장소인데 이 아베크족을 상대로 돈을 뺏고, 몸을 뺏는 나쁜 짓을 하는 신고가 수시로 들어와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 당직 날이 되면 두류공원에 형사 동차를 타고 순찰을 하며 예방 활동하는데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던 해결을 해야 되는데 매일 밤마다 두류공원에 잠복할 수도 없어 빨리 검거를 해야만 했다.


하루는 두류공원 주변에 있는 건달이며 나보다 두 살 어린 김지수(가명)를 다방으로 불러 차 한 잔을 하게 되었다.


“지수야! 요새 골치 아픈데 해결 좀 해라”

“뭡니까? 형님!”


“공원에 오는 아베크족들한테 돈을 뺏고 몸도 뺏는 새끼가 있는데 어째 해결 좀 해라, 너거 아들 아이가?”

“형님, 무슨 소리 합니까? 우리 아들은 그런 짓 안 합니다.”


“안 그러면 너들이 해결을 하던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밤 12시가 넘어 외근 활동을 하다가 집에 들어가는데 삐삐에 ‘49498282’라는 숫자가 자꾸 연속해서 울리는 것이었다.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를 했다.

“형님! 잡았습니다. 빨리 오이소”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조원인 배 형사에게 삐삐를 쳐 놓고 두류공원 정상으로 차를 몰고 올라갔더니 두류타워를 올리기 위해 놓아둔 큰 원통 콘크리트 안에 한 명을 꿇어 앉혀 놓고 여러 명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뭐고?”

“이 자슥이 매일 밤마다 여기를 다니며 돈 뺏는 놈 아닙니까?”

“됐다. 내가 알아서 할 게 너들은 가라..”


범인을 일으켜 세운 후 “니가 한 게 맞나” 물어보니 맞다고 하는 것이었다.

“됐다 가자”며 수갑을 채우고 차에 태워 경찰서 형사계로 데려왔다.


조금 있으니 배 형사가 오고 수갑을 풀며 자초지종을 묻고 있는데 갑자기 아프다며 배를 감싸는 게 아닌가?


“뭐야”

“왜 그래”하니

“옆구리가 아프다”며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표정을 보니 꾀병은 아닌 것 같아 경찰서 곁에 있으면서 병원 위에 기거하는 00 외과원장에게 전화를 하여 빨리 진찰을 해줘야겠다고 하고는 범인을 병원으로 데려가 X레이를 찍었는데 진찰결과 갈비뼈 2개가 골절된 것이었다.


이래 가지고는 살인사건 범인이라도 사건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병원을 나와 사무실에 와서는 범인을 달래며 집으로 보냈다.

보내놓고는 집으로 왔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며칠 뒤 대구지방검찰청이라며 전화가 왔다.


그 범인이 두류공원에서 누구에게 맞았는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서부경찰서 형사계 까지 왔으니 그 형사는 누가 때렸는지 알 것 이라며 형사였던 것 만으로 검찰청에 진정서를 넣었고 두류공원에서 범인을 데리고 온 나를 찍었던 것이었다.


검사가 폭력을 행사한 범인을 알면서 사건을 하지 않은 나를 직무유기라며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베크족을 상대로 돈을 뺏고 몹쓸 짓을 한 것은 맞지만 동네 깡패들이 무자비하게 야구방망이로 전신을 구타한 것을 왜 입건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또 그들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참 난감하였다.


시간을 좀 달라고 하고는 그 당시 대구지검에 파견근무를 하면서 나랑 같이 사건을 몇 번하여 친하게 지낸 검사에게 '범인을 잡을려고 하다가 벌어진 일이고 개인의 영리 목적으로 한게 아니니까 도와 달라' 라고 좌초지종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난뒤 담당검사에게 갔더니 직무유기는 봐줄 거니까 공원에서 폭력을 행사한 건달들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상부에 보고를 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상태가 되어 김지수를 불러 검사 이야기를 전했다.


“야! 지수야. 전에 공원에서 아베크족들 괴롭히다가 너거들이 잡아 많이 두들겨 팬 놈 있잖아, 그놈이 검찰에다가 진정을 넣었고 검찰에서 너희들이 누군지 모르니까 나를 찍어서 직무유기로 조사하는데 큰일 났다. 그놈을 잡을 때 그냥 주먹으로 몇 번 쳤으면 괜찮았는데 야구방망이로 작살을 내서 사건도 못하고 보냈는데..”

“형님! 우리가 어쩌면 되겠습니까?”


“글쎄 나도 어떻게 하면 좋은지 모르겠는데 검사가 그때 같이 있었던 자들을 보내주면 나는 없는 일로 한다고 하더라.”

“형님! 그러면 내가 검찰에 들어갈 께요. 우리가 때린 것 맞으니까..”


“그래도 되겠나?”

“걱정하지 마이소. 뭐 잠시 있다가 나오면 되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 뒤 며칠 뒤 후배 2명을 데리고 검찰청에 자수를 했다.


그렇게 하여 김지수는 징역 3년, 후배들은 1년씩 받았다.

3년이면 중형(重刑)인데 나를 도와주려고 하다가 아까운 청춘을 3년 버렸던것 이어서 고맙고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남자들만의 의리 라고 할 수 있지만 김지수가 '형사를 살리려고 자수하여 들어갔다'라는 소문이 퍼졌는지 김지수에 대한 정보가 형사과장을 끝으로 퇴직한 나에게는 일체 들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호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여러가지로 고마웠다.


요사이도 길, 흉사 행사가 있으면 가끔 만나는데 범죄와는 거리가 먼 냉면집을 하면서 씩씩하게 살고 있다.


그 후 두류공원은 1990. 10. 5. 대구 달서 경찰서가 신설되면서 관할이 넘어갔다가 2005. 11. 15 신설 성서경찰서가 치안을 담당하고 있고 매년 여름에 치맥축제를 하는등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를 잡았다.


#두류공원 #아베크족 #가로등 #타워 #검거 #직무유기 #의리 #자수


이전 05화가스 폭발로 순찰 중인 경찰관 순직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