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몸값 10억 원
지방경찰청 폭력계 근무할 때였다.
외근 반장을 포함하고 7명이 근무를 하고 있지만 서열로 따진다면 나는 여섯 번째이고 후배 1명이 있었다.
나는 후배와 둘이서 궂은일을 다 처리했다.
폭력배들의 이권개입이나 갈취 사건 검거를 하면 조사도 하지만 피의자 감시뿐 아니라 유치장에 입감을 시키거나 마무리 서류 정리를 하는 일들이었다.
1995년도 1월의 막바지이며 말일(31일)이 설날이라 ‘명절 전후, 범죄예방’이라는 미명 아래 전국 경찰은 비상근무에 돌입하였고 폭력계는 담당 경찰서에 진출하여 일선 경찰서 형사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대구는 10개 경찰서가 있어 각 조별로 3 ~ 4 개 경찰서를 묶어 담당을 했고 그곳에서 사건 발생, 검거할 때 자문. 관리, 지원 등을 한다)
설 명절 전이라 심야 잠복근무를 하면 출근 시간이 평소보다 늦은 11시였다.
10시가 넘어 출근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서는데 폭력계 내에서 서무를 보고 있는 조 형사에게서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다.
수성구관내에서 주요 인사 납치사건이 발생했으니 전원 수성경찰서 형사계로 집합하라는 계장 지시를 전했다.
(조직폭력, 납치, 감금, 폭발, 총포등은 폭력계 소관임)
당시 휴대폰이 상용화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우리 폭력계 형사들은 모토로라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모토로라는 통신기기로 휴대전화를 세계최초로 개발하고 상용화한 것으로 유명하고 2010년까지 휴대전화 판매량으로 세계 1위를 점했던 기업이다.)
수성경찰서 형사계에 도착을 하니 수성 형사들 역시 설 명절 앞이라 야간 근무를 하고 늦게 출근 중이어서 시끄럽고 어수선하였다.
우리는 계장실에서 사건 개요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경찰서에 10:30경 형 되는 사람이 납치 신고를 했는데 “집으로 전화가 와서 남편을 살리고 싶으면 현금 10억 원을 내놓으라”는 제수씨의 말을 전한 것이었다.
납치된 인사는 당시 대구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 중 1인이었다. 대구의 유명 인사 아니었어도 잘 대처를 했겠지만 지휘부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해결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신고자는 납치된 사람의 형이었는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다고 했다.
즉시 수성경찰서에서는 피해자의 집과 전화국에 형사를 배치하고 어디에 납치되어 있는지를 몰라 대구 전 경찰서 형사와 파출소에 비상을 걸어 대비를 했고 우리 폭력계 역시 2인 1조로 피해자 집 주변에 배치가 되었다.
2개 경찰서 이상에서 같은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는 지방경찰청장 지휘 하에 참모인 경찰서장급인 과장이 하지만 1개 경찰서에서만 발생한 사건은 관할 서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있어 우리 지방경찰청 수사팀은 일선 경찰서에 자문이나 지원근무를 한다.
11:23경 범인들이 두 번째로 피해자 집으로 공중전화가 왔는데 피해자의 처는 이미 신고를 한 상태였고 경찰이 전화기 위치 추적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될 수 있으면 시간을 끌었다.
범인은 “경찰에 신고를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라고 했지만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시숙에게만 연락을 했다.”라고 태연히 응수를 했다.
그 사이 발신자 추적을 하니 수성구 시지 1차 00 타운 앞 편의점 앞 공중전화였다.
즉시 형사를 보냈지만 그들은 자리를 뜨고 없었고 편의점 종업원에게 인상착의를 물었으나 공중전화가 편의점 밖에 있어 못 보았다는 진술이 있어 정확한 인상착의를 파악하지는 못하였다.
감식팀도 현장에 도착하여 지문 채취를 시도했으나 장갑을 끼었는지 지문채취에 실패를 했다.
범인들은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하여 여러 자리를 옮기며 공중전화릉 이용하며 “빨리 돈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라고 하는 협박을 했는데 그때마다 피해자 처는 차분하게 대응을 했다.
대구 전 경찰이 그동안 파악을 해둔 공중전화기 주변에 긴급 배치가 되었지만 이들은 경찰관들이 없는 공중전화기만 사용을 했다.
14:50분이 넘어 전화가 왔을 때는 “현금 10억 원을 한꺼번에 찾으면 은행에서 의심을 품는다.”라고 하니 “명절에 업체 노임 결산 한다고 하면 된다.”라고 다그치는 협박범을 구슬려 명절 밑에 현금 구하기가 어렵다며 “우선 5억 원을 주기로 최종 합의했다”라고 했다.
몇 차례에 걸쳐 장소를 옮겼지만 그들의 요구사항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상태라 요구하는 장소마다 수사 회의를 거친 다음에 형사들을 배치를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었다.
속아 넘어가는 셈 치고 라도 그들의 요구에 응해야 하는 게 납치사건의 일부다.
납치사건 기본은 납치된 피해자가 신체에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쟁점이기에 안전에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너무 많은 인원이 동원되면 노출된 우려가 있어 소수의 정예 요원들을 주변에 배치해야 한다.
장소가 바뀐 후 다시 회의를 하면서 수성경찰서 형사 2개 반과 경찰청 폭력계 외근 1개 반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우리 지휘부에선 현금은 위험하니 가짜 돈뭉치를 만들어 가자고 했지만 “남편의 생명이 돈보다 중요하다”며 현금을 고집했고, 은행에서 5억 원을 만 원권으로 인출하여 여행용 가방에 넣어 택시를 타고 겨울철이라 어둠이 내리는 16:50분쯤 시숙과 같이 인적이 없는 신매동 자동차 검사소 앞 약속장소에 두고 돌아왔다.
(지금은 GPS로 추적이 가능함으로 절대로 모방범죄는 안됨)
우리는 수성 형사계 형사들과 약속장소 주변에 미리 잠복을 해야 하는데 대구농고 옆이라 실습하는 논과 밭이 많이 있어 인적이 없고 주변 건물들은 아파트 공사 중이어서 잠복에 어려움이 있었다.
어느 범인이 돈 가방을 지켜보고 있는데 온다는 말인가?
지휘부는 현장이 보이는 장소에 위치하며 무전기로 지시를 했다.
일부는 검사소 안과 옥상, 길 건너 숲에 잠복을 하고 1분 간격으로 형사들이 비노출 차량으로 지나가는 행인 같이 준비를 했다.
우리 조는 현장 옆 100여 미터 떨어진 공사장에 배치되어 있다가 지휘부의 검거 명령이 떨어지면 덮치라는 지시를 받고 대기를 했다.
그 후 17:30경 현장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배회하다가 여행용 가방을 슬그머니 들고 가는 주범 김 모(당시 41세 건설업)를 보고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행인역을 하던 수성 형사팀에서 먼저 덮치고, 무전으로 출동 명령을 받은 우리가 현장에 도작하니 2명은 어둠을 뚫고 도망을 쳤다.
김 씨 검거 즉시 피해자의 안전을 우려하여 엄청난 방법(?)으로 피해자 행방을 추궁하자 범인은 공범들이 주변 아파트 공사장 안 차량 뒤 트렁크에 두고서 감시하고 있다고 자백을 했다.
현장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가서 김 씨가 돈을 가져오도록 기다리던 일당 중 공범인 김 모(당시 34세), 장 모(당시 19세), 김 모(당시 19세)를 강도상해 및 약취 강도 미수 혐의로 검거하고 현장에서 달아난 박 모(당시 24세), 엄 모(당시 21세)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비록 두 명을 놓쳤지만 찰나의 순간에 검거를 하였고 차량 트렁크에 손,발이 묶인 체 구부려 있는 피해자를 온전하게 구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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