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사칭 카사노바 법대생

by 써니짱

“나 대구지청 소속 검사인데, 1박2일 여행 어때요?”


검사 사칭해 여성 농락하고 돈 빼앗은 남성

오전엔 키 작은 여성, 오후엔 키 큰 여성 접촉

정체 탄로나면 “성관계 동영상 뿌리겠다” 협박


“형님, 형사들이 검사도 조사할 수 있습니까?”

2006년 1월, 성서에서 주물공장을 하고 있는 고향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의례적인 인사 끝에 “아주 이상한 놈이 있다”면서 저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검사도 나쁜 짓 하면 우리가 조사할 수 있지.”

그러자 반색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가짜 검사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놈이 아주 요상한 짓을 하고 다닙니다.”

그는 자기 공장에서 경리로 일하는 A씨에게 일어났던 일이라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A씨는 채팅을 하다가 자신을 검사라고 소개한 남성을 만났다. 채팅창에 신분증까지 띄워 자신을 증명한 그와 서너 번 차를 마셨고,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깊은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그 뒤로 남자는 미심쩍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A씨에게 출장비를 빌렸다. A씨는 적금을 깨서 여러 차례 출장비를 빌려줬는데 어느 날부턴가 연락이 끊겼다.

“돈 뺏기고 몸도 빼앗긴 셈인데, 이거 조사가 가능합니까? 게다가 일식집에서 처음으로 식사했던 날, 음료수를 건네길래 받아마셨는데, 그 뒤로 기억이 하나도 없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창 범죄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 검사가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할까. 검사를 사칭해 여자들을 농락하는 녀석이 분명했다. A씨를 불러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 ‘역시 검사는 다르네’ 감탄 또 감탄

A씨에 따르면 남자는 175센티미터쯤 되는 키에 늘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약속 장소에 나왔다. 안경을 쓰고 있어서 무척 지적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차를 주문하거나 음식을 시킬 때 상대의 취향을 먼저 물어보는 등 상냥하고 매너가 좋았다. 일식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던 날 그는 A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수사 때문에 따로 얻어놓은 거처가 있습니다. 구경 한번 해보실래요?”

A씨는 그와 함께 택시를 타고 그의 원룸으로 향했다. 원룸에는 양복이 20벌이나 갖추어져 있었다. 언제든 상황에 맞게 입고 나가기 위해서 준비해둔 것이라는 설명에 A씨는 그가 진짜 검사라고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그런 후 남자에게 음료수를 건네받았고, 음료수를 서너 모금 들이킨 이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A씨는 다음 날 아침 원룸을 나오면서도 ‘어찌 되었든 검사와 연을 맺었으니 앞으로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얼마 후 남자는 휴가철에 사람이 몰리기 전 주말에 부산 여행을 다녀오자는 제의를 했다. A씨는 미장원에 들러 꽃단장을 하고 그의 원룸으로 갔다. 남자는 캐주얼 차림으로 A씨를 반겼다.

원룸 주차장에는 고급 세단 승용차가 세워져 있었다. A씨는 부산 여행을 간다기에 기차를 타고 갈 것으로 생각하다가 고급 승용차를 보고는 ‘역시 검사는 다르네’하고 감탄했다. 남자가 말했다.

“사무실에서 수사할 때 타라고 렌트해 준 겁니다. 마음 놓고 타고 됩니다.”

두 사람은 태종대로 향했다. 전망대에 올라 푸른 바다를 보면서 신혼여행을 온 것처럼 다정한 포즈를 연출했다.

“안 됩니다. 검사는 어디 어디 다녔다는 흔적을 남기면 안 됩니다.”

A씨는 함께 찍은 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남자가 한사코 반대했다. 실망을 하면서도 다시 ‘검사는 역시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가 출장비를 빌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부터였다. 몇 달 동안 아무 의심없이 돈을 내줬지만 액수가 쌓이자 슬며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출장비가 나오면 바로 갚겠다고 했는데, 검찰청에서 몇 달이나 출장비 지급을 늦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서야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검찰청에 전화를 걸어서 남자의 신분을 확인했다. 검찰청에서는 “그런 이름을 가진 검사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남자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하고 성관계를 하면서 영상을 남겨뒀어. 자꾸 귀찮게 하면 부모님하고 회사 동료들이 그 영상을 다 보게 될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 남자의 정체는 법대생, 체포 이후에도 법대생다운 행보

남자의 원룸에는 그동안의 범죄를 입증한 물증들이 고스란히 비치되어 있었다. 서랍 안에는 종류를 알 수 없는 약이 종이에 싸여 있었고, 칼라 인쇄가 가능한 스캐너,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신분증 3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신분증 5매, 대구지방검찰청 사무관 신분증 3매가 나왔다.

남자는 진술을 거부하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압수한 메모지에 있는 여성들에게 연락을 넣어 한명씩 만나 탐문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를 해보니 남자는 나름대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서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를테면 하루 중 오전에 만날 여성과 오후에 만날 여성을 다르게 구성했는데, 그 기준이 키였다. 165센치미터 이하는 오전, 그 이상은 오후에 만나는 식이었다. 서울에서 만날 때는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검사 신분증을 들고 나갔고, 대구에서는 대구지방검찰청 신분증을 사용했다. 여성들의 피해는 동일했다. 모두 돈과 몸을 빼앗겼거나 빼앗기고 있는 중이었다.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검사가 아니어도 좋아요. 그 사람과 계속 사귈래요.”

원룸 인근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미용실에서는 “용모가 반듯하고 예의가 발라서 진짜 검사로 알고 있었고, 소개팅을 시켜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남자의 정체는 법대생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L대학교 법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2004년 1월부터 채팅 사이트에 위조한 검사 신분증을 올려 여성들을 유혹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올린 게시물이었으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허술한 수법에도 쉽사리 넘어오는 여성들을 보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2005년 1월 이후 본격적인 범행을 시작했다. 차를 마시고, 음료수를 건네 정신을 잃게 한 후 여성을 농락했다. 빌려 간 출장비를 갚으라고 하면 A양에게 했던 것처럼 동영상을 뿌리겠다고 협박했다.

A씨를 농락한 ‘가짜 검사’는 잡혔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한 ‘가짜’들이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것이다. 사기꾼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기가 통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럴듯한 모습과 언변으로 사람들의 공포나 환상을 자극한다. 뭔가 앞뒤가 딱딱 맞아들어가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이 술술 풀린다 싶으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사기꾼들은 늘 피해자들을 환상에 도취시킨 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빼간다. 사기꾼들이 주입하는 만족감이나 행복한 느낌은 너무도 강렬해서 사기가 탄로난 뒤에도 사기꾼을 옹호하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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