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일지라도..
'오빠야! 밥묵어라!'
논에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5월 말 낙동강 옆에 있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 앳된 여학생의 목소리가 구슬땀을 흘리며 보리를 베고 있는 논까지 들렸다.
‘그래! 숙아! 곧 갈게..’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시골은 엄청 바쁘다.
논에 있는 보리를 빨리 수확을 해야 그 자리에 물을 넣어 모내기를 할 수 있다.
또, 농민들에게 단시간에 수입을 올려주는 누에도 키워야 해서 부엌에 있는 부지깽이도 그냥 놀릴 수 없다는 말처럼 농번기 일손이 부족할 때다.
그때가 되면 대도시를 제외한 시골은 가정학습이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집안일을 도와주라고 일주일 가량 봄방학을 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친하게 지내는 명수는 집이 시골이라 시내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주말이 되면 집안일을 도우기 위하여 비포장 도로에 덜거덩 거리는 버스를 타고 시골로 간다.
친구 명수의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시골 생활을 즐기기 위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시골 친구 동네에 자주 갔다.
친구 아버지는 낙동강에서 뱃사공을 하므로 집안일을 할 수 없고 어머니는 옆집에 품앗이 일을 나가기에 고등학생이었지만 장남이라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나는 친구랑 집 옆에서 보리를 베고 있었는데 여중 3년인 친구 동생 명숙이가 점심을 먹으러 오라는 소리였다.
키가 그리 커지는 않았지만 까만 눈동자로 눈이 커서 황소 눈이라며 놀렸던 수줍음이 많은 여학생이었다.
‘숙아! 너는 나중에 나한테 시집오거래~~’하면 부끄러워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부엌으로 도망치던 동생이었다.
친구 집에 자주 가는 것은 어쩌면 명숙이를 보기 위함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지내다 세월이 흘러 대구에서 경찰생활을 했는데 바쁜 일상이다 보니 친구의 소식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어느 정도 직장에 뿌리를 내리고 고향 친구들의 소식을 듣다 보니 친하게 지냈던 친구 명수가 산격동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수를 어디 있는 것을 알게 되니 자연히 명숙이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명숙이는 시골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위로 오빠가 있고 밑으로 남동생 2명과 여동생이 있어 형편상 고교 진학이 어려워 경산에 있는 00 산업체 학교를 졸업했고 계속하여 00 회사 기숙사에 있으면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명수가 북구 산격동에서 비디오 가게를 하고 있어 주말이면 명숙이를 만날 수 있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 만나니 학창 시절 어리게만 보였던 모습은 어디 가고 없고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었고 엄청 예뻤다.
파출소 근무는 격일제 근무라서 비번 날이 되면 야간근무의 피곤함도 잊고 오토바이를 타고 경산까지 가서 친구 몰래 명숙이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형사계에 들어가며 쉬는 날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명숙이를 만날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흘러갔다.
명숙이에게 기다리라고 장래 약속도 하지 못한 체 시간이 흘렀고, 평소 말 수가 적고 자신의 의사 표현을 잘 안 하는 명숙이는 집안 어른들의 독촉으로 좋은 자리가 났다며 결혼을 했다.
결혼한 줄도 모르고 형사가 좋아 미친 듯이 일을 하다가 명숙이를 찾았지만 명숙이는 시집을 간 뒤였다.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할 줄 알았다면 명수에게 “명숙이는 내 색시”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둘 것인데 라며 후회를 했다.
미련이야 남았지만 결혼한 친구 동생에게 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 나 역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
아마 인연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따로 결혼을 하였지만 오빠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가끔 보면서 농담도 하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서로 보며 지냈다
신랑 사업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친구를 통하여 들을 때마다 신랑을 보면 한 대씩 때리고 싶었다.
2004. 6월 초여름 아침 아직 잠이 깨지도 않은 새벽녘에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이 새벽에 울리는 것은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별로 달갑지 않다. 그렇다고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없고 해서 보니 경찰청 형사 분 직실 전화였다.
“여보세요. 김형 삽니다.”
“반장님! 지방청 형사 당직 박 형사입니다. 나와 보셔야겠는데요. 한 건 터졌어요.”
경찰청 강력계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박 형사였다.
경찰청 강력반장은 퇴근 후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하여 당직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또, 경찰청 지휘부와 본청에 보고를 하는 자리라서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직책이었다.
“뭔데?”
“침산동에 있는 지하 노래방에서 40대 여자 변사 사건이 발생했는데 사체 형태로 보아 살인 사건 같습니다.”
“계장 님하고, 과장님한테 보고했나?”
“이제 보고 하려고요.”
“빨리 보고해라, 그리고 나는 현장으로 바로 간다 케라. 강력계 외근들을 현장으로 나오라고 비상 걸어”
“예 알겠습니다.”
북구 침산동 노래방 현장으로 가면서 북부경찰서 형사계장한테 전화를 하니 자기도 현장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집에서 15여 킬로미터 떨어진 현장으로 가면서 비상등을 켜고 시내를 가로질러 침산동 5층짜리 건물 지하에 도착하니 파출소에서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경찰서 형사들이 과학 수사팀과 현장을 살피고 있었다.
좁은 계단을 통하여 지하로 내려가자 열린 출입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피비린내로 숨이 턱 막혔다.
현장이 지하 노래방이다 보니 냄새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피 냄새가 더욱 농밀했고 카운터 앞에 40대 여인이 누워 있었다.
시신의 상태를 하나씩 확인하는데 과다출혈로 인한 실혈사로 보였다.
현장 상태로 보아 변태 성욕자의 소행으로 보고 사체를 자세히 보는 중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누구냐?
“며, 명숙아”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향 상주 중동면 낙동강가 옆에서 자랐던 착하고 아름답던 고향 친구 동생 명숙이(가명 당시 44세) 아니든가?
무슨 이런 일이 있나?
현장의 사체를 똑똑히 봐야만 당시 상황을 유추하면서 수사의 방향을 잡을 수 있고 상사에게 보고하는데..
그 뒤로는 더 이상 사체를 볼 수가 없어서 현장을 나와 밖에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명숙이가 누군데..”
밖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서 있다 보니까 친구가 신고 후 어디엔가 갔다가 왔고 조금 있다가 가족들이 왔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나?
이 사건은 내가 꼭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어느 사건보다도 더 열심히 활동을 했다.
아침, 저녁으로 하는 수사회의에서 적극적인 의사를 전달하고 수사 방향에 대하여 진지하게 토론을 하며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늦은 시간까지 놀다가 갔으면 분명히 주변에서 술을 먹고 노래방으로 왔을 것으로 추정을 하고 반경 100미터 주변 술을 파는 곳 전체 수사를 했다.
하지만 주점 주인들이야 매상에만 신경을 쓰지 누가 왔다 갔는지에 대하여는 잘 몰랐고 알아도 적극적인 진술을 하지 않았다.
탐문 수사가 늦으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므로 빠른 시일에 진행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그중 한 주점에서 30대 후반의 남자가 대기업 마크가 있는 작업 잠바를 입고 술을 먹다가 자정이 되어 나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 잠바는 일반 사무직들이 입는 것이 아니고 전자제품 전문 수리공들이 입는 잠바 같아서 북구에 있는 대리점 수사를 또 했다.
많고 많은 대리점 수사를 권역별로 나누어 하나씩 확인 수사를 했지만 이 또한 난감했다.
현재 근무하는 사람만 입고 있는 게 아니고 서비스업에 종사하였던 사람은 전부 회사에서 지급을 하였기 때문에 누구에게 지급이 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작성해 둔 곳이 없었고
일부는 퇴사를 했으며, 받았더라도 누구를 주었다거나 버렸다거나 하니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대로 넘어갈 수가 없어 수사는 계속되었고, 용의자를 찾아내면 노래방에 간 사실이 없다고 하며 부인을 해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현장을 볼 때 단독범이었기에 더더욱 어려운 수사였다.
다른 어떤 사건보다 더 열심히 한 달이 넘게 수사를 했는데 해결을 못하고 발생 경찰서에 나머지 수사를 맡기고 철수를 하고 난 뒤 매일 올라오는 보고서를 봤지만 진척이 없었다. 그리고 세 달이 지나 미제 사건에 편철되어 넘어가고 말았다.
피해자 명숙이는 비교적 경제가 넉넉한 사람과 결혼을 하였지만 생활이 조금 어렵게 되어 본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아 아이들 학비라도 보태어야겠다며 비디오테이프 가게를 하던 오빠가 운영하는 노래방 카운터를 보게 되었었다.
생활력이 강한 명숙이는 신랑의 무능을 질책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위하여 학원비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직업 전선에 뛰어든 것이었다.
신학기가 되면서 대학입시를 준비 중인 큰 아들을 위하여 오전에는 집안일을 하고 오후가 되면 노래방에 나와 청소를 하며 손님 받는 일을 몇 달째 하고 하고 있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술을 먹고 들어와 시비를 걸어오는 진상 손님들로 인해 고통이 있었지만 오빠에게 말을 하면 그만하라고 할까 봐 특유의 인내로 참아가며 지내왔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손님이 몇 방이 있었으나 1번 방에 있던 손님이 영업이 끝이 났는데도 계속하여 사용하겠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영업이 끝나면 오빠에게 그날 수입된 것을 보고하고 퇴근을 하는데 연락이 없어 친구가 전화했다.
"숙아! 오늘 손님 좀 있었나?"
"별로 없다가 늦게 두 방 들어왔다가 한방은 가고 이제 한방 남았다."
"어떤 손님인데?"
"남자가 혼자 왔는데 술 한잔 했는 것 같더라"
"손님한테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하고 일찍 마쳐라."
"알았다 오빠!"
그렇게 전화를 하고 나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안 와서 시간을 보니 새벽이 되었다.
다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혹시 시간이 늦어 전화를 안 하고 바로 집에 갔는가 싶어 집으로 전화를 해도 아직 집에 안 왔다 했다.
이상하다 싶어 노래방에 오니 카운터 앞에 동생이 피를 흘린 체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수사 지휘부에서는 피해자의 상태로 봐서 초범의 짓이 아니고 분명히 전과자의 짓인데 여러 명은 아닌 것 같았고 단독범으로 판단했다.
사건 발생 후 여러 갈래의 수사를 하였지만 피해자는 치정에 엮일만한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알고 있어서 치정관계는 아니라고 단정했다.
이는 분명히 변태 성욕자의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 넘는 수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북부서에 전담반만 설치하고 우리는 철수하게 된 것이다.
안타깝고 안타까운 사건이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리 능력이 없었던가 생각하며 자책하기도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0년 6월 어느 날 고향에서 과수원을 하는 친구(대구에 있던 피해자 오빠)) 명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 김형사!”
“어! 그래 명수야 웬일이고?”라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전화하게 된 이유는 친구의 조카이자 사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피해자의 아들이 엄마 사건이 아직 미제로 남아 있어 자신이 경찰 해서 잡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형사가 되겠냐고 하여 일단 경찰시험을 치고 들어와 교육을 받은 후 파출소 근무를 하고 난 뒤 형사계를 지원하면 된다고 했다.
그 뒤 2012 내가 경찰청 광역수사대 팀장으로 근무를 할 때 경찰시험에 합격을 하고 교육을 마쳤다고 연락이 왔다
“아저씨 저 종훈(가명)인데요 아시겠습니까?”
“누구? 종훈이?”
“상주 중동 명수 외삼촌 조카입니다”
“아! 그래 경찰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작 연락을 좀 하지”
“저는 00 경찰서 00 파출소에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 웬일로?”
“경찰서 형사계에 들어가고 싶은데 아저씨가 알아봐 주세요.”
“알았다. 내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할게”
매년 1-2월이 되면 경찰에는 승진하는 사람들이 있고 해서 보직 이동이 있었는데 마침 00 경찰서 수사과장이 나랑 예전에 서부서에 같이 근무를 하였던 과장이라 종훈이를 형사계로 받아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과장님 잘 계십니까?"
"아이고! 팀장님 저는 잘 있습니다."
"아쉬운 소리 한번 하겠습니다."
"뭔데요?"
"형사는 스스로 하려고 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 해야 되는데 추천을 한 명 하려고 합니다"
"누군데요? 팀장님이 추천하신다면 틀림없으니 받아야지요."
"지금 00 파출소에 있는데 꼭 형사가 하고 싶다고 하니 한번 살펴 주세요."
"알겠습니다."
신임 경찰들은 처음에 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형사만 생각하고 형사를 하기 위하여 경찰을 지원하지만 교육 중이거나 실무교육 때 형사가 힘이 들고 자기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형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종훈이는 엄마가 자신의 과외비를 벌기 위하여 일을 하다가 사망한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험난한 길이 될지언정 해보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종훈이는 00 경찰서 형사계에 발령을 받아 형사로서를 일을 하나씩 배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2016년 초에 경정으로 승진을 하여 대구 성서경찰서 형사과장을 하고 있었다.
형사과장은 경찰서 출입기자들과는 매일 아침에 만나 전날 발생 사건이나 사고를 설명하며 티타임을 갖는다.
2017. 11월 말 대구 00에서 귀가 중인 여성이 둔기에 맞고 손가방을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00 경찰서에서 발생한 노상강도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우리 관할 사건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외근 형사들에게 전달하며 외근할 때 참고하라고 지시를 했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출입기자들과 차를 한잔 나누고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남아 있던 김 기자에게 예전 북부경찰서 노래방 사건이 아직 미제이고 그 피해자가 친구 동생이며 그 아들이 엄마를 살해한 범인을 잡겠다며 00 경찰서에서 형사를 하고 있다고 하며 노래방 사건에 대하여 소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00서 형사들은 노상강도사건 현장 주변 CCTV 수사를 하던 중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길에 버린 것을 알았다.
이를 확인하고 그곳 주변에 있는 담배꽁초 수십 개를 수거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더니 그중 하나가 미제로 남아 있던 북부경찰서 노래방 살인사건에서 나온 DNA와 일치된 것이 나왔다.
발생 당시에는 DNA 기술이 없었지만 피해자 신체에서 범인 것으로 추정되는 타액을 체취해 둔 것이 있어 13년 만에 대조하여 밝혀진 것이었다.
과학이 발전을 하고 기술이 좋아져 2010. 1. 25. DNA 신원 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징역이나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그 형이 확정되어 수용 중인 사람에 적용하는 법률이 생겨 범인이 다른 범죄로 처벌을 받으면서 보관해 둔 DNA에서 노상강도 발생 사건 용의자 추정 담배에서 나온 DNA가 일치를 하였고, 또 그 범인이 미제사건의 범인이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발생사건 수사 중 노상강도 용의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종훈이는 흥분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같이 근무를 하고 있는 조장과 반장 역시 13년 전 발생하였던 미제 살인사건 피해자가 수사 중인 형사의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고민을 많이 했다.
수사팀에서 계속 같이 활동을 해서 종훈이 손으로 범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도록 할지 아니면 수사에 배제를 시켜야 될지 고민을 하면서 소재 추적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전과자이고 거처가 불명확한 자라 소재를 찾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수사로 범인의 소재를 특정하고 검거 조가 편성되면서 팀장이 종훈이를 보고 “자네는 이제 되었으니 수사팀에서 빠져라”라고 했다.
검거 시 불상사가 날것을 미리 차단한 것이었다.
오직 그놈을 잡기 위하여 경찰에 들어와 형사가 되었고, 엄마를 불귀의 객으로 만든 놈을 자기 손으로 꼭 검거하여 엄마의 한을 풀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빠지라고 하니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선배와 동료들의 위로에 마음을 고쳐 먹고 동료들이 범인을 검거하러 갈 때 종훈이는 팔공산을 한 바퀴 돌면서 조속한 검거를 기도했다고 한다.
종훈이가 빠진 뒤 00 경찰서에서는 과장을 중심으로 수사회의를 거쳐 배회처를 중심으로 수사를 하여 범인인 김정배(당시 48세)를 13년 만에 신암동 여관에서 검거를 하여 구속시켰다.
사건 당시 북부경찰서에서 범행 시간 전에 옆 건물 2층에서 늦게 까지 술을 먹고 간 피의자를 찾아 수사선상에 올려 수사를 했지만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였을 뿐 아니라 뚜렷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보내주었던 대기업 잠바를 입고 있었던 그놈이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제대로 된 수사를 하여 검거를 하였다면 제2의 범행을 막았을 것인데 안타까울 뿐이었다.
늦게나마 검거한 것은 과학수사의 덕이지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싶다.
모 신문사 김 기자는 00 경찰서에서 미제 살인범을 검거한 것을 알자마자 나에게 일주일 전에 들었던 내용을 기반으로 00 경찰서에서 제공한 보도 자료보다 상세히 보도를 내자 00서와 경찰청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떻게 하여 자료 제공도 없이 상세히 보도가 나갔냐고 하면서 00 과장이 김 기자에게 항의를 했지만 사건 검거 일주일 전에 들은 것이었고, 기자가 그런 것을 기사화하지 않으면 어떤 것을 하느냐며 대답했다고 한다. 어느 작가가 글을 쓰도 이런 운명적인 글은 못 쓸 것 같았다.
수사는 마무리를 하고 나면 항상 후회를 한다.
해결하였을 경우는 이렇게, 저렇게 했으면 좀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인데라고 후회를 하고,
미제로 남겼을 때는 무엇이 부족하여 해결을 못했을까 하고 후회를 합니다.
이 사건도 아쉽게 미제로 남겨두었던 사건이었는데 세월이 지난 뒤에 아들이 검거하여 다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빠야 밥 묵어라”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다.
예쁜 동생아!
이승에서 못다 한 것들은 저승에서 나마 이루기를 바라고 자네의 한이 아들에게로 전해져 해결된 것 같으니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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