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훈민정음해례본

by 써니짱

아! 훈민정음해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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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해례본이란?

해례는 세종대왕의 명을 받고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원리” 즉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글자를 만든 원리와 용업을 상세히 설명한 글이다.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는 첫머리에 있는 서문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여기에서 발음에 따라 입의 모양이 다르고 이것을 글자로 변화시켰다.

한글 창제의 원리가 기록된 해례본은 1940년 처음 발견되어 일제 강점기 때 조용히 보관되어 있다가 해방 후 한글발전을 위해 영인본을 만들어 학회에 내어 놓아 한글 창제의 원리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한글학자들은 해례본이 없었기에 한글 창제를 장님이 코끼리 코 만지는 식으로 추측하였다.


고대 문자 모방설, 몽골 문자 기원설, 범자 기원설, 만주지역 문자 등등 의견이 분분 하였으나 훈민정음해례본 발견으로 말끔하게 해소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사라지는 우리 문화재를 구입하여 보관한 전형필 선생이 1940년에 구입하여 보관한 훈민정음해례본을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이라 부른다.


훈민정음 상주본은 훈민정음해례본의 일종으로 2008년‘상주’에서 훈민정음해례본이 새로 발견되면서 훈민정음 상주본이라고 불린다.


상주본이 나타나기 전까지 현존하는 유일한 해례본은 간송본이었다. 상주본은 간송본보다 보존상 태도 좋고 뒷면에 낙서가 없어 내용이 잘 보인다. 특히 책 여백에 훈민정음 관련 주석이 적혀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2008. 7말 상주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여름휴가를 얻어 상주시 화북면 용유계곡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들과 같이 민박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려 받아보니 대구에 살고 있는 친구 동생이며 골동품을 하는 후배였다.


‘형님! 저 재엽(가명 당시 50세)인데요. 지금 어디 계세요’

“어! 재엽이가! 나는 휴가라서 문장대 밑에 가족들하고 있다.”


‘형님! 쫌 빨리 봅시다.’

‘내 휴가 마치고 주말에 대구 가면 그때 보자’


‘형님! 그래서 될게 아닙니다.’

‘뭔데?’

‘국보급인데 형님이 좀 찾아 주셔야겠습니다.’


‘야! 아무것도 모르는 나한데 웬 국보급이냐?’

‘형님! 상주에 있는 물건인데 도둑을 맞아서 그런데.. 하여튼 빨리 봅시다.’


‘내가 지금 나갈 입장이 아니니까 나중에 보자.’

‘알았습니다.’

하기에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두어 시간이 지나고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형님! 나 상주에 왔는데 상주 화북 어디쯤 계십니까?’

‘뭐라고? 상주라고?’


‘예! 상주입니다.’

‘이 사람이 뭔 일인데 여기까지 오나? 상주 왔으면 화북파출소 옆 계곡을 따라오면 쌍용 계곡이 나오는데 내가 다리 위에 나갈게’ 하고 시간이 되어 나갔다.


대구에서 나한테 전화를 끊고 바로 출발을 한 후, 상주 시내에 와서 골동품 상회를 운영하던 조 모 씨(작고)를 만나 다시 한번 얘기를 듣고 나에게 오는 길이라고 했다.


상주는 땅이 비옥하고 살기가 좋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번성하였던 고도(古都)였다. 낙동강을 따라 번성하였던 함창, 상주, 선산 등에는 지금도 공사를 하다 보면 간간히 유물이 발견될 만큼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쇠락하여 명맥을 유지할 뿐이지만 자연히 골동품상들이 많이 생겼고 한때는 거래가 활발하여 전국의 골동품상의 발길이 잦았던 소도시였다.


여름휴가철이라 계곡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고 물어봤다.


‘무슨 일이기에 급하게 여기까지 왔나?’

‘형님! 이거 대박인데 좀 도와주세요’


‘그래 뭐고?’

‘제가 대구 사무실에 있다 보니 상주에서 골동품을 하는 조 씨에게 전화가 왔는데 자기 집에 자주 출입하던 배 씨가 뉴스에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 하며 보이는데 자기 집에 있던 옛날 책이라는 것이라며 찾아 달라고 해서 나는 형님이 상주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있고 해서 수사 의뢰하러 온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배 씨가 가져갔다고 하던데?’

‘배 씨는 촌에 살며 자기 골동품상에 가끔 들려 고서를 한, 두 권씩 사가며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가계에 와서 고서를 10권을 사간 사실이 있었는데 그때 아마 가져간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안 팔았는데 배 씨가 가져갔단 말이가?’

‘그런 것 같아요’


‘조 씨가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나?’

‘조 씨도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것은 모르고 그냥 자기 집에 있던 고서라고만 알고 있었고 배 씨에게 판 적이 없는데 배 씨가 가져가서 언론에 알린 것이라고 합니다.’


‘조 씨는 진짜 모르고 있다가 팔고 나서 국보급이라고 하니 판 사실이 없다고 하는 거 아니가?’

‘아니라고 합니다. 절대로 판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마 고서를 여러 권 사면서 훈민정음해례본을 그 속에 넣어 가져 간 것으로 조 씨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찾아 달라는 것이 아닙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주 시내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던 조 모 씨가 자기 집에 있던 훈민정음해례본을 도둑맞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수사단서가 있어야 착수를 하니 고소장이나 진정서를 넣으면 수사를 하겠다.‘고 하니

‘알았습니다’하고 돌아갔다.


휴가를 마치고 월요일 출근을 하니 민원실에 골동품상 주인이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능팀이 골동품을 수사하여야 하나 죄명이 절도고 수사를 잘해야 하기 때문에 형사계 선임인 정모 형사에게 수사를 하라고 했다.


정말로 국보급이면 수사한 사람 일계급 특진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과장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형사들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고 또 입증이 되더라도 그 공은 형사에게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수사를 시작하기 전에 정 형사를 따로 불러 지시를 했다.


‘정 형사 봐라! 이 사건은 중요한 사건이고 국보급 문화재라고 하니 수사를 잘해야 된다. 피해자 진술서 작성을 마치는 즉시 압수수색영장을 받아서 해례본부터 확보해 알았지?’

‘예 잘 알겠습니다.’


‘수사를 잘해서 국보급을 찾아내면 특진도 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했는데도 당시 압수를 못했던 것이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진정인 진술조서를 작성하던 정 형사가


‘집에 있었다고 하는 훈민정음해례본을 어떻게 구입한 것입니까?’

‘떠내기 손님들이 와서 팔기도 하고 사가기도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모릅니다.’


‘언제쯤 구입하였는지도 모릅니까?‘

‘1~2년 정도 되었는데 아마 30만 원 주고 산 것 같습니다.’


‘구입을 하고 나서 어디에 보관을 하고 있었나요?’

‘저희 가게에는 고서를 주로 취급하는데 일정하게 정리하여 두는 것이 아니고 제 나름대로 분리를 해서 책장에 넣어두기도 하고 그냥 책끼리 쌓아두기도 합니다.’


‘도난당한 것은 언제 알았나요?’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는데 가게에 자주 출입하던 배 씨가 보이며 화면에 우리 집에 있었던 책이 보이기에 혹시 우리 것이 아닌가 싶어 가게에 가서 찾아보니 집에 있던 책이 없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배 씨에게 돈을 받고 판매한 것은 아닌가요?’

‘다른 고서는 팔았지만 그 책은 판 사실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배 씨가 가져갔다고 생각하는가요?’

‘며칠 전 저희 가게에서 고서를 10여 권 사가면서 그때 가져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 씨에게 그 책을 돌려 달라고 해봤나요?’

‘뉴스 나올 때 전에부터 자기 집에 있었다고 하던데 주겠습니까? 그래서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인 피해상황에 대하여는 차분히 진술을 잘했지만 구입단계나, 관리에 대한 질문에는 확실한 답을 못했다.


나중에 밝혀진 내용은 어느 절도범이 안동 고택에서 해례본을 훔쳐 상주에 와서 골동품을 하는 조 모 씨에게 10만 원에 판매를 하였고 그저 고서인 줄만 알고 구입한 조 씨 역시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것은 몰랐다고 했다.


명확한 구입처와 관리에 대한 진술이 없고 조 씨의 소유라는 것이 밟히지 않아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명의들도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임상을 많이 함으로써 그 능력이 배가 되는 것과 같이 형사들도 사건을 많이 하고 다뤄야만 유죄를 입증할 수 있게 수사를 하게 되는 것인데 실수를 한 것이다.


과장이 조사를 하는데 옆에 서서 일일이 지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경북청에 과학수사팀에 허언 탐지기를 의뢰해 보라고 했다.


‘정 형사! 사무실로 와봐’

‘예! 과장님!’


‘정 형사! 경찰청에 허언 탐지기 의뢰해봐’

‘알겠습니다.’그리고 며칠 뒤


‘과장님!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진정인은 승낙을 했는데 배 씨가 거부를 해서 못할 것 같습니다’

‘차분히 설명하고 설득을 해봐’


‘몇 번을 설명하고 요청을 했는데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서로의 주장이 다르니 그 방법밖에 없는데..’


피해자는 응하였으나 배 모 씨는 처음부터 거부를 했다. 할 수 없이 불기소로 송치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고민을 하고 기각이 되더라도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어야 하였고,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데 성급하게 검찰로 보낸 것이었다.


대단한 실수를 했다.


그 후 피해자가 훈민정음해례본을 국가에 헌납을 해서 국가 소유가 되고 재차 검찰청과 문화재청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상주지청에서 직접 수사하여 배 씨를 절도죄로 구속시켰지만, 2012년 12월 고법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조 모 씨가 사망 전에 국가에 헌납을 하여 국가 소유라고 인정을 하여 해례본은 문화재청에 귀속되었다.


배 씨가 구속이 되었지만 장물인 훈민정음해례본은 제출을 하지 않고 수사관들이 몇 번에 걸쳐 압수수색을 하였지만 확보를 못했다.


2015년 배씨집 화재로 2017년에 일부가 불에 탄 상태의 해례본을 사진으로 보여서 어느 정도 훼손이 되었는지 모른다.


대법원 3부는 배 모 씨가 국가상대 청구이의소송 상고심 패소 원심 확정했다.


배 모 씨는 학자들 말로는 가치는 1조가 된다고 하니 그 절반이라도 달라며 해례본을 감추어서 어디에 숨겼는지 배 모 씨 집을 2차례나 수색하였지만 아직도 못 찾고 있다.


내가 처음 제보를 받았고, 하나하나 챙겨서 수사를 했더라면 중요한 국가 유산을 온전히 압수하여 전 국민들이 볼 수 있었고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전달될 것인데 수사지휘를 한 책임 과장으로서 제일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너무 아쉽고 국가에 죄를 지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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