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어쩔 수가 없다’ 원작
2026.2.12 완독
<액스> 도널드 E.웨스트레이크 340P
The AX (도끼)
박찬욱 감독이 2009년부터 제작 의사를 밝혀온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원작 소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왜 그가 이토록 오랫동안 이 작품에 매료되었는지, 왜 주인공 ‘버크’의 적임자로 이병헌을 점찍었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몇 년전 읽었던 박찬욱 감독의 책 <몽타주>에서 이병헌에 대해 ‘대한민국의 가장 건강하고 평범한 젊은이를 연기하는 데 적합한 건치를 가졌죠‘라고 했었다.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소설 속 버크 역시 성실하고 평범한 시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 건강한 ‘건치 미소’ 뒤로 서늘한 살의를 숨긴 채 경쟁자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상상만으로도 ‘박찬욱 스타일’ 그 자체이다.
무엇이 23년간 성실히 근무해 온 평범한 가장을 킬러로 만들었나? 소설은 해고통지서를 받은 한 남자의 붕괴를 요란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절망의 몸부림이나 감정 적인 독백 대신, 놀라울 정도로 드라이하다. 그는 마치 또 다른 ‘업무’를 처리하듯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수집하며, 경쟁자들을 제거해 나간다.
이력서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여 화이트칼라의 세계로 복귀하려는 서구적이고 세련된 수단이라면, 원제 도끼는 그 이력서가 수용되지 않는 시스템에서 찾아낸 가장 원시적이고 직접적인 해결책이다.그는 종이(이력서)로 경쟁자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 주저 없이 금속(총과 도끼)을 선택한다.
P240. ‘총은 깨끗하고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게 해준다.’
불필요한 감정 묘사 없이 계획과 실행만을 건조하게 보여주기에 긴장감은 더욱 섬뜩하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전개되는 사건들은 속도감을 유지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시스템에 매몰된 인간의 비정함을 목격하게 한다.
주인공은 자신을 동기 없는 연쇄살인범들과 차별화하며, 그에게 살인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자 재취업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정당화한다.
P266. ‘내게는 동기가 있다. 내게는 동기가 있고 반드시 제거해야 할 특정 인물이 몇 명 있다. 그것은 충분히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바꿀 수 없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패를 남들보다 현명하게 쓰려 노력할 뿐이라고 자위한다.
P 87.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환경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내게 주어진 패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그 패를 남들보다 현명하게 쓰도록 노력할 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저한 효율성 논리로 작동하는 고용시장에서 재취업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중년 가장에게 사회적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버크의 광기가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서바이벌 게임‘과 같은 고용시스템이 낳은 결과물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나를 뽑지 않는다면 경쟁자를 제거하겠다'는 버크의 극단적인 논리는 인간의 존엄성보다 기업의 이윤이 우선시되는 비정한 노동 시장에 던지는 서늘한 냉소가 아니고 무엇이랴!
임무를 마친 뒤 마주한 '목적은 달성했지만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미래'. 이 모순적이고 개운치 않은 결말 너머로 느껴지는 감정은 '공허한 승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 누군가를 잡아야 할 필요가 없듯이, 생존이라는 명분 아래 무너지는 인간성의 경계선.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지켜야 할 직업적 가치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 감상의 독서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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