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껴안고도 살아가는 법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by 트루노스


2025.12.18 완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All the beauty in the world / 패트릭 브링리 368P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먼저 올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에서 '과거와의 화해'를 고민했다면, 이번에는 '슬픔과의 화해'를 배워봅니다.


형의 투병과 죽음 이후,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며 슬픔을 견디고,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가는 패트릭 브링리의 에세이.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함께 호흡하며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그마저 느린 호흡으로 더 깊게 느끼며 읽고 싶은 책이다.


P33.그런데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아마도 상실의 경험이 아니라면 그냥 스쳐지났을 수도 있는 이 장면에서도 타인에 대한 애정과 삶의 지속성을 보게된다.


P143.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 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듣자마자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 주리라 결심한다.


특히 저자가 브뤼헐의 <곡물 수확>을 바라보며 남긴 사유는 내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곡물 수확 (The Harvesters) | 1565년 | 피터 브뤼헐


P164. 브뤼헐의 이 명작을 바라보며 나는 가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흔한 광경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지었고 그들 중 대부분이 소작농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평생 노동을 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휴식을 취하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도 일상적이고 익숙한 광경을 묘사하기 위해 피터르 브뤼헐은 일부러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에 맨앞자리를 이 성스러운 오합지졸들에게 내주었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사랑은 단순히 함께한 물리적 시간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잊지 않은 모든 찰나— 성스러운 오합지졸 같은 순간들—속에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별은 모든 것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것만을 남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비탄의 본질을 '리듬의 상실‘ 이라는 말로 표현함으로써 여전히 그의 아픔은 무겁게 느껴진다.


P191.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의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추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누군가 내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떠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 나 자신에게도 위로를 건네고 싶다.


원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한국판 제목이지만, 오히려 그 제목때문에 책을 덮고 나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작품 한 점을 보고 나온 듯한 여운이 남는다.


어느 한 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부유하던 슬픔이, 미술관의 고요한 복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는, 그야말로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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