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심장으로 묻는 '인간됨'의 유통기한은?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by 트루노스



2025.12.20 완독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448P

KLARA AND THE SUN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로 먼저 만났던 노벨문학상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그의 소설들은 차분하고 정제된 문장 속에 근원적인 슬픔과 존재의 연약함을 담아내는 특징이 있다.



매우 정중하고 감정의 과잉이 없어 슬픈 장면에서도 인물들은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는 게 그대로 전달된다. 오히려 그 절제된 태도 때문에 그야말로 ’앓이‘는 읽는 중 이야기 속에서가 아니라, 책을 덮은 뒤에야 ‘뒤늦게 몰려오는 해일' 같이 찾아온다.



역할이나 신념을 위해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이시구로 문학의 인장과도 같다. 인간의 애틋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 늘 읽은 후에야 깨닫게 만든다. 몇 년 전인가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뒤늦은 ’앓이‘로 오랫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의 시선을 빌려 인간의 사랑과 고독, 그리고 '영혼'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아름답고도 서글픈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AF(artificial friend) '클라라'는 쇼윈도에서 자신을 선택해 줄 아이를 기다린다. 마침내 몸이 아픈 소녀 ‘조시’의 친구로 가족이 된다. 고도의 지능을 가졌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클라라는 투병 중인 조시의 친구가 되어 그녀의 일상과 아픔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인공지능인 클라라가 조시를 위해 헌신하면 할수록, 인간이 가진 이기심과 사랑의 유한함을 목격하게 된다. 조시를 위해 햇살을 신앙처럼 믿는 순수한 인공지능의 눈에 비친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전작들에 비해 초반에는 인공지능 AI 클라라의 시선은 다소 건조하고 러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읽을수록 클라라의 제한된 인식과 순수한 믿음이 오히려 인간의 사랑과 상실을 더 또렷하게 비춰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을 향한 신앙 같은 믿음, 그리고 조시를 향한 헌신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조시를 향한 클라라의 맹목적인 헌신은 때로 미신처럼, 때로는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처럼 다가와 울림을 준다.



한시적인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클라라는 자신의 끝을 알면서도 부정하지 않아서 더 아프다. 클라라에게 사랑의 가치는 영원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짧고도 찬란한 투신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소멸을 통해 타인의 삶을 완성하는 클라라의 희생과 헌신이 인간의 그것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면, 우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인간의 이기심과 소모적인 관계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 보아야 한다.



결국 인간다움이라는 철학적 테제를 인간이 아닌 AI라는 존재의 눈으로 묻고 있다는 개인적 결론이다. 소설 속 이야기가 우리에게 ‘언젠가’ 일어날 것을 짐작하면서도 ’아직은‘이라는 말로 간신히 유예해 둔 것 같은 느낌일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 구병모의 <한 스푼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소환시킨다. 마이클 샌델의 <완벽에 대한 반론>에서 말하는 ‘선택적 향상’이 가져올 윤리적 불안을 미리 들여다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에게 '인간답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448P 민음사



*개인적 감상노트입니다.






#클라라와태양 #가즈오이시구로 #독서노트 #AI #디스토피아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