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여자와 더 힘든 여자

권여선 작가의 <이모>를 읽고

by 워니

윤경호는 시이모의 이름이다. 결혼하지 않은 맏딸로 남자보다 더 한 짐을 지고 55세까지 평생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남동생 윤경철의 노름빚을 갚았고 그 후에도 어머니가 남동생을 위해 몰래 만든 서류로 인해 보증을 섰다가 신용불량자로 다시 10년 동안 빚을 갚았다. 그 후 2년간 잠적하여 혼자 홀가분하게 살았으나 췌장암에 걸려 석 달간 투병하다가 죽었다.

작품의 서술자는 윤경호의 조카며느리인 ‘나’이다. 만약 지지리 복도 없는 윤경호가 서술하는 스토리였다면 그녀의 삶이 기막힌 일이기는 해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나’라는 관찰자가 서술하는 이야기는 절제되거나 거리를 두고 있어 이모의 비극이 더 아프게 다가오고 작가의 의도는 더 무게 있게 느껴졌다.

‘나’는 췌장암으로 입원 중인 시이모를 병문안 가서 처음 만났다. 시이모는 작가인 ‘나’에게 관심을 보였고, ‘이모님’이라는 호칭을 ‘이모’로 부르라고 했다. 이모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서 덧씌워진 굴레와 시한부의 삶을 마감하면서 ‘나’의 시외할머니와, 시어머니와, 남편 태우와 ‘나’에게 1/3씩의 유산 상속을 지정해 두었다.

그런데 아들만을 위한 삶을 살아온 이모의 어머니는 맏딸에게 희생을 강요했던 것도 모자라 그 딸이 남긴 유산조차 아들 윤경철의 빚 갚는데 쓰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나’의 시어머니가 언니의 유언에 따라 유산을 분배하는 것 또한 빚을 가진 남동생보다 자신의 아들 태우를 먼저 생각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그 사실에 무거운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모의 어머니와 이모의 여동생이 자신의 아들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에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게 되었고 여자들이 겪어내야 하는 고된 삶의 일부는 여자로 인한 것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내 속에 나를 억누르고 있는 다른 나를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난 후 친정에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다. 또한 결혼하고 난 후 명절에 친정을 다녀온 적도 없다. 명절에 시어머니와 시댁 친척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집을 비울 수도 없었지만 어쩌다 한번 시어머니가 올라오지 않는 경우에도 친정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호된 시집살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시댁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에만 스스로 채찍을 휘둘렀던 내 생각 밑바닥에는 딸을 한없이 가벼운 존재로 치부해 버리는 알 수 없는 미운 것이 숨어있었다.

오래전 흐릿한 기억의 나의 어린 시절에는 단정하게 쪽진 머리를 한 할머니들이 많았다. 그런 할머니들이 많았던 70여 호 되는 시골 마을에서 나의 엄마와 같은 젊은 며느리들은 웃어른 잘 모시고 조용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었고 온 동네는 대부분 신나는 일보다는 무거운 고요함에 잠겨 있었다. 그때의 무거운 공기가 시골 마을에서 경험했던 어린 나에게 가르치고 훈계하면서 숨어들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생각과 의지와 각오는 아주 미묘한, 마음에 낙인 된 것에 따라 움직이는 데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오랜 관습에 의한 것인 경우가 있다. 이렇게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종속되어 내 속에 숨어 있는 미운 나는 아마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계주의 그물에 갇혀있었던 것 같다.

권여선 작가는 이 시대 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조카며느리인 ‘나’에게까지 유산을 남기는 이모를 통해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응원하면서도 꼭 필요한 것은 경제적 자립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또 이모의 어머니와 ‘나’의 시어머니가 스스로를 얽어 멘 종속된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세상을 건강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작은 외침이 나에게도 크게 와서 울렸다. 그렇다고 나의 오늘이나 내일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과 관계에서 좀 자유로워지고 내가 결정하는 일에 기꺼이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