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가 장성 근처를 지나가고 있을 때 차창 밖으로 하얀 꽃나무를 보았다. 생명을 잃은 듯한 나목 위에 허옇게 자리 잡은 꽃은 반갑기보다는 어색해 보였다. 햇살이 눈부셨다면 좀 괜찮았을지는 모르겠다. 삼월 중순, 남도에는 벌써 봄이 와서 매화가 피어나는데 내 마음에는 봄을 들일 자리가 없었나 보다.
광주에 도착해서 시어머니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5km를 걸었다. 시어머니 집은 터미널에서 가까운 2km 거리에 있고 늘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니는 길이라 운동 삼아 개천을 따라 걸으면 꽃을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매화가 길가 군데군데서 보였다. 겨울을 견딘 꽃은 이런 향기쯤은 지닐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진한 향을 이끌려 길 모르는 아이가 제멋대로 가다가 길을 잃듯 잘 알고 있는 머릿속에 그려진 그 광경들이 나타나질 않았다. 무등경기장이 오른쪽 저 멀리에 보여야 하는데 나타나질 않았지만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정신없이 계속 걸었고 점점 인적이 끊어지고 공터와 공사장과 주저앉은 빈집이 보이는 곳에 다다라서야 덜컥 겁이 났다. 간신히 택시를 타고 7km를 거슬러 오후 5시쯤 집에 도착했을 때, 시어머니는 중문을 잠그고 잠을 청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어째 왔냐?"
"어머니 보고 싶어서요."
시어머니는 웃는 내 얼굴을 한번 힐끗 바라보더니 크게 반기는 기색 없이 부엌으로 천천히 걸어가 가스레인지에 올려진 냄비 뚜껑을 열어보고 불을 켰다.
"저녁 먹어야지 야"
하시더니 다시 안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데 하얀색이 누렇게 변한 내복 바지 엉덩이 부근에는 오물이 번진 자국이 보인다. 어머니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힘겹게 침대에 걸터앉아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막내 시누이가 며칠 전 다녀가면서 오골계탕을 사다 드렸는지 진한 국물이 보약처럼 느껴지는 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작은 방을 천천히 들락 거리면서 이불을 안고 안방에 자리를 펴놓았다.
어머니가 집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방문 요양 도움을 받으려고 몇 주 전에 치매 안심 센터를 통해서 장기요양인정 신청을 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어머니 집을 방문해 장기요양인정 신청 조사를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1년 전부터 치매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일상생활이 심각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어 서둘러 요양등급을 받아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둘 필요가 있었다.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켜 둔 채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나는 어머니에게 할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잠도 오지 않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면담으로는 많은 것을 것을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아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마음에 몇 자 적어 봅니다'
'○○○ 신청자 며느리 드림'으로 끝나는 두 장을 빼곡히 채운 편지에는 어머니의 간략한 삶과 병력과 지금 현재의 상태를 담았다.
어머니는 한 동네에서 50년을 살고 있다. 여장부였던 어머니는 이웃에게 도움을 베풀면서 살았고 그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곁에서 어머니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더러는 치매 노인 취급하며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머니는 자식이 넷이나 있지만 그 동네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병 치료 때문에 큰 아들 집에서 두어 달 지내다 내려간 후에는 그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안쳤다. 당뇨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카무트를 물에 불려 냉동해두었던 것을 꺼내 쌀만큼 카무트를 넣고 밥을 지었다. 어머니는 냉동실을 열어보지 않는다. 어떤 때는 냉동실 문이 열린 채로 얼어붙어 있기도 했다. 냉장실 문을 여는 경우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요즘은 낙지젓을 즐기는 편이라 그거 하나로 식사하는지도 모른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도 내가 갈려고 하지 않자 어머니는 답답했는지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어머니, 조금 있다가 어떤 선생님 한 명이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뭘 물어볼 거예요. 나중에 어머니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니까 꼭 해야 되는 거라서 제가 왔어요."
"알아쓰야. 내가 알아서 할탱게 넌 언능 올라가. 아이구 머난길 언제 가끄나"
어머니는 나를 보내려고 애를 쓰다가 9시 가까이 되자 화를 내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9시 반이 조금 넘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나온 직원은 마른 체격에 건조한 표정이었지만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급히 어머니를 모시러 나가는데 어머니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하는 질문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나이, 날짜, 생일을 물어본 다음 볼펜을 쥐고 내보이면서 왼손으로 받아서 오른손으로 옮겨 보라고 했다. 또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마지막으로 200원은 10원짜리 동전으로 몇 개냐고 물었다.
식탁에 앉아 질문을 끝낸 공단 직원은 어머니에게 방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하면서 멀찌감치 있던 나를 식탁으로 불렀다. 보호자의 의견이 얼마나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상태를 자세하게 알려주어야 했다. 어머니는 말수가 줄어들고 화를 자주 내서 가족들과 대화가 힘들어졌는데 병원이나 관공서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처리를 하는 편이다. 약을 제 때 챙겨 먹지 못하거나 음식이 상해도 잘 모르기도 한다. 가장 힘든 건 씻는 것을 싫어하고 위생 문제로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이 자식들은 멀리서 살고 있고 어머니는 치매가 진행 중인데 살던 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아 혼자 지내야 하기 때문에 꼭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미리 써 두었던 편지를 내밀었다.
어머니가 공단 직원의 질문에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또렷하게 답변하던 것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속상하기도 해서 눈물이 났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평소 자신의 주민등록 번호도 모르면서 조사관의 질문에는 주민등록의 생일을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조사를 나왔던 공단 직원은 편지를 무심히 보더니 두고 갔다.
조사를 마치면 요양 인정 신청자의 코드가 발생된다. 그 후 어머니와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부여받은 코드를 넣어 의사소견서를 공단으로 제출해 달라고 하면 신청자가 하는 일은 끝이 난다. 공단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 등급판정 위원회를 열어 등급을 판정하게 되고 보호자에게 결과를 연락하게 된다.
어머니는 일이 끝났으니 빨리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가라고 재촉했다. 어머니 머리에서는 냄새가 났다. 엊그제 목욕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고 했지만 거짓말이다. 머리를 감겨 드리고 가겠다고 하자 화를 내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는 뭐가 이렇게 화가 나실까"
사나운 눈빛으로 쏘아보는 어머니를 웃으면서 꼭 안았다.
"저한테 화내지 마시고 머리 한 번만 감아요. 비누칠을 해야 깨끗해져요. 물만 바르면 냄새가 나요."
어머니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고 머리를 감기는 내내 순한 양처럼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어머니는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이 귀찮아진 걸까?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화를 내고 말을 걸면 대답만 하거나 귀찮게 한다고 화를 낸다. 어머니는 마음 깊은 곳에 동굴을 만들어 놓고 그 속으로 자꾸만 들어가려고만 하는 것 같다.
치매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병이 아니라서 서서히 나타나는 병증을 모른 채 익숙해지면 치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남도의 매화는 향이 짙다. 봄꽃이 찾아왔으니 봄을 느끼고 기쁘게 맞아야 한다. 일장춘몽처럼 가버릴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