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의 각도기

새천년 국민학교 처번째 이야기

by 아지song

오늘 아침 학교 가는 길, 아마 내가 각도기를 잊고 갔나 봐.

하늘이 파랗고 아름다워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날이야.

그날 아침 바로 책가방을 챙겨서 둑길에 핀 코스모스를 따라서 학교에 갔지.

햇살도 적당히 따뜻하고 바람도 시원한데 운동장 정문에 선생님도 없더라.

정말 좋은 날이야. 1분 정도 늦었는데 말이야.

때마침 방송반에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에 따라

내 발은 소심하게 리듬을 타고 우리 반에 들어갔었지.


첫 시간 수학 시간.

갑자기 등을 타고 굴러 나오는 한 줄기 식은땀이

자꾸만 자꾸만 등줄기를 따라 내려오는데

각도기를 아마 내 책상에 놓고 왔나 봐.

아이들은 각도기를 책상 위에 올리고

나도 각도기처럼 책상 위에 올려졌지.

무릎을 꿇고 30cm 두꺼운 자로 다섯 대를 맞았고,

오늘은 날이 선선한데 그날따라 준비물을 잊은 것은 아마 나 혼자였나 봐.


수학 선생님의 체벌 유무와 세기는 언제나 좀 다른 것 같아.

아마도 교사의 재량 같은 어려운 단어인가 봐.

어떤 날은 말이야, 교과서를 잊고 온 아이에게도 미소를 지어주거든.

그 아이는 우리 반 반장이거든. 교무실을 들락거리며 선생님과 친해졌다 해.

오늘은 각도기를 잊은 내가 있었어. 물론 나는 교무실을 드나든 적은 없는데.

아마도 내 새까만 소매가, 삐죽 보이던 내복이 선생님과 자주 마주쳤나 봐.

어찌하였던 나는 책상 위에 올라가야 했고 두터운 30cm 자로 다섯 대를 맞았지.

허벅지가 아픈 것보다 그 조용한 교실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다시 나의 귓가를 때려오는 게 조금 아팠어.

내가 잘못한 거니까 그냥 맞았지.


사실 별 수도 없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내가 유심히 관찰했는데 세상은 잘못은 크고 작은 것을 따지지 않는 것 같아.

왜냐하면 우리 반 반장이 무언가 잊고 오면 그냥 가벼운 주의로 넘어가고

또 나같이 허름한 옷을 입고 냄새가 조금 나는 애들이 무엇을 잊고 온 날은

꼭 그 30cm 자가 선생님 손에 들려있더라.

아마도 내 옷에 나는 냄새가, 내 허름한 옷들이, 줄줄 나오는 콧물이

우리의 죄에 대한 그럴듯한 증거를 만들어주나 봐.

그런 것들을 알고 나니까 조금 밖으로 나가기 힘드네.


조금 더 자세하게 보았지. 아 너 왜 이렇게 자세하게 보냐고?

그건 말이야, 사람들이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이야기 끝에 매달리려고 자꾸만 자꾸만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지 뭐야.

그런데 그게 또 사람들이 싫어하는 포인트라네.

허름하고 냄새나는 아이가 누군가를 계속 쳐다보면 기분 나쁘고 음침한 거래.

그럼 어쩌지,

냄새나는 옷이랑 허름한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거든.

아무도 쳐다보지 말아야겠어.

그렇게 걷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꾸 나에게 말을 거네.

고개를 들어 당당히 걸어가야지,

응원하는 목소리 같긴 한데 그들 눈은 조금 아래로 깔려있어.

또 어떤 사람들은 기분 나쁘대.

왜 사람을 무시하냐고. 건방지고 버릇없다고 하더라고.

아마도 내가 밖에서 돌아다니면 안 될 것 같아.


하늘은 여전히 파래.

둑길에 코스모스는 하얗고 파랗고 분홍색이고 꽃잎 한 장을 따서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반질반질 윤이나거든. 바람 불면 내 마음도 가끔 꽃잎처럼 너울대는데.

아마도 그건 중요한 게 아나였나 봐.

코스모스는 이쁜데

내가 그러면 아마도 폐비닐하우스 걸려 나부끼는 비닐 조각 같다나.

그래도 말이야.

그날 핀 코스모스는 정말 예쁘더라. 하늘하늘한 줄기 위에

바람 따라 흔들리는 하얀 코스모스 꽃잎이 차가운 융단 같아서 말이야.

나도 저런 하얀 원피스를 입고 학교 가는 날이 오겠지.

또 그런 상상들을 하다 보면 집에 도착하고 오늘 하루가 지나가네.








작가의 이전글쨍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