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피아노

새천년 국민학교 두번째 이야기

by 아지song


차렷, 경례,

선생님께 인사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우리 학교 앞 소리피아노학원에 간다.

왜냐하면 거기가 엄마가 하는 학원이니까.

내가 태어나서 처음기억나는 장면은 엄마와 피아노.

우리가 같이 밖에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모녀가 사랑스럽다 했다.

동네 아줌마의 곱슬 바싹하게 처낸 머리가 아닌 우리 엄마의 긴 생머리. 우리 동네에 흔치 않은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옆모습. 나는 엄마의 옆모습이 참 좋다.

어릴 적 피아노를 치는 것은 일상이었다. 엄마가 검은건반을 두드리면 나는 하얀 건반을 두드린다.


엄마는 내게 하얀 드레스를 입혀주었다. 머리도 정성스럽게 양갈래로 반듯하게 묶었다. 하얀 드레스는 반짝이고 촘촘한 천인데 손을 가져다 만져보면 부드럽게 쓸려나가는 엄마의 머릿결 같다. 허리 바로 윗부분에서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드레스 스커트에 레이스가 물결치듯이 촘촘하게 달려있다. 드레스와 똑같은 스타킹을 신었다. 연한 핑크색 구두를 신고 외출하고 돌아올 때면 엄마가 정성스레 먼지를 닦아주었다. 어느 날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커다란 강당에서 내렸다. 그날 나는 강당에 올라를 연주했다. 쇼팽의 왈츠 Op.64 No.2가 퍼져나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를 따라갈 때마다 나는 내 방에 트로피를 하나씩 전시했다. 대부분 황금색이고 아주 가끔 은색이다.


초등학교 입학실낱에도 엄마는 나와 함께 걸어 학원 바로 앞 학교에 갔다. 엄마는 학교를 자주 방문했고 선생님은 내가 사랑스럽다 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늘 나에게 풍금을 쳐보라 했고 집에서 연습하던 곡 하나를 치면 50명의 박수소리가 들린다.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컸고 얼굴은 하얗고 늘 드레스를 입고 다녔다. 내 가방에 들어있는 피아노 소곡집을 얼굴이 까만 여자아이들이 만지러 오면 언제나 내편을 들어 아이들을 대신 쫓아주는 아이도 생겼다. 그 아이가 내 친구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자주 보았고 나는 1등을 했다. 매년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고 해마다 상은 늘어나고 내키도 조금씩 커갔다. 반 아이들은 나에게 친절하다. 동네에서 제일 못되다고 소문난 김태형도 나를 보면 살짝 길을 비켜주거나 내 책상을 닦아준다. 여전히 선생님은 나를 보면 사랑스럽다 했다. 4학년까지 나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나와 가끔 2등 혹은 3등을 하는 지아는 늘 화장실 거울 속에 나와 얼굴을 같이 한다. 그리고 지아는 늘 내 주변에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아이를 또는 여자아이를 쫓아준다. 지아가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지아도 좋고 반 아이들도 좋았다. 가끔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이들은 착했고 세상은 언제나 친철하다. 굳이 누굴 싫어할 이유도 없고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내 책가방을 만지면 나보다 더 화를 내는 지아가 너무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름 이유가 있겠지. 나한테는 친절한 걸 보면 그 아이가 무엇을 지아에게 잘못했겠지. 지아는 나를 따라 우리 집 피아노 학원에 오는 걸 좋아했다. 가끔 산수나 국어문제에 대해 나와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했다. 우리 둘은 화장실에 같이 갔고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은 지아보다 하얗다. 내 키는 언제나 또래 여자아이들보다 조금 더 컸다.

그렇게 4년 동안 나는 아이들보다 전망이 좋은 경치를 보고 다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4학년에 올라가고 엄마는 내게 특별한 말을 했다.

소리야. 마침 대학교 선배가 좋은 레슨자리에 너를 넣어주겠다 했어. 비용은 들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배워볼 수 있으니 여름방학에 한번 가볼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야. 강릉에서 조금 멀긴 한데 이모가 서울 사시니까 거기서 우리 한 달만 같이 신세 질까.

엄마를 따라 특강을 듣기로 했다. 강릉시에서 만나볼 수 없는 선생님과 아이들이라 했다.

강릉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서울은 정말 멀었다. 대관령 고개를 돌아 도착할 때 내 하얀 드레스는 나의 토사물로 범벅이 되었다.


옷을 갈아있고 또 한 시간이 넘게 엄마와 도착한 곳은 강릉에서 볼 수 없을 만큼 높은 빌딩. 그 안에서 당당하던 엄마는 이상하게 조금 우왕좌왕했고 상담을 하러 갔다. 레슨실에 들어가니 나도다 큰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나를 유심히 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내가 느껴보지 못한 시선. 우리 반아이들은 늘 나를 아래에서 위로 보았는데.

"Hi, I'm Sohyun. I'm here for vacation. Where are you from?"

그 아이는 분명 나와 같은 또래로 보였다. 그리고 한국사람 같았는데.

그 아이가 한 말을 못 알아듣겠다.

"Is your English not very good? Where are you from? France? Switzerland?"

그 아이가 재차 뭐라 했지만 나는 입을 뗄 수 없었다.

한참을 빤히 보던 아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방학이라서 미국에서 잠깐 엄마랑 들어왔는데 방학 때 놀지 말고 첼로랑 피아노레슨 배우래. 너는 어디서 왔어? 여기 레슨 받는 애들 거의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와서 너도 그런 줄 알았는데.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아이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너 옷이 되게 클래식하다. 우리 집 바비인형 옷 같아. 나는 그런 옷 잘 안 입는데. 엄마가 옷은 소재를 보고 고르는 거래. 깔끔하고 단정하게. 너 옷이랑 구두가 너무 번쩍대서 인형옷 같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레슨실 문이 열렸다. 역시나 부드럽게 컬이 들어간 머리로 단정한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재이미 무슨 무례야. 엄마가 다른 사람의 옷차림을 지적하는 행위는 매너 없는 행동이라 했을 텐데. 빨리 사과해. 당장!

그 여자의 낮고 우아한 목소리에 뒤이어 소현이라는 아이가 나를 보았다.

Sorry.


나는 처음으로 어떤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랐었다.

Sorry 단지 그말만이 메아리친다. 우리 반에서 내가 아이들을 쳐다볼 때 그 눈빛으로 나를 본다.

레슨실에서 나가서 엄마를 찾아보았다.

엄마는 어느 좁은 방에서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고 처음으로 엄마의 긴 머리가 조금 힘이 없어 보였다.

레슨실을 오가는 아줌마인지 언니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엄마 같은 생머리가 아니었다. 목덜미까지 오는 찰랑이는 단발에 동그란 컬이 말려져 있고 엄마의 진한 화장 대신 피부에 내려앉은 봄처럼 핑크빛 뺨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의 청바지가 아니라 무릎까지 오는 단정한 스커트에서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텔레비전에 잘 차려입은 드라마 주인공 같았다.


나는 그 높은 건물 레슨실 위에서 하얀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휘청거렸다.

나의 팔을 잡아주던 지아는 없었다.


그리고 레슨실에서 나의 피아노 실력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가끔 아이들의 손에는 바이올린, 플루트, 하프 등 다양한 악기를 가져왔고 그들은 피아노를 교양 삼아 취미로 연주한다 말했다.

여름방학 동안 나는 조용하게 개별 레슨을 들었고 가끔 마주치던 소현이란 아이가 말한 Sorry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나의 짧은 특강은 끝났다.






작가의 이전글은수의 각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