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내가 처음 내 얼굴을 ‘나’라고 인식한 순간이.
어릴 적의 나는 동네를 뛰어다니던 아이였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 반짝이던 눈,
앞니 하나 빠진 채 웃던 얼굴. 그 얼굴로도 세상은 충분히 밝았다.
얼굴은 신경 쓸 대상이 아니었고, 고민거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사진관에서 인화된 사진을 받아 들던 날이었다.
사진 속 아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멈칫했다.
이게 정말 나야?
거울 속의 얼굴과는 다른 낯섦. 형들은 단정해 보이는데,
왜 나만 어딘가 어색해 보일까.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물었지만 대답은 늘 같았다.
“넌 괜찮아.”
그 말은 따뜻했지만 의문까지 지워주지는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얼굴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웃으면 괜히 나를 보는 것 같았고,
스쳐 가는 시선에도 의미를 붙였다.
무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상상 속의 목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콤플렉스는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더 크게 자란다.
어깨는 조금씩 움츠러들었고, 웃을 때도 입을 크게 벌리지 않게 되었다.
거울은 비추는 도구가 아니라 점검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늘 모자란 부분부터 찾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여자가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를 잠시 바라보더니 인상이 좋다, 듬직하다, 상남자 같다며
상의 좋은 형용사를 모아 건넸다.
평생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오래 웅크리고 있던 마음이 스르르 들어 올려졌다.
말 몇 마디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인간의 마음은 참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곧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보험 가입 안내서였다.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그 안에서 나는 사라졌다.
그 순간, 내 얼굴이 아니라 내 서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들뜬 마음이 종이 몇 장 앞에서 조용히 가라앉았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칭찬이 아니라
인정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의 계산이 아닌, 나라는 존재를 향한 시선 말이다.
그날 이후 얼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얼굴은 고정된 모양이 아니었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빛을 얻기도 하고,
사소한 시선 하나에 금이 가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얼굴을
생김새로만 판단해 왔다.
그러나 얼굴은 형태 이전에 시간의 축적이었다.
납작한 코와 크게 벌어진 입, 특별할 것 없는 이목구비. 돌아보면 그것들은
모두 내가 지나온 날들의 자리였다. 어린 날의 수줍음이 눈가에 남아 있고,
사춘기의 흔들림이 표정 어딘가에 스며 있다.
기뻤던 날과 실망했던 날이 보이지 않는 결로 얼굴 위에 쌓여 있다.
이제는 안다.
얼굴은 남이 정의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방식이
드러나는 자리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같은 얼굴로 살아간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거울 앞에 선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모자람을 먼저 찾았다면,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시간을 본다.
아직 완전히 사랑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예전처럼 미워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성장이란, 거울을 피하지 않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그 얼굴로 하루를 살아낸다.
예전보다 조금 덜 도망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