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도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수십 년 전 어둠 속으로 도망치던 그 순간이
아직도 내 잠을 깨운다.
식은땀과 떨리는 주먹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과거’라는 이름의
현재에 머물러 있다.
군복을 벗은 지는 오래지만, 그때의 그림자들은
아직도 내 뒤를 따라붙는다.
땅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려 있던 나는,
다가오는 발소리를
죽음의 기척처럼 느껴야 했다.
피멍 든 엉덩이와 핏자국이 스며든 속옷,
허벅지의 검은 흔적들은
고통이 지나간 횟수이자 지워지지 않는
생의 기록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생각도, 호흡도, 시간도 멈춰 있었다.
폭력이 지나고 나면 나는 개구리처럼
땅을 굴렀다.
어릴 적 내가 회초리로 때렸던 개구리가 떠올랐다.
그렇게 떨며 죽어간 개구리의 모습이
지금 내 모습이다.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 분노는 “복수해라”는 목소리를 품고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내 안을 잠식했다.
가슴속에서는 끊임없이
"저들을 죽여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어린 시절 들었던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가르침이
희미하게 울렸다.
내 안의 두 목소리 *폭력과 양심*은 그렇게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가장 큰 갈등을 겪었을 때는 1980년 4월 내게
폭동진압 명령이 떨어졌을 때였다.
군부는 나에게 1200발의 총알을 안겨주며
폭도들을 죽이라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적이 아니라, 사북의 탄광에서 일하는
불쌍한 광부들이었다.
양구에서 원주까지 장갑차로 몇 시간을 달려
하사관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너는 그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냐" 하는 질문이었다.
나의 대답은 확고했다. "내 양심에 따르겠다고"
부대장의 명령은 살인자로 만들고 말겠다는
악마의 소리였다.
내가 겪었던 고통을 누군가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자리,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하지만 양심에서 들려오는
“살인하지 말라.”
그 한 문장이 그때만큼 선명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
비겁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맞아 죽을지라도, 불쌍한 사람들에게 총구를
들이댈 수는 없었다.
광부들 중에 친족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보다,
내 안을 짓누르던
폭력의 그림자를 끊어내고 싶었다.
나는 선과 악의 경계 위에 서 있었다.
중심을 잡을 수 없는 그 뾰족한 자리에서, 결국 나는
세상의 보편적 기준
—“살인은 죄악이다”—를 택했다.
아마 그 순간부터 나는 악몽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삶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은 흘렀지만, 먹줄처럼 그어진 고통의 선은
지워지지 않았다.
악몽에서 깨어난 뒤에도 나는 그 선 위에 서서,
한 인간으로 남기 위한
싸움을 매일 다시 시작한다.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선을 따라 폭력이 다른 이에게
향하지 않도록
오늘도 나를 붙들어야 한다.
악몽의 여진은 아침까지 이어진다.
몸과 마음의 시차를 맞추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로 돌아올 수 있다.
나는 떨리는 주먹을 천천히 감싸 쥔다.
폭력의 기억은 여전히 이어지지만, 적어도 나는
그 기억을 누군가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그것이 내게 남은 작은 승리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