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정지선에 맞춰 차를 멈추고 천천히 건너는
보행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쾅.”
차가 앞으로 밀렸다.
잠깐 숨이 멎은 듯했다.
뒤차가 서지 못한 채 그대로 내 차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그녀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졸았어요.”
서로를 확인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 사실 하나로 이미 절반은 끝난 일 같았다.
견적은 50만 원이 나왔다.
전화를 하니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조금… 줄일 수 없을까요?”
그 액수가 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길게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면 괜찮으시겠습니까?”
“30만 원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정리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입금 알림이 떴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꼭 모든 것을 새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몇 군데를 알아본 끝에
급한 부분만 17만 원에 고쳤다.
흠집은 남았지만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며칠 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커피숍에서 마주 앉은 그녀는 이유를 몰라 어색해했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시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수리비를 제외하고 남은 13만 원이었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이내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며 말했다.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미 수리를 마쳤습니다.
이 돈은 제 돈이 아닙니다.”
그 순간 묘한 감정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적은 돈을 돌려주며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얼굴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고 민망했다.
차라리 돈을 받지 않았다면
이런 불편한 만남도,
이 민망한 마음도 없었을지 모른다.
돈을 돌려주고 일어서는
내 발걸음은 생각만큼 가볍지 않았다.
내 손을 떠난 13만 원보다
내가 쓴 17만 원이
더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건강식품을 파는 방문판매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하나를 샀다.
그녀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뜻하지 않게 고객이 생겼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녀에게서 카톡이 온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녀의 고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