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선

1박 2일의 여행

by 포도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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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6월, 나는 철조망을 넘었다.

강원도 양구 전방의 한 부대에서였다.

여덟 명이 넘는 선임병들에게 이유 없이 맞았다.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밤에도 불려 나갔다.

나는 다듬이돌의 빨래가 되어야 했다.

갈비뼈가 욱신거렸고, 허리는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살아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철조망 아래를 비집고 나왔다.

녹슨 철사는 생각보다 쉽게 벌어졌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남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숨을 죽였다.

군화 소리가 가까워지면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여덟 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나온 어머니는 기억보다 더 야위어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집에 더 머물면

어머니는 탈영병의 어머니가 된다.

새벽이 밝기 전에 다시 길을 나섰다.


양구 선착장 검문소에서 붙잡혔다.

멱살을 잡힌 채 말했다.

“복귀 중입니다. 살려주십시오.”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을 때

나는 이미 한 번 부서진 사람이었다.

돌아간 뒤 폭력은 더 심해졌다.

갈비뼈에 금이 갔고, 허리는 주저앉았다.

치료는 없었다.

숨을 깊이 쉬면 통증이 올라왔다.


나는 사격장에서 실탄 두 발을 숨겼다.

주머니 속에서 만져지는 차가운 금속.

그것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불침번을 서던 밤이었다.

내무반에는 코 고는 소리만 가득했다.

나는 한 녀석의 머리맡에 섰다.

총구를 관자놀이에 댔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한 발이면 여덟 명이 끝날 수 있었다.

남은 한 발은 내 차례였다.

그 순간,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밝은 낮도 아닌데 또렷했다.

나는 총을 내렸다.


다음 날,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나를 다시 불렀다.

폭력은 계속됐다.

하지만 나는 전날 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로 버텼다.


악마들이 사라진 후,

나는 그 두 발을 냇가에 던졌다.

짧은 물소리가 났다.

지금도 허리는 비가 오기 전에 먼저 안다.

병원 침대에서 수술을 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 밤, 나는 또 하나의 선 앞에 서 있었다는 것을.

넘을 수 있었지만, 넘지 않았다.

만약 그 밤 방아쇠를 당겼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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