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절, 나는 **‘근원’**을 물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해 질 무렵 들판 끝에 서서, 내가 선 자리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곤 했다.
청년의 날들, 나는 **‘생존’**을 물었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불투명한 내일을 등에 업고, 쉼 없이 달렸다.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흔적’**을 묻는다.
무엇을 깨달았는가.
기억의 서고를 더듬다 보면, 결국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삶은 어쩌면 질문의 모양만 바꾸어 되묻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검색창은 몇 줄의 문장으로 결론을 내려주고,
내비게이션은 망설임 없는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는 더 빠르고 정확해졌다.
그런데 이상한 풍경을 본다.
매일 안부를 나누는 가족의 번호를
나는 끝내 외우지 못한다.
십 년을 통화한 친구의 숫자도
손끝의 기억 속에만 있을 뿐,
머릿속에는 남아 있지 않다.
연결은 더 쉬워졌지만
기억은 점점 가벼워졌다.
예순을 넘긴 지금도 나는 기억을 믿는다.
사방 육십 킬로미터 안의 길은
기계에 묻지 않는다.
물론 새로 난 도로에 헷갈릴 때도 있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굴곡과 방향을 더듬어
묵묵히 목적지에 닿는다.
길을 찾는 동안
나는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함께 가늠한다.
편리함은 우리를 도와주었지만
대신 무엇을 가져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혹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은 부르면서도
서로의 숫자 하나 품지 못하는 시대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기억하려 애쓰는 일,
어쩌면 그것이
내가 아직 나로 남아 있는 방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