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30도의 새벽

by 포도향기
image.png


앰뷸런스를 몰고 스키훈련장 지원을 나갔다.

강원도 고성, 최북단.

스키장에는 숲이 없었다.

칼바람을 막아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낮에는 천막 안 난로 곁에서 버텼다.


밤이 되면 잠자리가 문제였다.

시동을 걸어 둔 채 차 안에서 자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영하의 밤을 견딜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눈을 뜨니 계기판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엔진 과열.

잠시 뒤 시동이 꺼졌다.


막사로 달려가 주전자에 물을 담아 왔다.

라디에이터 캡을 여는 순간

끓는 수증기가 맨손을 덮쳤다.

따끔함보다 먼저

‘물이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는 엔진에 물을 부었다.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젖은 손이 금세 얼어붙고

옷과 신발까지 스며들었다.

양말을 벗어던졌다.

밤은 더 깊어졌고

기온은 더 내려갔다.


영하 30도.

배터리는 이미 힘을 잃었다.

갑자기 동파가 떠올랐다.

나는 손전등을 입에 물고

공구를 들었다.

맨발로 범퍼 위에 올라

워터펌프를 풀기 시작했다.

감각 없는 손가락이 공구를 놓쳤다.

눈밭에 떨어진 볼트를

몇 번이나 더듬어 찾았다.


새벽 능선 위에

멈춰 선 앰뷸런스 한 대.

그 범퍼 위에

맨발로 서 있는 한 청춘.

라디에이터 호스를 풀어내고

천신만고 끝에 워터펌프를 떼어냈을 때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 새벽을 떠올리면

나는 한 장면만 남는다.

차가운 범퍼 위의 맨발.

배터리 상태를 확인도 않고

왜, 차에 물부터 부었을까


지금도 나는 먼저 움직이려 한다.

그럴 때마다 잠시 웃는다.

영하 30도의 새벽은 지나갔지만

그 성미는 아직 식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기억의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