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분야의 권위자이자, 내게는
‘걸어 다니는 전자사전’이었던 분.
故 정문규 박사님.
이제는 그 성함을 소리 내어 부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선생님의 마지막은,
평생 탐독하셨던 고전 속의 비극보다
더 시리고 적막했다.
그분의 거처는 집이라기보다 지식의 성채였다.
신발장에서 거실까지 가득 찬 책장들 사이로
소박한 믹스커피 향이 감돌 때면,
“오늘은 어느 나라 언어로 대화할까?” 묻던
그분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식사는 하루 점심 한 끼, 오후 커피 한 잔이
전부였던 소박한 일상.
그 결핍의 빈자리를 선생님은 이틀에 한 권꼴로
책을 섭취하며 지상의 모든 지식으로 채우셨다.
내가 지은 하이쿠 한 수를 보여드렸을 때,
단 몇 초 만에 1890년대 일본 근대문학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기억해 내시며
그와 문체가 닮았다 말씀하시던 정교한 지성.
그 압도적인 깊이 앞에서 나는 그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은 때로, 내게 편지를 보내오기도 하셨고,
다른 제자들이 쓴 논문을 챙겨 보내주시기도 했다.
당신의 지식을 나누어주는 것만큼이나
제자들이 이룬 성취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기쁨으로 삼으셨던 분이다.
그러나 연세가 드실수록 선생님은 입버릇처럼
‘인생무상’을 말씀하시곤 했다.
수만 권의 책을 넘기며 인류의 흥망성쇠를 목격한
거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덧없음으로 귀결되는
자연의 섭리가 보였던 것일까.
평생 인류의 가장 정밀한 학문을 다루셨으나,
가혹하게도 병마는 그분의 달변을 앗아갔다.
요양원 병실에서 만난 선생님은 더 이상
유창한 외국어로 역사를 논하지 못하셨다.
나는 말 대신 이면지에 마음을 담아 위로를 건넸고,
선생님 역시 하얀 종이 위에
답답한 심정을 그림처럼 그려내셨다.
그 초라한 ‘이면지의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소통이 될 줄이야.
면회를 마치고 문을 나설 때 나를 다시 불러 세워
꽉 쥐시던 그 손등의 온기.
그것은 당신의 방대한 지성이 내게 건넨 마지막 문장이자,
외로운 거인이 세상에 던진 간절한 신호였다.
한 달 뒤, 요양보호사를 통해 건너 들은 소식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환멸을 안겨주었다.
수양딸이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오른 이는
제자들에게 부고조차 알리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서둘러 화장을 마치고
선생님의 흔적을 지운 뒤, 남겨진 재산을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비보.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간을 이토록 비정하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탐욕이 양심을 벗어던지게
만든 것인지 묻고 싶었다.
내가 선생님께 보여드렸던 하이쿠 구절처럼,
나의 발걸음은 이제 허망한 헛걸음이 되어버렸다.
無駄足で
昨夜の雨に
濡れた服
(어젯밤 헛걸음을 했는데 비까지 내려 옷이 다 젖어버렸다.)
선생님은 이미 한 줌의 재로 돌아가셨는데,
뒤늦게 소식을 접한 나는
어젯밤에 내린 비에 젖은 옷을 입은 듯
속수무책으로 슬픔에 잠겼다.
1890년대의 정밀한 문학은 기억하셨던 선생님도,
당신 곁에서 돈의 냄새를 맡던 비정한 속내만큼은
차마 읽어내지 못하셨던 것일까.
비록 그분의 물리적 흔적은 탐욕에 의해 지워졌을지라도,
이면지 위를 감돌던 서글픈 침묵과
내 손등에 남겨진 마지막 온기만은
세상 그 어떤 문장보다 선명하게
내 기억의 책장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