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앞
어쩌다 한 번 모이는 모임 자리였다.
식탁 위에는 음식보다 말이 더 많았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잔을 비우며 흥겨워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회원 중 한 사람이 신입회원이라며 그녀를 소개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내 시선이 잠시 멈췄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차분한 헤어스타일.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지을 때
나는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말았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리를 돌며 자기소개를 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놓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저 말없이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의 집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질 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걸었다.
“같이 가실까요. 저도 그 근처에 삽니다.”
그녀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밤길을 함께 걸었다.
그녀의 집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졌다.
나를 바라보며 짓는 그녀의 미소는
비눗방울처럼 가볍게 떠올라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11층이 저희 집이에요.”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정말 반가웠습니다.”
짧게 인사를 건네자
그녀도 웃으며 말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현관으로 들어가며 그녀는 돌아서서
한 번 더 손을 흔들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받기에는
조금 과분한 친절처럼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부딪쳤다.
‘넌 너무 오버했어.’
‘아니야, 저런 미인을 만난 건 행운이지.’
하지만 서로 가정이 있는 처지에
괜한 관심을 품는 것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작은 핑계를 하나 만들었다.
‘멀리서 한 번만 더 본다면
멋진 시 한 수쯤 떠오르지 않을까.’
며칠 후, 그 핑계를 들고
다시 그녀의 집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 근처에는
지대가 조금 높은 공원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의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자
가늘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마음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번갈아 고개를 들었다.
‘그녀를 보러 온 거잖아.’
‘아니야, 시를 쓰러 온 거야.’
비는 조금씩 옷을 적셔 갔다.
그리고 가슴속에서는
내가 만들어 낸 그 핑계가
자꾸만 거짓이라고 찔러대고 있었다.
결국, 그날 밤,
비에 흠뻑 젖은 몸으로 집에 돌아와
나는 한참 동안 생각했다.
‘내일모레면 마흔이다.
불혹의 나이가 아닌가.’
‘오늘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때는 그저 헛걸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날 밤, 비에 젖은 것은
옷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날을 떠올리며
하이쿠 한 수를 적었다.
無駄足で
昨夜の雨に
濡れた服
(헛걸음한 밤,
비까지 내려
옷이 흠뻑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