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미국 아펜셀라 구호단체에서 주최한
미술 공모전이 열렸다.
한국의 구호 대상 어린이들을 위한 자리였고,
나 역시 도화지 한 장을 앞에 두고 앉았다.
특별한 주제는 없었다.
단지 한 시간이라는 짧은 허락이 주어졌을 뿐이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랐던 열네 살의 나는
그저 마음속에 있던 생각을 그림으로 옮겼다.
전쟁이 남기고 간 서슬 퍼런 흔적들,
무참히 사라져 간 것들,
그리고 그 상처 위에 어설프게 덧씌운 평화.
나는 그것이
세상이 하나가 되는 모습이라 믿었다.
활짝 펼쳐진 성경책 위에
뿌리를 내린 하나의 나무.
지구를 심장처럼 품고
울창하게 뻗어가는 생명의 형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 세상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소년의 서툰 기도였다.
심사가 시작되었다.
선택된 그림들은 탁자 위에 놓였고,
나머지는 아무렇지 않게 바닥으로 던져졌다.
내 그림도 그 속에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왜 나무가 책 위에서 자라고 있는지.
내동댕이쳐진 종이와 함께
나의 작은 꿈도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저 그 종이를 다시 집어 들고
조용히 돌아섰다.
그날 이후
내 그림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어느 날,
나는 그림 한 장에 짧은 글을 적은 적이 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부부싸움은 왜 할까.”
이웃집 아주머니는 남편을 불러 함께 웃으며 말했다.
“이거, 그냥 그림이 아니네.”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공감이 가져다주는 힘의 크기를.
돌이켜보면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였고,
해야 하는 것은 생존이었다.
배고픈 현실 속에서도
나는 부자가 된다면
그 부를 어떻게 나눌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이 밥 한 끼보다 더 절실한 질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생각은 자주 앞서갔고,
세상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 옛날의 ‘예선 탈락’은
내 그림이 틀려서가 아니라
아직 읽히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그림을 떠올린다.
버려지던 순간보다
아무도 묻지 않던 그 침묵이
더 오래 남아 있다.
나는 오늘도 펜을 든다.
바닥에 던져졌던 그 종이 위에서
나의 평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 그림은, 열네 살의 기억을 더듬어
그날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그려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