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외딴 산자락에 콜레라로 죽은
돼지 한 마리가 묻혔다.
주인은 전염의 공포에 쫓기듯 서둘러 흙을 덮었고,
사람들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죽음의 병은 배고픔보다 무서웠다.
며칠 뒤, 두 사내가 그 땅을 다시 팠다.
허기를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푹 끓이면 괜찮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은 흙속에 묻힌 돼지를 꺼내려다 멈칫했다.
콜레라가 무엇인지 모를 리 없었다.
그래도 그 시절, 고기 한 점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가져가야 할 것이었다.
집에는
며칠째 죽으로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
저녁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결국
돼지를 앞에 두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가위, 바위, 보.”
손이 갈렸다.
진 사람은 머리를,
이긴 사람은 뒷다리를 가져갔다.
그날 저녁,
각자의 집에서는 오랜만에 고기가 삶아졌을 것이다.
솥에서 김이 오르고
아이들은 그 냄새에 들떠 있었을 것이다.
며칠 뒤였다.
머리를 가져갔던 친구의 아버지가 쓰러졌다.
내가 그 집에 갔을 때
방 안에는 약 냄새가 가득했다.
아버지는 머리를 싸맨 채 누워 있었고
숨은 거칠었다.
그 옆에서
그 고기를 함께 먹었던 내 친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상했다.
같은 고기를 먹었는데
왜 아버지만 저렇게 누워 있어야 하는지.
결국, 그 아버지는
그 병을 이기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도
온몸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콜레라로 죽은 짐승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날
가위바위보의 결과가 달랐다면
죽음의 자리는 바뀌었을까.
하지만 그들을 그 자리에 세운 것은
가위바위보가 아니었다.
배고픔이었다.
살기 위해 내린 선택을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그날의 가위바위보는
장난이 아니라
한 끼를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