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볼펜

by 포도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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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 순간,

공포를 기록하려 했다.

이건

내가 겪었던

가장 이상한 체험의 기록이다.


의식이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

나는 나를 보고 있었다.

누워 있는 나.

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나.

그 사실을 인식하기도 전에

숨이 먼저 막혔다.


하얀 조화가 늘비하게 서있는

식장이었다.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 흐름과 분리된 채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저

정해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내 차례다.’

그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때,

손에 감각이 닿았다.

까만 볼펜 하나.

이걸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쓰기 시작했다.

인간은

언제 가장 두려운가.

의사의 선고를 들을 때인지,

이 기다란 상자 안으로 들어갈 때인지,

아니면

불 속으로 향하는 길 위인지.


생각은 또렷했지만

글자는 흐트러졌다.

앞을 봤다.

이름이 쓰여 있는 상자들이

아무 말 없이

하나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의 간격이

이상하게도 일정했다.

그 간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무서운 건 죽음이 아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덮개가 닫히는 순간.

그 이후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 목이 말랐다.

갑자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누워 있는 내 몸의 갈증이

또 하나의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목 안쪽이

거칠게 달라붙었다.


나는 생각했다.

물.

그 한 단어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작은 생수 한 병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가까이서

덮개가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려 들어가듯

그 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썼다.

두려움에 대하여.

지금 이걸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글을 읽어줄

그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맨 아래에

작게 덧붙였다.

“이 안에

생수 한 병만

넣어 주세요”


그 순간—

모든 것이 끊겼다.

보이던 것,

생각하던 것,

느끼던 것까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다만,

내 손에는

여전히

까만 볼펜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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