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는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왔다.
“무슨 꽃잎이 피어있을까.”
그 한 줄이
자꾸 마음을 건드렸다.
뒷동산은 수없이 올라봤다.
하지만 동쪽과 북쪽의 큰 산 너머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 너머에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사는 빈민촌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는 대신
계속 달렸다.
어디든,
여기가 아닌 쪽으로.
라디오는 그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월남전에서 이기고 있다는 소식만
몇 년째 반복했다.
그렇게 이기고 있다면
전쟁은 벌써 끝났어야 했다.
어느 날 수업시간,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들었다.
서울-대전 간 고속도로 개통.
선생님은 아직 타보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덧붙였다.
“고속버스라는 게 있는데,
차가 달려도 물컵의 물이 흔들리지 않는대.”
그 말은
내 가슴에 불을 붙였다.
서울까지 금방 간다니.
나는 영식이를 불러냈다.
이야기에 살을 붙여
함께 가자고 꼬드겼다.
첫 번째 산은
길이 없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해 뜨는 방향을 기준 삼아
그저 북쪽으로 걸었다.
나뭇가지에 옷이 찢기고
얼굴에는 생채기가 났다.
영식이는 낙엽에 미끄러져
몇 번이나 굴러 떨어졌다.
두 개의 산을 넘고 나서야
능선 위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까만 아스팔트 위에
하얀 선이 길게 이어지고,
그 위를
빨간 고속버스 한 대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우리는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저걸 타고
서울에 가보겠지.
그 생각이
이상하게 쓸쓸했다.
돌아오는 길은 더 힘들었다.
산을 다시 넘어야 했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옷은 여기저기 찢겨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산 너머를 확인했다.
그리고 알았다.
그곳에는
꽃이 아니라
길이 먼저 나 있었다.
호기심은 그날 이후로 더 커졌다.
토요일 오후만 되면 자전거를 빌려
무조건 페달을 밟았다.
동쪽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쪽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답도 없이
그저 방향만 정해
쏘다녔다.
나는 그냥 달리지만은 않았다.
내가 지나온 길을
하나씩 기억했다.
어디쯤에 강이 있었고,
어디쯤에 마을이 있었는지,
그렇게
길이 쌓여 갔다.
내 안에.
도중에 깡패들에게 붙잡혀
얻어맞기도 했다.
입안에 피 맛이 돌았지만,
나는
노래를 불렀다.
언덕을 오를 때마다
같은 노래를.
“저 언덕 너머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있을까.”
처음 가보는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
그 모든 걸
견디게 했다.
그날 이후로 시작된 호기심은
평생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맥가이버’라고 불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저
계속 길을 찾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