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종지 하나

by 포도향기
image.png


우리 밭과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십 년을 함께 한 이웃 노부부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집 사정은 내 손바닥 안이다.

노부부에겐 서울서 제법 자리를 잡았다는 아들이

다섯이나 있다.

그 아들들은

노부부가 흙먼지 마시며 평생을 버텨온

유일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농번기 뙤약볕 아래

아들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휴가철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수확 철이 되어서야

마을 입구가 소란해진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봉고차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부모가 허리 굽혀 거둔 열매들이

무겁게 적재함으로 옮겨질 때,


한 사람은 아버지를 앉혀 놓고

이자를 치겠다며 돈을 빌려 간다.

아버지는 그 돈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안다.

알면서도 낡은 지갑을 열어

기어이 자식 손에 쥐여주고는

허허 웃는다.

어느 날 점심,

찌개 냄비를 들고 그 집 문턱을 넘으려다

나는 발을 멈췄다.


그 집 밥상 위엔

밥공기 두 개와 물컵 두 개,

그리고 가운데 놓인 간장 종지 하나가 전부였다.


“어서 와, 같이 좀 먹지.”


들키기 싫은 것을 들킨 사람처럼,

노부부는 서둘러 밥상을 팔로 가리며 웃었다.

나는 멀쩡한 표정으로

냄비만 내려놓고 돌아섰다.

명절이면

아들들이 검은 승용차를 줄 세워 내려온다.

번듯한 양복을 입은 그들은

부모의 안부보다

아버지의 땅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그날도

며느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형제끼리 얼굴을 붉히는 사이,

아버지는

민망한 헛기침을 하며

밖으로 몸을 피한다.

좋은 차를 타고

배울 만큼 배웠다는 아들 다섯.


그 화려한 겉치레 중

누구 하나

부모님의 마른 밥상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형편이 어려워 울며 왔다 울며 가는 딸들만이

부모의 곁 바람을 막아줄 뿐이다.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 계신데도

대문 앞엔 검은 차들이

마치 운구차처럼 늘어서 있다.

아직 아무도 떠나지 않았는데

자식들은 이미

유산을 나눌 준비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앉으니

그 집 간장 종지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오늘 밤,

유난히 그 집 담장 너머가 고요하다.

남의 집 이야기라며 넘기다가도,

문득

내 부모의 밥상이 떠오른다.

바쁘다는 이유로,

다음에 가겠다는 말로

미뤄둔 시간들.

그 자식들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었을 말일 텐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


나도 그 말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폐가에서 들은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