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논할 때
나를 떠올려도 좋다

이로 인해 떨어질 자존감 따위라면 키우지 않았다

by 목청원

본래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온갖 미사여구를 덕지덕지 붙여 입이 떡 벌어지는 글을 나는 동경한다. 몰입도가 좋아 의자에 몸을 두 시간을 붙여 두어도 뻐근함을 잊게 해 주는 글을 나는 높게 산다. 가독성이 좋아 같은 문장을 두어 번 곱씹을 필요 없이 술술 읽히는 글을 나는 존경한다. 같은 종족이란 생각 안 들 정도로 통통 튀는 사상이 담긴 글에 나는 매력을 느낀다.


간혹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부가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불친절한 글을 난 적는다. 미사여구를 제했음에도 두어 번 곱씹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글을 난 적는다. 그저 하루에도 수백 번 스치는 평범함이 가득 담긴 글을 적어 내리는 나지만, 나는 역시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담백하단 말로 보기 좋게 포장하려 하지만 다소 딱딱한 글이 포장지를 찢고 나온다. 두어 시간을 글에 투자하여도 타인이 나의 것에 시선을 두는 시간은 초 단위로 표기가 가능하다. 어떠한 앱에서는 2018년도와 2020년도의 감성을 담아 작성한 나의 시 몇 편을 엿볼 수 있는데, 손발이 사라질 것만 같더라. 그럼에도 난 단 한 번도 나의 글 실력에 불평불만을 가진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나의 글을 좋아한다.


본래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많고 많은 영화들 중 나의 취향의 영화를 찾는 것을 난 좋아한다. 매주, 혹은 매일 영화를 하나씩 본다는 루틴 따위도 없고 영화를 어느 정도 보는 사람이라면 고작? 싶을 정도의 본 영화 수를 난 보유하고 있다. 상영관에 영화가 뜨는 속도보다 내가 한 편을 보는 속도가 더 늦다. 아마 한평생을 본다 해도 한 줌의 영화뿐을 손에 들고 가리다. 인생 영화 다섯 개만 채우겠다며 비운 왓챠피디아 평점 5점에 필터를 끼우면 영화 두 개가 뜬다.


처음 평점의 기준을 제대로 잡지 못했을 땐 상단에 뜨는 세 개의 평에 휘둘렸다. 영화를 보기 위해 고르다가도 평에 휘둘려 나에겐 인생 영화일 수도 있는 영화를 놓치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4점을 남기려다 혹평을 보곤 3점대를 클릭하기도 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했다. 본래 나는 영화 장르에 편식이 잘 없고 영화관에서 나올 땐 웬만한 영화에 다 재미있었다는 평을 뱉는 사람이었다. 이런 나의 리스트를 내 것 아닌 별점이 채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결국 초기화를 눌렀다.


내가 인생 영화라 치부하는 영화를 제외하면 영화를 다시 보는 경우는 잘 없다. 러브 액츄얼리는 나의 별 다섯 개에 들어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섯 번을 봤다. 이 영화를 보자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난 제목은 알지만 보지 않았다고 말했고, 영상이 시작되기 전까진 정말 그렇다 믿었다. 여섯 번을 본 뒤에야 내가 이미 본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다시 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귀찮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 매일 영화를 보지는 못한다. 가벼움을 찾기 위해 예능 한 편을 보는 일이 더 많다. 점점 오르는 영화관 비용에 아깝다 생각한 적 또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본래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뚜렷하게 셋 정도로 추릴 수 있으며,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곡은 한정적이다. 주로 돌리는 플레이리스트는 멜론 탑 100에 국한되어 있고, 간혹 선호하는 아티스트를 모아 돌린다. 유튜브 뮤직의 알고리즘 기능으로 인해 나의 취향의 노래들이 귀를 때리고 지나가지만 굳이 곡 명을 확인하지 않는다. 때문에 더욱 한정적인 플레이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나는 경험을 토대로 몇 개의 악기를 다룰 줄 알지만 이 역시도 한정적이다. 누군가에겐 소음공해로 들릴 수도 있는 수준의 곡을 연주한다. 따라서 음악을 들을 때 악기별로 감상을 남기며 후기를 작성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나는 그저 '이 곡 좋네'라는 말로 감상을 함축한다. 코드가 비슷해서 어쩌고, 하는 류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을 잘 알진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본래 나는 평범함을 좋아한다.


이와 같이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이 평범함은 모두 나의 것이다. 내가 즐긴 특별한 경험들은 한 반에서 과반수 이상이 했던 평범한 경험들일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적어도 나에게만은 하나뿐이고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일을 나는 좋아한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 없다며 실망하지 않는다. 남보다 못하다는 비교질 따위를 하며 좌절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평범한 수준으로 해내는 것을 나의 재능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은 평범하다. 따라서 나는 평범한 나 또한 좋아한다.


간혹 내게 자존감의 원천을 묻는 이가 있다. 그런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사랑할 이유로 나열할 수 있는 단어들은 이리도 단순한데 어찌하여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니.


나는 나만의 것이 있다. 평범함의 극치를 달리는 모든 것들을 쌓아 올려 나를 이룬다. 이러한 나의 평범함도 누군가에게 닿을 땐 평범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니, 안다. 범상치 않은 당신이 그를 평범의 기준으로 삼으며 이러한 나에게 시선을 준다면, 나의 평범함은 여전히 평범함으로 보일까.


글의 마지막을 지켜 준 당신 또한 내겐 하나뿐이며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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