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영화 리뷰
나의 평점은 그리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남긴다. 감독과 제작사를 꿰고 있을 정도로 영화를 잘 아는 평론가가 아니다. 살면서 뮤지컬이라곤 본 적 한 번 없다. 나는 그저 대부분의 영화에 재미있다는 평을 내뱉는 수많은 관객 중 하나에 불과하다.
수많은 혹평들이 존재하는 이 영화를 대할 때 또한 그러하다.
역사적 왜곡은 물론 있다. 대표적인 부분으로는 설희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 역사적 사실. 나의 평은 이 부분에서 갈렸다. 이는 설희라는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이미 감안하고 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영화를 만들 땐 역사적 사실에 어느 정도 msg를 가미하는 게 맛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설희가 이를 여실히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난 역사에 기반한 영화를 즐기는 편이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의 전개를 비교하는 맛이 좋기도 하고 긴가민가한 부분을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역사를 그대로 옮겨 적어 영화를 찍어 내면 내가 아는 사실만이 전개되기 때문에 오히려 새롭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에는 또 이럴 거면 영화감독 본인도 하겠단 혹평이 붙어질 것이라 감히 예상한다.
설희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며 개연성이 없다고 말하는 평들을 보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캐릭터인 설희에게 난 가장 큰 애정을 담았다. 설희가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속이 쓰렸다. 울부짖는 설희를 볼 때마다 아렸다.
영화를 즐기는 이들의 평을 보았다. 영상이 다소 오버스럽고 산만하며 지루하다고 하였다. 뮤지컬 요소를 제하고 단순한 영화로 만들었음 훨씬 좋았을 거라 하였다. 오글거려서 보기 거북하다 하였다. 감독과 제작사를 확인한 뒤 영화를 보지 않겠다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기대 않고 보게 된 영화의 첫 장면부터 난 감명을 받았다. 눈으로 읽은 역사와 영상으로 마주한 역사의 차이가 확연히 와닿았다. 뮤지컬적인 요소들은 나에게 있어 풍미를 더욱 불어넣어 주는 것이 되었다.
몇몇의 관객들이 개그 요소에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나는 들었다. 영화의 초반, 중반, 후반부를 가리지 않고 눈물을 훔치는 소리들을 나는 들었다. 여운이 남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도 자리에서 뜨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보았다. 한 상영관, 한 타임에서도 이리 다양한 감정들이 숨겨지지 못한 채 튀어나오는데, 어떻게 더욱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이 존재할 인터넷 속 세상은 짜기라도 한 듯 같은 평을 쏟아내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취향에 따라 갈리는 의견을 존중해 주지 못할 정도로 회색 빛으로 물든 것이 텁텁하다. 당연스럽게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임에도 한 가지 의견은 찬양을 받고 그와 다른 의견을 뱉으면 무지한 사람이 된다. 이로 인해 놓친 영화들이 나는 아쉽다. (이 영화 리뷰와는 멀어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라 칭하는 노트북을 난 곱게 보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나인가 싶어 밀어 넣은 의견 피력 기회가 나는 아쉽다. 고작 이까짓 것 하나로 나는 무지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협한 시야를 가진 것은 누구인가. 다수에 휩쓸려 소수를 매도하는 것은 참 멋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영상에 지루한 요소가 몇 있다는 말과 개그 요소를 조금만 덜어냈어도 좋았을 거란 말에도 동의한다. 안중근 의사에겐 이보다 더 나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말 또한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디테일과 역사적 왜곡, 이 동의의 이유는 당신 또한 스크린에서 찾길 바란다. 찾지 못하였다면 이로 인해 역사를 다시 한번 되짚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