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남편과 다투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처음에 왜 다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다투던 중 서로의 말하기 방식 때문에 다툼이 커졌던 기억이 난다. 그 날도 내가 남편에게 왜 말을 그렇게 하냐고, 아무 말이나 하지 말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물론 나도 만만치 않게 했을 것이다. 며칠 지나고 서로 사과 후 화해했는데, 남편이 전에 없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도 웬만하면 좋게 좋게 넘어가는 융통성과 상황에 맞는 적당한 가식을 섞어 남을 대할 줄 아는 사회성이 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점 때문에 살면서 손해를 많이 봤다. 그간 미안했고 앞으로 조심할테니 이해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본인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지 않은가. 남편이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몰랐는데 알고 있었다는 점도, 나에게 솔직하게 그점을 이야기 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자존심 상해 굳이 말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그게 문득 고맙다가 또 안쓰럽게 느껴졌다. 옆에서 지내보니 남편이 주변에 많이 친절하고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느꼈던 차였다. 그 말투나 한번씩 왈칵 내는 짜증에 가족인 나도 한번씩 손엣가시처럼 불편할 때가 있었는데 하물며 회사에서야 오죽했으랴.
하지만 남편은 그렇더라도 시간차를 두고 먼저 사과해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혼 5년간 싸움이 있었어도 오래가진 않았던 듯하다. 그 점에 사실상 고마운 마음이 있다. 나는 반대로 상대의 예민한 부분을 잘 건드리지 않으려 하나 한번 감정이 상하면 빨리 풀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 우리 부부가 한번씩 다툰 이후에는 어떤 이유에서건 주로 남편이 먼저 화해를 시작하곤 했다.
헌데 밖에서는 이렇듯 사람 간의 오해를 풀고 관계를 새로 할 시간적, 감정적 여유가 많지 않으니 사소한 오해가 생긴 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고 지나간 일이 없지 않았을 것 같았다. 생각이 그렇게 흐르다 보니 남편이 좀 안쓰러웠다. 또 나와의 지속적인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으니 그것도 용기가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그 날 다시 한 번 화해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족이 되어 본 뒤로 종종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모르는 내 단점을 상대가 이미 먼저 알았을 수 있으며 지금까지 내가 그 단점을 몰랐다면 상대방이 그동안 참아왔기 때문이라는 것. 내게 굳이 알리지 않고 남편이 혼자 참아온 내 단점도 몇 가지는 될 것이다. 그 날 내가 남편에게 고마움과 안쓰러움을 같이 느꼈던 이유도 좀처럼 자신에 대해 잘 말하지 않던 뚝딱이같은 남편이 모처럼 내가 참아온 부분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우리는 내일 또 투닥거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