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순내 Aug 08. 2024

상처


상처가 생겼다. 별안간 길을 걷다 넘어져 생긴 상처였다. 발을 헛디딘 것인지, 무언가에 걸린 것인지, 순식간에 고꾸라진 몸에 순간의 기억을 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창피함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하, 아끼는 바지인데.




두 무릎에는 커다란 멍과 피멍이 각각 들었고, 오른쪽 팔꿈치에는 쓸린 듯한 상처가 생겼다. 거친 아스팔트는 몸에 상처를 남기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아, 너무 아프다. 오랜만에 내뱉는 단어를 곱씹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디 한 군데가 아프면 몸 전체를 잘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상처를 없애려 노력했다. 무릎에 멍이 들었을 뿐인데,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 거리를 나섰다. 추운 바람이 바지를 뚫고 들어가 멍자국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굳이 숨기고 싶지 않은 아픔에 잔뜩 구긴 얼굴을 하고 약국에 들러 멍과 타박상에 효과가 있는 연고와 팔꿈치에 붙일 대일밴드를 샀다.




정성스럽게 대일밴드를 붙이고 타박상 연고를 무릎에 바른 지 2일째, 팔꿈치에서는 진물이 나기 시작했다. 축축한 팔꿈치에 물이 들어간 것인가 하고 닦아 냈지만 그새를 못 참고 진물은 또 흘러나왔다. 기분이 나빴다. 찝찝하게 축축한 느낌과 쓰리고 따가운 상처 때문에 온 신경이 팔꿈치로 향했다. 옷도 짧으면 좋으련만, 추운 날씨에 내 팔을 감싼 긴 옷들은 상처에 닿아 신경을 더욱 건드렸다. 그 찝찝함을 참지 못하고 대일밴드를 붙였다 떼어내고, 진물을 닦고, 약을 바르고 다시 정성스레 붙였다. 이렇게 내 몸을 오래도록 쳐다보며 소중히 다룬 건 오랜만이었다.




진물이 흐르기 시작한 지 3일째, 진물은 멈추었고 상처 주변이 가렵기 시작했다. 대일밴드를 오래 붙이고 있어서 인지 대일밴드 접착 부분에 불긋하게 두드러기 같은 것들이 올라왔다. 미친 듯한 간지러움에도 그것을 긁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곧 내가 인내심이 많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려움은 팔꿈치에서 온몸으로 퍼져 발 끝까지 간지럽혔다. 잊기 위해 소리를 지를까, 눈에 색다른 글자를 담아볼까, 신경을 돌리기 위한 노력도 잠시 팔꿈치를 벅벅 긁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러면 안 된다고 외치지만 일을 시작한 손은 멈추지 못하고 있는 힘껏 손톱을 세우며 위아래로 긁어댔다. 시원하다. 시원함 뿐이었다면 더 열정적으로 손가락을 구부리며 팔꿈치를 만졌을 텐데, 곧이어 대일밴드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또 진물이다. 옷을 상처 부근까지 올린 후 대일밴드를 떼어내고 부채질을 시작했다. 조그만 바람으로 간지러움이 날아가길 원하는 마음을 담은 손짓이었다.




상처가 생기고 일주일, 나는 이제 대일밴드 아래에 있는 두드러기들을 벅벅 긁고 있다. 더 이상의 간지러움이 벅차다는 듯이, 이런 두드러기들은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온 손가락을 이용해 팔꿈치를 괴롭혔다. 그간의 내 신경은 온톤 팔꿈치의 상처였다. 가만히 있어도 쓰라리고 간지럽고, 물이 흐르고. 그것에 정성을 쏟고 있으면 어쩐지 내 몸을 아껴주는 기분이었다. 내 몸을 잘 아끼지 못해 생긴 상처이면서. 그래서 그 순간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오랜만에 나를 아끼는 기분이었다. 곤두선 신경에 마음속에는 항상 남을 욕하는 언어들이 가득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소중히 어루만지고 빨리 상처가 사라지기를 기도했다. 앞으로 같은 일주일이 흐르면 그 상처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흔적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 흔적에도 내가 가진 소중함을 쏟을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간절함을 쏟을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첫 O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