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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 May 29. 2024

첫 문장이 절반이다

온라인 글쓰기(4)

캐나다국경의 나이아가라 폭포 전경. 저녁 5시쯤

  타인을 가르치다보면 원칙같은 게 생긴다. 테니스 코치는 내게 서브를 넣을 때는 팔로 팔자를 그리라고 했고, 골프 코치는 몸이 앉았다 일어나는 식으로 스윙을 하라고 했다. 원어민 영어 교사는 'From the top of my head'(생각난건데)로 영어 면접을 시작해야 영어를 잘 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고 했다. 내가 후배들의 글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첫 문장이 절반'이라는 것이다. 기사라는 게 문학과 달라 첫 문장에 글의 중요한 사실과 글이 전개될 방향을 다 담기 때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글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쉽게 그리고 되도록 짧게 단문으로 쓰기를 권한다. 통상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글투를 결정하기 때문에 첫 문장은 끝 문장까지 이어진다. 기성 신문 등에 글을 쓴다면 첫 문장을 생각하는데 10분 이상을 소요할 때도 있다. 반면, 온라인 글의 경우 쉽게 이해되는 문장이 중요하다. 쉬운 문장이란 하나의 내용만 들어있어 길이가 짧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단문을 권한다.

 청년 정치를 외면한 기득권 정치를 비판한 내 글의 서두다. [2030세대는 인구의 25.7%다. 하지만 4·10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2030세대 후보는 17명(3.3%)에 불과하다. 이럴 줄 알았다.] 다음은 총선 앞 정쟁을 비판한 글의 서두다. [이번 4월 총선도 ‘차악’을 고르는 선거가 될 것 같다. 서로 비난하며 자기 잘못마저 네 탓만 하는 거대 양당에 신물이 나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다.]    

  물론 이런 식의 설명문은 맛깔나지 않는다. 단문으로 맛깔나는 글의 서두를 원한다면, 그리고 상대적으로 표현의 범주가 넓은 온라인 글이라면 기사의 제목이나 광고 카피를 많이 보면서 공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America is under attack(미국이 공격당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쌍둥이 빌딩이 알카에다의 테러로 무너졌을 때, 미국 뉴스채널인 CNN이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전면에 걸었던 헤드라인이다. 우리 언론은 '쌍둥이 빌딩 붕괴'에 꽂혔는데 CNN은 '공격당한 미국'에 집중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쓰자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던 미국이 공격당했다’가 되겠다. 만일 미국이 입은 테러에 대한 글을 쓴다면 나는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던 미국이 공격당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쌍둥이 빌딩이 알카에다의 테러로 무너졌다. 세계의 경찰이자 큰 형님이었던 미국의 자존감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신문사 생활을 편집부에서 시작했다. 기사의 제목을 달고 면에 배치하는 일이다. 제목은 늘 함축적이고 단순하며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읽기 쉬운 단문으로 글을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은 아마도 편집부 시절의 이런 경험 때문일 것이다. 동아일보 2006년 6월 19일 C1면에는 ‘레드 콤플렉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월드컵에서 퇴장카드가 많이 나오면서 경기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사실 제목을 먼저 설명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지 월드컵이라는 운동 경기를 다루면서 정치적인 용어인 레드 콤플렉스를 연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제목 한 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기사에 흥미를 갖고 읽었을 것이다.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스포츠와 정치적 수사의 연관점을 찾아낸 편집 기자의 ‘빅 아이디어’인 셈이다. 이를 온라인 글의 서두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월드컵에서 '레드 콤플렉스'에 선수들이 떨고 있다. 공산주의 공포증이 아니라 레드카드 공포증이다. 주축 선수의 퇴장으로 패배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원더브라의 지면 광고

  사실 빅 아이디어는 광고계에서 많이 쓰는 용어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기발한 생각’정도가 되겠다. 여성 속옷 회사인 원더브라는 '뉴튼은 틀렸다'는 지면광고를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중력의 법칙이 틀렸다는 뜻일테다. 원더브라의 'up' 기능을 강조한 것일테고, 이쯤되면 야릇한 모델의 표정도 섹스어필 보다 뉴튼에게 보내는 승리의 미소일지도 모른다. 뉴튼이 여성 속옷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엉뚱하게도 아무런 관련도 없는 두 가지를 연결해낸 카피라이터의 빅아이디어다. 사실 섹스어필 광고의 효과에 대해 학자들은 대개 부정적이다. 광고인지도는 높이지만 상표회상은 높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카피라이터인 로저 리브스(Roser Reeves)는 “사람들은 청바지를 입은 날씬한 금발미녀만을 기억하지, 그녀가 입은 청바지의 상표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원더브라는 작은 위트 같은 빅아이디어로 섹스어필 광고를 희석하는 방식을 썼다.

  빅 아이디어는 주로 그 근간을 이루는 자신만의 논리 구조에서 나온다. 일례로 내가 편집기자로 근무할 때인 2005년 8월에 ‘현명한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대화법’과 ‘아이를 빛나게 하는 금쪽같은 말’이라는 2개의 책을 설명하는 기사를 편집하게 됐다. 매주 나오는 신간 소개인데 이런 종류의 책이 얼마나 많은가. 다만, 책을 직접 읽어보니 결국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라는 내용이었는데, '아이는 부모의 거울'과 같은 평이한 제목을 제외하고 주목도를 높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어른들이 많은 해주던 얘기가 생각났다. “사람이 귀가 2개이고 입이 1개인 것은 말하는 것 보다 2배 들으라는 뜻이다.” 왜 그 순간에 이 말이 기억났는지 모른겠지만 귀 2개와 입 하나를 그래픽으로 그리고 ‘듣고 듣고 칭찬해주세요’라는 제목을 달았다. 당시 이 컨셉은 그 해 한국편집상 수상작이 됐다. 온라인 글로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썼다면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옛말에 그랬다. 사람이 귀가 2개, 입이 1개인 건 말하기보다 2배 들으라는 뜻이다. 자식도 매한가지다. 우선 말없이 아이의 말을 2번 듣고 칭찬해라. 그게 소통의 시작이자 대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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