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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빛꿈 Feb 22. 2024

시작(詩作)의 시작



    전입온지 얼마 되지 않은 일병, 그 어느 때의 외출 날이었다. 한달에 한번뿐인 주말 외출.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잘 못했던 컴퓨터 게임도 하고, 먹기 힘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노래방에서 시간도 보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19시경, 부대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외출의 복귀 시간은 21시, 즉 오후 9시까지였기 때문이다.


    종일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니 체력을 많이 소모했고, 거기에 돌아가야 한다는 울적함도 더해지니 갑자기 내 몸이 방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이상 무엇도 하기 싫고, 의욕이 없는 상태.


    곧이어 든 생각은 ‘나를 충전하고 싶다’였다. 어딘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충전해 주었으면 했다. 그런 충전기는 어디서 살 수 있는 걸까? 파는 곳은 있을까?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리를 번뜩 스쳤다.


    ‘시로 쓰고 싶다’


    내가 한 생각을 시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돌연 든 것이다. 내가 평소에 시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재미삼아 몇 번 써봤지만 이런 식으로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생각이 들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갔다. 노트를 사기 위해서였다. 그냥 핸드폰에 써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 첫째 이유였고, 둘째 이유는 내가 쓰는 시가 이것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복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최대한 고심해서 노트를 골랐다. 군복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의 크기여야 했고, 쉽게 구겨지거나 해지지 않도록 양장이거나 가죽 등으로 마감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른 노트가 이것이다.



    노트를 산 뒤, 복귀 버스를 타면서 내가 떠올린 시를 곧장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몸에 꽂을 충전기를 샀다


밤에도 환한 거미줄 골목길에서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가운데 테이블 위에서


충전기를 샀다

내 몸에 꽂을 충전기를


단자가 맞지 않는 건지

턱 하고 걸려버리고

붙잡아 억지로 꽂아 보니

상처만 생겼다

기분 나쁘게 날 고장내는

전류만 흘렀다


어디서 사는 걸까

어디에서 파는 거지?

내 몸에 꽂을 충전기는


난 오늘도 남은 몇 %를 붙잡고 산다

이러다간

픽, 하고 꺼져서

툭 하고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시 쓰기를 배워 본 적도 없었고,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이땐 그저 내 생각을 뱉어낸 것이 후련하고 뿌듯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어느 때라도 떠올린 발상이 있다면 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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