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할 때 집을 나서는 이유
중학교 시절,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별나게 봤다. 어차피 공부는 책과 의지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고등학교 시절,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이해되었다. 나도 가끔 다른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이 필요했다.
대학교 시절,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나였다. 백색소음이 필요할 때면 여지없이 카페를 찾았다. 심지어 커피까지 먹을 수 있다니.
대학교를 졸업하고, 글쓰기에 몰두하고 싶다면 카페에 간다. 사실 카페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익숙한 곳을 탈출하는 것이 중요 과제다.
어릴 적, 활동 반경이 학교와 집, 친구와 노는 장소로 한정되어 있을 때는 공간에 따른 나의 상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청소년기 특유의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그런 변화를 느끼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점차 내 세상이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가며 공간의 힘, 그 영향력을 체감하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내게 편안한 장소에서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손만 뻗으면 최적화된 위치에서 원하는 것이 튀어나오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환경. 이런 환경에서는 너무도 쉽게 유혹에 굴복하고 만다.
공부하려고 튼 음악을 매만지다 어느새 게임 영상을 보고 있고, 글쓰기를 하다가 단어를 찾으려 켠 인터넷 브라우저로 뉴스를 보고 있는 상황. 내가 수없이 겪었고, 다들 해봤을 경험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간다.
익숙지 않은 공간으로 가면 쉽사리 몸과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다. 특히 미적으로 잘 정돈되고 뻔하지 않게 구성된 공간일수록 그러하다. 그런 공간은 긴장과 동시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거기에 눈치 볼 수 있는 타인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다만 방문 목적이 할 일을 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면 너무 왁자지껄한 곳은 피해야겠지.
좋은 장소에 내가 목표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만 챙겨서 자리에 앉으면 ‘작업 모드’가 시작되는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이 되면 기꺼이 휴대폰도 무음 모드로 치워버리고 작업을 하게 된다. 딴 곳으로 샐 위험도 없이, 목표한 일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물론 이것마저 힘든 컨디션 난조가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자.)
집중을 떠나서 다른 공간이 주는 영감 또한 대단하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멀리 놓인 작은 게임기를 보며 ‘요즘은 저 정도 사이즈의 게임기도 나오는구나, 슈프림 글자는 직접 프린팅 한 걸까, 아니면 공식 굿즈인 걸까? 게임은 무슨 게임이 있지? 그러고 보니 저렇게 조이스틱과 버튼들로 이루어진 게임기를 써본 지도 오래되었지. 예전에는 동네마다 저런 게임기가 있었는데. 친구들과 단돈 몇백 원으로 한참 동안 깔깔 웃어댔지. 이참에 예전 게임기에 대한 글을 써볼까? 아니면 시?’와 같은 생각들을 펼칠 수 있다.
과연 익숙한 집안에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번뜩 떠올릴 수 있었을까? 하고자 한다면 낯선 공간의 모든 것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무언가를 창작하려는 것이라면 이런 낯섦은 더없이 좋은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나는 새로운 공간에 가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이제는 그냥 가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어떻게 색을 칠했는지, 이곳을 꾸민 사람의 취향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공간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 그 방문이 풍요로워지고, 나의 취향이 계발되니 좋지 아니한가.
앞으로는 그런 좋은 공간을 더 많이 찾고, 그것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늘려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