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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빛꿈 Mar 21. 2024

옆 방 사람이 죽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란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밝았다. 그래서 이해를 뛰어넘어, 그저 이것이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주변의 모두가 그랬다. 받아들이는 속도의 문제였다.


    다음 날, 상담사와 이야기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왔던 가장 중요한 말은 이것이었다.


생각과 마음을 구분 지으세요.


    생각과 마음, 사고와 감정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사람은 갑작스런 상황, 큰 요동을 맞이하면 감정이 사라지고 사고만 남는 상태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죽음을 예로 들면, 죽음에 슬퍼하는 것보다 먼저 '이 사람이 죽었구나. 그렇구나. 왜 그랬을까? 안타깝다.'등의 '사고'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본인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단다. 목놓아 울어도 시원찮을 판에, 나는 왜 무감정하게 있는가.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고.


    상담사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본인이 '사고'를 한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사고와 감정은 꼭 동시에 찾아오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을 전혀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조차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다고 했다. 


    그렇게 반년 정도를 살았을 때, 빗소리에 깼던 어느 새벽 날,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스스로도 미친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꺼이꺼이 울었단다. 


    감정이 따라오기까지 반년이 걸린 것이다.


    그 이야기로 상담을 마무리하곤, 나를 돌아봤다. 나도 그의 죽음에 큰 감정을 느끼고 있지 못했다. 상담사가 한 질문에 '~~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나의 생각만을 이야기했다. 


    아, 아직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구나.


    그리곤 내가 크게 슬퍼 울었던 일들을 생각해 봤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사랑에 실패했을 때, 너무 아팠을 때. 상황과 생각과 마음은 동시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음을 곧바로 해소하지 않았을 때, 남은 마음은 더 크게 돌아와 나를 울렸다.


    과거를 더 더듬다 보니, 그렇게 울었을 때도 진정 목놓아서 편안히 울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남들이 깰까 봐, 눈치 보여서, 부끄러워서 울음을 참으며 마음보다 조그맣게 울었다.


    미래에도 슬픈 일은 분명히 생길 것이다. 꼭 울어야만 하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내 마음을 온전히 풀어놓을 수 있도록 슬픔의 자리를 만들어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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