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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Apr 27. 2024

저출산, 성교육 그리고 에밀리 디킨슨의 "절정"

   시집간 딸아이와 화상통화를 가끔 합니다. 얼마 전에는 대화를 하다 갑자기 딸아이가 성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신은 학교에서도 부모로부터도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성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다는 요지이며 투에는 불만이 어있어습니다. 결혼한 딸에게 수차례 아기에 대한 의견을 아주 조심스럽게 비친 데 대한 첫 번째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교육에 관한 질문은 한편 반갑기도 했지만 또 한편 당황스러웠습니다. 성교육에 무심했다는 아이 말에 전혀 반박을 할 수 없어 당황했고 또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했습니다.     


   저도 제 처도 학교에서도 또 부모님으로부터도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 기억으로 중학교 때 생물 선생님으로부터 꼭 알아야 할 성교육이라며 30 분 정도 교육을 받은 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정작 교육내용은 다 잊어버렸고 수업 중 강조하신 “성에 대해 무지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제 처도 중학교 체육시간에 남녀 성기 차이에 대해 배운 게 전부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엄마에게 성에 대해 물어본 기억은 납니다. 구체적인 질문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의 대답만은 아직까지 제 귀에 맴돕니다. “크면 다 알게 되니 지금은 공부나 열심히 하라”였습니다. 그 이후 성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여기저기 음성적인 루트를 통해 채웠습니다. 엄마의 말씀대로 나중에 커서 다 알게 된 셈입니다.

     

  

 차마 딸에게 “우리도 알아서 배웠으니 너도 알아서 배워”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각자도생 식으로 성교육을 습득한 부모가 하는 (무자격) 성교육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딸을 통해 들은) 엄마가 자식에게 전하는 성교육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들이 생각납니다. 한 엄마가 5 살 먹은 남자아이에게 남녀의 성기 차이를 설명했더니 이 아이는 엄마가 고추가 없다는 사실에 무척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온 동네 만나는 사람마다 울먹이며 “우리 엄마는 고추가 없어요”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 미국엄마가 아이에게 성교육차원에서 “네가 내 뱃속에 있다 나왔다”라고 말했더니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도저히 이해할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왜 나를 먹었나요? “ (Why did you eat me?)라고 물어보았다  합니다.


   성교육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방면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 실정에 맞는 그리고 나이에 따른 체계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해야 합니다. 성장에 따른 단계별 성교육으로 올바른 성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면 무지에서 비롯되는 성에 관련된 문제점들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성인들을 위한 부부교육 프로그램도 절실합니다. 우리나라는 학생들을 위한 직업교육에는 진심이지만 성인 대상  결혼교육에는 무심합니다. 따지고 보면 사회생활만큼이나 중요한 게 가정생활인데 후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 역시 각자도생입니다. 우리 모두 (저와 제 딸을 포함) 아무 생각 없이 준비 없이 결혼합니다. 그 결과 부부간의 바람직한 성생활법, 부부간의 올바른 대화법, 출산과 자녀의 양육법,  집 유지 및 보수법,  요리와 청소 방법 등 정작 한 가정의 책임자로서 알아야 할 필수지식은 거의 전무한 상태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은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나오는 고딩엄빠나 다름 없습니다. 게다가 남자와 여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행성입니다. 마치 금성과 화성처럼 다른  남녀가 텅빈 머리로  덜컥 결혼하니 유리  도자기가 가득찬 집에서 눈감고 살아가는 격입니다.  결혼생활 교육은 깨지는 도자기  수를 줄이고 부부가 깨진 도자기에 다치는 일도 줄일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이제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 해결책에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한 성교육과 결혼생활 교육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성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성인 페스티벌이 아니라 온 국민을 위한 성교육 페스티벌입니다.               

   

에밀리 디킨슨(1830-1886)


   에밀리 디킨슨의 「절정」 (“Apotheosis”)을 읽으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는 건 시뿐인 제가 나름대로 시도하는 시를 통한 성교육(?)입니다. 특히 부부가 같이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1830년에 태어나 55년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죽은 처녀 시인이 쓴 “야동” 같은 시입니다. 절정(apotheosis)은 하나님의 은혜로 신을 경험하거나 혹은 수행 후 열반의 경지로 들어가는 영적인 클라이맥스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과정이 한 편의 짧은 포르노처럼 성적(sexual)이며 에로틱합니다.  영적(spiritual) 기쁨을  육체적(physical) 엑스터시로 표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에덴

그대에게 한 번도 허락하지 않은 입술로

수줍은 그대여 당신의 재스민을 한 모금씩 마셔요   

기절한 벌처럼      


마침내 당신의 꽃에 도착하여  

웅웅 거리며 그녀의 방을 빙빙 돌며

자신이 마실 넥타를 살피며

들어가선 향유에 취해 정신을 잃는다               


Come slowly—Eden!

Lips unused to Thee—

Bashful—sip thy Jessamines—

As the fainting Bee—     


Reaching late his flower,

Round her chamber hums—

Counts his nectars—

Enters—and is lost in Balms.


재스민

   절정의 쾌락을 원하는 당사자는 꽃(재스민)입니다. 쟈스민은 사랑 (love), 은혜 (grace), 관능 (sensuality)의 꽃으로 영적인 사랑과 육체적 사랑을 모두 상징합니다. 시인이 쟈스민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또한 이 꽃은 암술이 피는 시기와 수술이 피는 시기가 다릅니다. 사랑(번식)을 하려면 외부의 힘이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을 닮았습니다.      


   첫 연입니다. 꽃은 벌을 유혹합니다. 천천히 오라고. 꽃은 벌에게 천국을 원합니다. 죽은 후 오로지 크리스천에게만 허락된 천상의 나라인 천국. 그러나 우리가 살아서 잠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태양(남)과 달(여)이 완벽하게 겹쳐지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둘이 포개져 하나가 되면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며 모든 사물이 잠시 사라지는 순간이 옵니다. 절정의 찰나이며 꽃이 원하는 천국의 순간입니다.      

   

이 세계는 천천히 오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시에는 장모음을 가진 단어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이-든 (Eden), 디- (Thee) 재-즈먼 (jassmine), 비-(Bee). 언유-즈드(unused) 리-칭(reaching)... 꽃은 벌에게 천천히 천천히 다가오라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시 전체에 멈춤(pause)을 나타내는 대시(--)를 깔아 놓았습니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 도로에 설치한 과속 방지턱과 같은 역할입니다. 서두르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습니다. 이든과 재스민이 그리고 디와 비가 라임을 이룹니다. 천국은 꽃이며 그대는 벌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꽃의 입장에서는 벌이 천국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천국이란 말입니다. 꽃이 수줍어하는 벌에게 명령합니다. 천국으로 들어오라고. 당신의 쟈스민을 조금씩 음미하라고. 벌은 들어가기도 전에 기절할 지경입니다.       


   두 번째 연입니다. 이제 벌이 꽃에 들어왔습니다. “늦게” (late)라는 부사가 눈에 띕니다. 꽃이 원하는 대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갔는데 꽃이 많이 기다렸나 봅니다. 벌이 그녀의 방 입구에서 빙빙 돌면서 전희를 즐기듯 웅웅 거립니다. 꽃은 흘러넘치는 넥타를 주체하지 못합니다. 벌은 뚝 뚝 떨어지는 생명의 꿀을 세다가 마침내 들어갑니다. 꽃은 자신이 생산하는 넥타의 주인으로 벌을 온몸으로 품습니다. “넥타스”(nectars), “엔터스”(enters). 벌과 꽃은 파도가 철석이듯 그네가 왔다 갔다 하듯 리듬에 맞추어 서로 몸을 흔듭니다. 천국의 방에 들어간 벌은 잠시 멈추더니 이내 향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넥타에 취해 정신을 잃고 맙니다. 벌과 꽃이 이룬 절정—에덴의 순간—입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꽃의 넥타는 신성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꽃을 향한 벌의 움직임은 영적 깨달음 향한 여정(수행)이며 에덴의 순간은 신성과의 만남이며 초월적인 경험입니다. 벌과 꽃의 만남은 금성과 화성의 만남입니다. 서로에게 천국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가 다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성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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