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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y 17. 2024

포스트모던 형 사이코 킬러들의 전성시대

아메리칸 사이코 vs. 코리안사이코


    “결론은 이거야. 난 기분은 엿 같지만 외모는 끝내줘.”

                                      (브렛 이스턴 엘리스, 『아메리칸 싸이코』)            

 

 

  영화 속 혹은 실제 사이코 패스 성향의 살인마 (『양들의 침묵』의 버팔로 빌, 플레인 필드의 도살자 에드 게인,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이춘재 등)들은 대체로 다음과 프로파일을 갖고 있습니다. 1.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은둔 형 외톨이 2. 최저임금 직업이나 시간제 근로자 (재봉사, 잡역부, 자동차 정비공 등) 3. 가난, 폭력, 알코올 중독 등 문제 있는 가정환경에서 성장 4. 학업에 흥미를 못 느끼며 평균 IQ의 저학력자. 즉 사이코 킬러들은 대부분 불우한 환경의 사회 소외 계층 출신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1991년 전혀 새로운 유형의 사이코 패스 킬러가 등장합니다. 그는 바로 브렛 이스턴 엘리스가 쓴 소설 『아메리칸 싸이코』(1991)의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이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된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상연된바 있습니다. 그는 넉넉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한  명문 하바드 출신의 투자 자문회사 인수 합병 담당자입니다. 그러나 밤만 되면 노숙자, 창녀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아무 이유 없이 강간, 폭력, 살인을 저지릅니다. 전례 없는 사이코 범죄자 유형입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수재형 전문직 사이코 킬러가 등장한지 20 여년이 지난 뒤 그를 연상시키는 사이코 범죄자들이 한국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패트릭 베이트만과 비슷한 나이 즉 20 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며 대부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으며 머리도 좋아 학사 이상의 학력을 가졌거나 혹은 명문대 재학생으로 은행이나 의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 중이거나 종사할 예정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메리칸 사이코 같은 성범죄 및 잔인한 살인 사건의 주범들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왜 사소한 일에 질투를 하며 분노를 주체 못하고 무자비한 폭력 및 살인을 저지르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외형의 가진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잔인한 범죄는 우리가 사는 포스트모던 사회  현상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포스트모던 형 사이코의 원조격인 패트릭 베이트만은 겉만 보고는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전형적인 지킬 박사 형 인물입니다. 그는 어느날 저녁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고 그 중 한 명인 코트니(자신의 약혼녀의 베프)와 섹스를 즐기고 다음날 출근합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비즈니스 미팅에 참석할 준비(주로 얼굴관리)를 끝낸 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결론은 이거야. 난 기분은 엿 같지만 외모는 끝내줘.”


속은 공허하고 병들었지만 겉만은 화려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대사는 포스트 모던형 사이코를 정의하는 핵심이자 현대사회인의 폐단을 꿰뚫는 예리한 통찰입니다.  전날 술 먹고 광란의 밤을 보낸 후에도 이처럼 끝내주는 외모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평소 몸에 대한 철저한 관리 덕분입니다. 매일 출근 전 균형잡힌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엄격한 운동 후에 전신 피부 관리 루틴( 얼굴 얼음팩, 모공 클랜저 로션, 수용성 젤 클랜져, 각질제거를 위한 젤 스크럽, 무알코올 스킨로션, 보습제, 안티 에이징 눈 크림과 피부보호 용 수분 유지제로 마무리)을 철저히 지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2 리터의 에비안 생수를 매일 챙겨 마시며 일주일에 두 번 태닝 샵을 방문 태닝과 피부 전문가의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신체 관리 루틴은 자신의 몸에 바치는 새벽기도, 철야기도이자 정기 예배입니다. 그에게 외모는 자신이 숭배하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외모 숭배자에게 명품은 필수품입니다. 패트릭 베이트만의 생활은 한마디로 명품의, 명품을 위한, 명품에 의한 삶입니다. 그에게 명품은 북한 김정은이가 체재유지를 위해 애지중지하는 핵무기 같은 존재이며 그가 정복을 결심한 철옹성 같은 여성들의 마음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마법의 무기입니다. 그는 절대로 텔레비전을 텔레비전으로 의자를 의자라고 파자마를 파자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에게 상품은 곧 브랜드입니다. 그는 31 인치 도시바 디지털 텔레비전(1990년대 기준으로 하이엔드 급)을 보며 에릭 마커스가 디자인한 의자를 쓰며 파자마는 랄프 로렌 실크 파자마 양복은 발렌티노 그리고 넥타이는 아르마니를 착용하며 샴푸는 유럽제 폴틴을 씁니다. 디저트 인 애플 페어도 한 조각에 4 달러짜리 일제이며 이를 담아 놓는 알루미늄 용기도 독일 디자인 제품입니다.  

   

    이처럼 주인공은 오로지 보여주는 외적인 면에는 병적으로 집착하지만 그의 내면은 공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패트릭 베이트맨를 정의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 그건 어떤 일종의 추상적인

     것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나는 없다. 오직 하나의 객체 어떤 환영 같은 존재이다.

     난 나의  차거운 시선을 감출 수 있을 지라도 당신은 나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는

     동안 나의 살을 느끼고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서로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을지         도  모르지만 난 사실 거기에 없다.             



화려한 겉모습 그러나 속은 텅 빈 베이트만. 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친구들과 식당에서 대화 도중 인종차별 금지, 테러리즘과 핵무기 억제, 시민권 증진, 물질주의 타파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실제 그의 관심사는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의상, 남들이 소지한 소품, 감각을 자극하는 음식, 음악, 술, 그리고 자극적인 섹스입니다. 그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고 동료인 폴 알렌의 명함(세련된 색의 워터마크가 찍힌)에 질투를 느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패트릭이 한 클럽을 방문하여 카운터에서 티켓을 건네며 위스키를 주문하자 바텐더가 여기는 “현금만 받는 바”라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등을 돌리자 이렇게 반응합니다. “칼로 난자해서 죽인 뒤 네 피를 갖고 놀아볼까, 망할 년.” 그의 질투와 끓어오르는 분노는 폭력 강간 살인으로 표출됩니다. 그는 퇴근 후 어둠 속에서 거리의 노숙자를 칼로 찔러 죽이고 동물을 학대하며 멋진 명함을 소유한 폴 알렌을 집으로 유인하여 도끼로 살해합니다. 밤이면 매춘부, 콜걸들을 불러다 가학적인 섹스를 한 후 한 명은 이불속에서 이빨로 물어뜯어 살해하고 이를 보고 겁에 질려 도망가는 한 명은 전기톱으로 잔인하게 살해합니다. (그러나 작품은 그의 살인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상상의 일인지 모호한 태도를 취합니다. 폭력과 살인을 현대인의 뒤틀린 내면의 구체화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말입니다.) 잔인한 일을 저지른 후 그는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나는 인간의 모든 특징--살, 피, 피부, 그리고 털--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의

     비인간화는 너무 강도가 세고 너무 깊어져서 동정심 같은 나의 일반적인 감정은

     사라진 듯하다.  천천히 고의로 진행되는 지움의 피해자인 나는 단순히 현실을

     흉내내는 대충 인간 비슷한 모조품이다. 오로지 내 마음의 어두운 구석만이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공허한 내면을 가진 외모 숭배자는 어쩌면 브랜드 추종을 부추키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산물이자 희생자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물건의 사인 밸류(sign value 즉 브랜드)가 물건의 노동, 사용, 교환가치를 전부 흡수해버리는 사회로 정의합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브랜드 숭배자로 길들여집니다. 우리는 언제인가부터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무슨 상표의 옷을 입었고 어떤 회사가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니며 어떤 브랜드의 차를 타는지에 더 관심을 보입니다. 기자들이 어떤 유명 연예인을 소개할 때는 늘  착용한 의상, 구두, 액세서리, 시계, 들고 있는 가방 등의 브랜드를 먼저 언급합니다. 유명 건축가가 (탤런트와 함께 진행하는 집 탐방프로그램에서) 한 회장님 저택의 거실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이태리제임을 강조합니다. 사람을 그 사람의 내면이 아닌 그 사람이 소유한 상품으로 설명하고 또 그렇게 받아드리는 세상이 된 겁니다. 이제는 상표를 위해 목숨도 거는 세상이 되어 미국에서는 나이키 신발을 놓고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들도 종종 발생합니다. 우리 삶의 주체는 우리가 아닌 우리가 추종하는 브랜드입니다.


   장 보드리야르의 사인 밸류 개념은 우리나라 관광산업에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한때 성형 중독의 나라로 불렸던 우리나라. 이제 자타 공인 관광 중독의 나라입니다. 성형과 관광. 얼핏보면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나를 돋보이게 하는 수단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둘의 본질은 똑 같습니다. 이제 잘 알려진 세계적 관광지(텔레비젼 관광 프로그램을 통해 지겹도록 본 파리 에펠탑, 포루투, 우유니 사막, 앙코르 와트, 산토리니 등)들도 이제는 남에게 과시를 위해 소비하는 명품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상품의 가치가 상품의 사인 밸류에 의해 압도 당하듯이 관광도 내적 즐거움이나 휴식을 얻는 내적 가치보다는 점점 사진 찍고 인스타나 카톡 프로필을 장식하여 남에게 과시하는 외적 가치가 더 우선 된 듯합니다. 관광조차 자신을 내세우고 보여주는 수단이 된 사회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철학, 시, 인문학, 예술이 설 자리는 점점 협소해집니다. 포스트 모던 사회는 우리의 내면이 더욱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아메리칸 사이코가 탄생한지 20 년이 지난 즈음 우리나라에 패트릭 베이트만 류의 사이코 킬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름 아닌 데이트 폭력, 살인범들입니다. 여성인권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2.7일 당 한 명씩 데이트 폭력에 의한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합니다. 동기생을 술 먹인 후 성추행하고 신체를 사진 찍은 3 인의 고대 의대생,  옥상에서 여친을 살해한  ‘수능만점' 타이틀을 지닌 명문대 의대생, 사귀던 황예진씨를 폭행하여 살해한 30대 은행원, 엄마 앞에서 딸을 흉기로 살해한 대학생 김레아 등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모두 부유층 자제들로 부족함 없이 자라난 20 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고학력 전문직 종사 혹은 종사 예정자들입니다. 이들의 범죄는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처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 합니다. 여친의 목 부위 경동맥을 20 여 차례나 찔러 살해, 피해자의 목이 꺽일 정도로 폭행한 다음 늘어진 신체를 바닥에 끌고 다닌 후 유기, 엄마가 보는 앞에서 딸을 칼로 잔인하게 살해했으니 말입니다. 모두 약한 여성을 상대로 한 극악무도한 범죄이며 살인 동기는 질투, 무시, 이별통보로 인한 분노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순한 이미지의 모범생 악마들이며 포스트모던 형 사이코 킬러들입니다. 이들을 정의하는 한마디가 바로 " 난 기분은 엿 같지만 외모는 끝내줘.” 입니다.

   

   외모와 브랜드를 추종하는 포스트모던 사회. 우리 젊은이들의 브레인이 병들 수밖에 없는 토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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