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 가장 많이 암시되고 인용된 시라는 타이틀을 가진 시가 있습니다. 성경의 계시록에 묘사되어 있는 문명 종말 후의 예수님 재림을 소재로 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재림」 (“The Second Coming”)입니다. 1920년 출판이래 「재림」의 시어들은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작가 겸 영화감독 우디 알렌(『...온전한 무질서』), 작가 라보이 엠 티센 (『재림...』), 역사학자 제럴드 에스터 (『피로 물든 조수...』), 법학교수 에린 색스(『중심은 지탱할 수 없다』), 인류학교수 말시밀리언 포트(『수르트를 향한 무거운 움직임...』), 포크 음악 그룹 알텐(『넓어지는 원』), 메틀 밴드 웰름(『태양처럼 무자비하고 감정없는 눈』) 그리고 조니미첼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발걸음」) 같은 뮤지션 등 수 많은 지식인과 아티스트들에 의해 책 제목, 앨범 타이틀, 영화 대사, 노래 가사로 끊임없이 재생되어 왔습니다. 100년 전 시인이 목격한 문명 종말 직전의 암울한 세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극단적인 기후변화의 위협 속에 급격한 인구감소까지 이제는 국가 소멸을 걱정하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그 힘과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는 시「재림」을 다시 읽어봅니다.
1919년 1 월. 예이츠가 이 시를 쓸 때의 세계는 엄청난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1917년은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공화국을 탄생시킨 러시아 혁명이 발발했고 1918년은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힌 세계 1 차 대전이 막을 내린 해였습니다. 그 이듬해인 1919년은 아일랜드 공화파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 연합파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합니다. 1918년 과 1919년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여 전세계인구의 20-30%에 해당하는 5천만명 정도가 사망합니다. 이를 배경으로 탄생한 예이츠의 「재림」. 시는 예언합니다. 인류 문명은 이제 2000년의 수명을 다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 미래는 심판과 구원의 예수님이 여는 새 세상이 아니고 파괴와 죽음을 부르는 험악한 야수의 세상이 될 거라고.
이러한 서구문명의 멸망 위기는 20세기 초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닙니다. 19세기 중반 이천년 동안 굳건히 유지해오던 유럽의 전통적인 종교, 국가, 사회 시스템을 송두리째 흔드는 지식인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다윈, 니체, 칼 맑스, 프로이드 등입니다. 각기 다른 분야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의 신을 부정하며 세상은 신이 아닌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인간은 신의 섭리가 아닌 다른 동물처럼 진화의 영향을 받으니 자연에서 생존하려면 인간 스스로 강해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니체는 기독교 신에 의해 수천년간 부정당하고 억눌린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여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고 창조적 잠재력을 극대화시키는 진정한 삶의 의지인 "권력의 의지"를 역설합니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은 인간을 억압하는 주체를 종교가 아닌 경제적으로 착취를 일삼는 자본가로 보고 이들의 족쇄로부터 노동자들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천명합니다. 프로이드에게 인간을 억압하는 주체는 (신이 아닌) 인간의 “무의식”입니다. 그는 신은 환상(fantasy)에 불과하며 인간은 초기 문명시절 인간의 폭력적인 근성을 통제할 필요에 의해 신을 만들었으나 이제 그 역할은 과학과 이성이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강한 인간, 창조적 경제적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 자아를 찾는 인간이라는 기치를 표방한 19세기의 그랜드 내러티브는 아이러니하게 인간을 파멸과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비극의 전주곡이 됩니다. 이 시기 집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제국주의, 군국주의, 국수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스트 등의 세력들이 그랜드 내러티브를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입맛대로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신이라는 중심이 없어진 유럽. 그 자리를 인간이 차지하자마자 인류는 전례 없는 규모의 파괴와 죽음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를 읽어 봅니다.
빙글 빙글 점점 넓어지는 원을 그리며 날아 올라가는
매는 매꾼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Turning and turning in the widening gyre
The falcon cannot hear the falconer;
매 꾼의 손을 떠난 매가 하늘로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는데 매가 너무 높이 올라가 매는 매꾼의 명령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습니다. 나선형으로 비상하는 매의 모습은 곧 이어지는 혼란의 소용돌이를 예고합니다. 매꾼과 매의 관계는 신과 인간, 지배자와 피지배자, 귀족과 평민, 성직자와 신도, 지주와 농노,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입니다. 과거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매 꾼의 명령은 이제 더 이상 매에게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매꾼과 매는 먹이를 공급하고 그 댓가로 사냥감을 잡아오는 그런 공생관계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자신이 사는 적대관계로 변해갑니다. 이천년을 유지해오던 유럽의 사회 시스템에 균열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만사가 무너지고; 중심은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다
무질서만이 세상 천지에 넘쳐흐르고
피로 물든 조수가 밀려온다, 그리고 사방팔방
물속에 잠기는 순수의 의식
선한 자는 확신을 잃고 악한 자는
부글거리는 열정뿐이다
Things fall apart; the centre cannot hold;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
The blood-dimmed tide is loosed, and everywhere
The ceremony of innocence is drowned;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만사가 무너지고; 중심은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다”는 그동안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오던 신이 사라진 세상의 모습입니다. 신의 자리를 개인의 자아와 인간의 욕망이 차지한 후 횡행하는 건 “오직 무질서” 뿐입니다. 너도 나도 다 잘사는 세상이 열릴 줄 알았지만 결과적으로 너는 죽어도 나만은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변모합니다. 억압받던 인간을 진보시키고 해방시켜주리라 믿었던 이성은 최첨단 무기와 더불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인간에게 살아있는 지옥을 선사합니다. 과학은 인류의 2-30 %를 몰살시킨 독감 바이러스 하나 해결을 못합니다. 각자 도생의 시대는 각자 도피의 세상이 되었으며 19세기 인간성 회복을 외쳤던 그랜드 내러티브의 순수성은 바다에 빠져 익사합니다. 선한자는 방향을 잃어버렸고 악한자(영국, 스페인 프랑스의 제국주의, 독일 이태리의 파시스트, 일본의 군국주의, 소련의 공산주의)는 핏대를 세워가며 전 세계에 악을 전파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아비귀환의 아포칼립틱(Apocalyptic)상황이 계속되니 이는 시인에게 어떤 계시입니다.
분명 어떤 계시가 온 것이다.
분명 재림이 온 것이다.
재림! 이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세계령 속에 숨어 있던 거대한 이미지가
등장하여 내 시야를 어지럽힌다.
Surely some revelation is at hand;
Surely the Second Coming is at hand.
The Second Coming! Hardly are those words out
When a vast image out of Spiritus Mundi
Troubles my sight:
넷째 줄에 생소한 단어(Spiritus Mundi)가 등장합니다. 세계의 영혼이란 뜻의 라틴어이며 인류의 집단 무의식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그 세계령 안에서 나온 이미지(스핑크스)가 재림의 주인공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거라고 말합니다.
모래사막 어디에선가
사자의 몸에 사람의 머리
태양처럼 무자비하고 감정없는 눈을 가진 형체가
느릿느릿 자신의 허벅지를 끌며 움직인다, 그 주위에는
분노한 사막 새들의 그림자들이 빙빙 돈다
어둠이 다시 내린다. 그러나 난 안다
2000년 간의 돌 같은 잠이 흔들리는 요람에
방해받아 악몽으로 변했음을
그리고 어떤 험악한 야수가 마침내 때가 온 듯
탄생을 위해 베들레헴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가?
somewhere in sands of the desert
A shape with lion body and the head of a man,
A gaze blank and pitiless as the sun,
Is moving its slow thighs, while all about it
Reel shadows of the indignant desert birds.
The darkness drops again; but now I know
That twenty centuries of stony sleep
Were vexed to nightmare by a rocking cradle,
And what rough beast, its hour come round at last,
Slouches towards Bethlehem to be born?
인류의 집단무의식에 존재하고 있던 그 형체는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를 하고 무자비하고 무 표정한 스핑크스입니다. 모래 바람을 뚫고 어슬렁거리며 등장하는 그의 머리 위에는 주검을 기다리는 사막 새가 빙글빙글 돕니다. 그는 사실 곧 등장할 재림 주인공의 예고편입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등장하여 예수님을 잘 만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한 세례 요한 격입니다. 이제 사막에 다시 어둠이 깔립니다. 이천년 간 아무 방해 없이 아이처럼 잠자고 있었던 그 무엇인가가 요람이 흔들리자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잠에서 막 깨어나려는 진짜 재림의 주인공입니다. 흔들리는 요람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철학 과학 사회 문화적 변혁과 혁명 즉 첫 연에서 언급한 중심의 균열을 의미합니다. 누가 요람에서 깨어나 나올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언자의 눈에는 구부정히 웅크린 등을 갖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야수로 보입니다. 인류에게 역사상 전례 없는 차원의 악몽을 선사할 거친 괴수 입니다.
「재림」의 시작 부분을 다시 읽어봅니다.
매는 매꾼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만사가 무너지고; 중심은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다
예이츠가 예언한 종말론적 상황은 우리나라에서도 진행 중입니다. 매부리는 사람과 매의 관계는 이제 각 분야로 퍼져 스승과 학생,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 사장과 근로자의 관계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매일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니 사는 길은 각자도생뿐입니다. 최근 여기에 두 팀이 더 가세했습니다. 하나는 의사와 환자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와 국민입니다. 의료 공백도 일상이 되가고 정치의 실종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닙니다. 예이츠는 100 년 전 중심이 무너지는 세상을 목격했지만 우리는 마치 구멍난 도너츠처럼 아예 중심이 텅 빈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