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자신에게 읽어주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가 읽는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루트거 브레그만)
우리가 사랑하는 동화 『빨간 망토의 소녀』 (17세기 프랑스 사를 페로의 버전)의 하이라이트는 할머니로 위장한 늑대가 소녀를 잡아먹기 직전의 문답 장면입니다. 빨간 망토의 소녀가 평소와 다른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해서 정체 확인 용 질문을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문답이 오고가는 동안 동화를 읽어주는 어른은 아이를 잡아먹으려는 늑대로 변하고 듣는 아이는 빨간 망토의 소녀가 됩니다. “왜 그리 무시무시하고 유난히 큰 입을 가졌나요?”라는 마지막 질문이 나오기가 무섭게 화자(늑대)는 “너를 더 잘 잡아먹으려고” 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앙” 하고 입으로 깨무는 시늉을 합니다. 동화의 내용은 잔혹한 비극이지만 실제는 어른도 웃고 아이도 깔깔거리며 끝나는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이 동화의 메시지는 엔딩 뒤에 첨부되어 있는 교훈(Moral)을 같이 고려해야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주목을 못 받는 (따라서 번역도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은) 교훈을 읽어봅니다.
교훈: 어린아이들 특히 예쁘고 얌전한 어린 여자아이들은 낯선 사람들과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늑대의 저녁 식사감이 될 거예요. “늑대”라고 말했지만
세상에는 별의 별 늑대가 다 있습니다. 매력적이고 조용하고 예의 바르고 티도
안 나며 사근사근한 그리고 멋진 늑대들이 득실거립니다. 그들의 타겟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젊은 여성들입니다. 불행하게도 가장 위험한 자들 바로 이 점잖은
늑대들입니다.
동화 속의 늑대는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있는 강간범들입니다. 이 『빨간 망또』는 샤를 페로가 구전으로 돌아다니던 민담을 17세기 프랑스 여자아이들을 위한 품행교육 용 스토리로 각색한 것입니다. 19세기 독일의 그림형제가 쓴 『빨간모자의 소녀』도 “교훈”이 빠져있고 결론부분도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젊은 여성을 위한 성교육 용 이야기라는 점은 같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이 동화를 다시 읽어보면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내용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이름—빨간 망토--의 유래로 시작합니다. 할머니로부터 자신과 너무 잘 어울리는 빨간 망토를 선물받은 주인공. 어디를 가나 늘 빨간 망토를 착용하고 다녀 아예 빨간 망토가 이름이 되었죠. 그런데 왜 빨간색일 까요? 책을 읽고 즐기는 독서법 제 1 법칙은 “먼저 작품의 제목 혹은 주인공 이름에 대해 의문을 가져라”입니다. 수 많은 색 중에서 하필이면 빨간색을? 여기에서 빨간 망토라는 이름은 주인공의 정체성을 암시합니다. 색의 상징을 연구한 책 (Color and Meaning)에 따르면 빨간색은 “사랑,” “성숙,” “생명의 근원,” “열정”을 나타냅니다. 빨간 망토를 여자의 2차 성징인 “월경”으로 해석하는 한 심리학자의 주장도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빨간 망토 혹은 빨간모자의 빨간색이 여자 생리혈의 메타포라고 생각하면 이 주인공 아이의 나이대도 생각보다 조금 많아집니다. 최소한도 10 대 중반 정도의 여학생으로 이성에 호기심을 보이는 나이대가 됩니다. 신경쓰기 시작하는 사춘기 나이의 딸을 둔 엄마에게 건너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엄마는 아이의 편에 빵과 포도주를 할머니 댁에 보내기로 하는데 19세기 그림 형제 버전은 엄마의 교육이 추가 됩니다. “숲에 들어가게 되면 특히 한 눈 팔지 말고 반듯하게 걷고 곧장 할머니 댁으로 가야 해.” 그러나 아이는 숲속에서 늑대를 만나더니 그만 소중한 개인정보까지 홀라당 털립니다. 엄마의 신신당부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아이는 숲속 길에 피어있는 꽃에 정신이 팔려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요즘 엄마들이 학교에 등교하는 딸을 보고 학교 끝나면 집에 곧장 오라고 말하는 장면을 그려보시면 됩니다. 방과 후 우리 딸들은 집에 오는 도중에 있는 숲—노래방, 뽑기방, 게임방, 포토샵, 공원, 영화관, 순대 떡볶이 집 등—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늑대같은 남학생들도 어슬렁거리는 장소입니다. 동화 속 늑대는 할머니 집으로 곧장 가서 아파서 누어있는 할머니를 먼저 잡아먹습니다. 취식 장소가 침대이니 강간했다는 말입니다. 늑대는 치마만 두르면 나이 불문 달려드는 싸이코 패스 성향의 성 폭행범입니다. 이제 늑대의 목표는 할머니의 손녀 딸입니다. 동물같은 남성에게 희생당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가 여성이 지켜야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길에서 한 눈 팔지 말고 어물쩡거리지말고 특히 낯선 이와 절대로 대화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 빨간 망토 이야기는 위에서 소개한 프랑스 페로의 『빨간 망토』 (1697), 독일 그림형제의 『빨간 모자』 (1857) 이외에도 브리폴의 『할머니의 이야기』 (1885), 앤 섹스턴의 『빨간 망또』 (1971), 안젤라 카터의 『늑대인간』 (1979), 로올드 달의 『빨간 망또의 소녀와 늑대』 (1995) 등 여러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빨간 망토에 관한 다양한 동화나 시들을 읽어보면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이야기의 결도 결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19 세기까지만 해도 여자는 잠시 한눈을 팔면 끽소리 한 번 못하고 잡아먹히거나 혹은 그림형제 버전의 『빨간 모자』에서처럼 지나가는 사냥꾼에 의해 즉 “남성”에 의해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림형제는 사냥꾼을 등장시켜 할머니와 손녀딸을 잡아먹고 배가 불러 자고 있는 늑대를 죽이고 늑대의 배를 갈라 둘 다 구해줍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빨간 망토는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과거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의 소녀는 사라지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혹은 늑대보다 더 잔인하게) 대처합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로 잘 알려진 로올드 달(Roald Dahl)의 『빨간망또의 소녀와 늑대』(1995)를 통해 20세기 빨간 망토의 소녀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살펴봅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는 거기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면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죠. 난 이 아이를 잡아먹을 거야
그녀의 할머니와 비교하면
그녀의 맛은 철갑상어 알이지
그때 빨간 망토의 소녀가 말합니다. “근데 할머니
너무 멋지고 큰 털 코트를 입고 계시네요.”
“아 그게 아니지” 늑대가 소리쳤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이빨을 가졌는지를
물어보는 걸 잊었잖아
아 됐고. 네가 뭐라 말하던지
난 너를 잡아 먹을테니까”
꼬마 소녀는 웃었습니다. 한 눈을 깜빡하곤
소녀는 바지에서 권총을 재빨리 꺼냈습니다.
총을 늑대의 머리에 겨냥하고는
탕 탕 탕. 소녀는 그를 저격하여 살해했습니다.
몇 주 후 숲속에서
망토 아가씨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변했는지! 빨간 망토도
머리위에 쓰고 다니던 바보같은 모자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것 좀 보세요
늑대 가죽으로 만든 나의 멋진 털코트를.”
He sat there watching her and smiled.
He thought, I'm going to eat this child.
Compared with her old Grandmamma
She's going to taste like caviar.
Then Little Red Riding Hood said, "But Grandma,
what a lovely great big furry coat you have on."
"That's wrong!" cried Wolf. "Have you forgot
To tell me what BIG TEETH I've got?
Ah well, no matter what you say,
I'm going to eat you anyway."
The small girl smiles. One eyelid flickers.
She whips a pistol from her knickers.
She aims it at the creature's head
And bang bang bang, she shoots him dead.
A few weeks later, in the wood,
I came across Miss Riding Hood.
But what a change! No cloak of red,
No silly hood upon her head.
She said, "Hello, and do please note
My lovely furry wolfskin coat."
20세기 형 빨간 망토의 소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잘못 건들렸다간 늑대고 나발이고 뼈도 못추리게 됩니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는 쪽은 남성들입니다. 서구에서 시작된 페미니스트 운동의 결과물입니다. 글 서두에 인용한 네델란드 역사학자인 루트거 브레그만의 말을 다시 상기해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자신에게 읽어주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가 읽는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루트거 브레그만)
We humans, we become the stories that we tell ourselves. Our stories
are never just stories. They are self-fulfilling prophecies. (Rutger Bre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