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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r 11. 2022

4.  칼립소의 포로가 된 오디세우스

여신 칼립소의 사랑의 포로가 된 오디세우스  



 『오딧세이』초반부에 조금씩 감질나게 언급되었던 오디세우스는 5 권부터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메네레우스가 말한 것처럼 그는 아름다운 여신 칼립소에 의해 오기지아라는 섬에 잡혀있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칼립소의 섬은 14 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각 넘버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를 떠돌아다닌 곳을 표시하고 있으며 트로이가 1 번 인 점을 감안하면 이야기가 1 번 부터 13 번까지의 여정은 생략되었고 거의 중 후반부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여신의 사랑의 노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성 노예로 7 년간이나 봉사를 강요당하고 있었지요. 요정은 오디세우스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에게 영생과 영원한 젊음을 약속하고 같이 천년만년 같이 살자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호머와 동시대의 작가인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칼립소와 오디세우스는 7년간의 동거로 이미 두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섬은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에 늘 물고기와 과일, 포도주가 넘치는 지중해 판 에덴동산입니다.  더욱이 요정과 오디세우스의 시중을 들어주는 하녀들도 있고 따먹지 말라는 과일나무도 사탄도 없으니 에덴동산보다 한 단계 높은 초 프리미엄급 낙원입니다.  요정은 오디세우스와 함께 섬의 동굴에 살림을 차렸지만 인간은 고향에 두고 온 아내 생각 뿐입니다.  



오딧세이의 여정을 표시한 지도 ( shmoop 제공)



오디세우스를 풀어주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받고 오열하는 여신



   고향을 그리는 오디세우스의 간절한 마음은 신들의 거주지 올림포스에 전해졌고 제우스는 신의 전령사 에르메스를 칼립소에게 보냅니다. 오디세우스를 이제 그만 놓아 주라는 거죠. 에르메스? 프랑스 명품가방 브랜드이죠. 이 상표는 창업주의 이름이지만 에르메스가 그리스 신화에서 소식, 운송, 여행, 무역의 신임을 감안 할 때 가방 이름으로 너무 잘 어울립니다.  성공한 사업 뒤에는 언제나 멋진 이름이 있습니다. 칼립소는 자신과 같은 신인 에르메스를 단박에 알아보곤 왜 왔느냐고 물어봅니다.  에르메스는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풀어주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이 말을 들은 칼립소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저항합니다. 왜 남자 신들은  여신이 인간하고 살림을 차리는 꼴을 못 보느냐며 항변합니다. 인간과 살고자 했으나 실패한 여신들의 리스트를 나열하며 왜 내가 이 목록에 포함되어야 하느냐고 울부짖습니다. 인간을 사랑했으나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여신의 이야기를 다룬 시도 많이 있습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회색바위」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1913년 에 발표된 이 시는 침략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전선으로 떠난 아이리시 전사와 그를 사랑한 여신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신인 이퍼 (Aoife)는 전쟁터로 떠난 자신의 애인에게 200년의 생과 죽음을 막는 마법의 핀을 선물하나 전사는 그 핀을 수치로 생각하고 왕의 아들을 따라 죽음을 택합니다. 사랑하는 애인을 잃은 이퍼는 울부짖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왜 영원이 순간을 사랑해야 하나요?

       왜 신들이 인간에게 배반을 당해야 하나요?


       Why must the lasting love what passes,

       Why are the gods by men betrayed?'



인간의 선택을 못 받은 여신의 절규가 느껴지시나요?  반대로 여신의 사랑을 구걸한 남자의 이야기는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이란 말이지요. 칼립소는 제우스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는 점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정은 오늘도 먼 바다를 응시하며 고향생각에 슬퍼하고 있는 오디세우스를  찾아 고향으로 보내주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그리고는 오디세우스로 하여금 배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항해에 필요한 음식, 포도주, 그리고 옷을 제공합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애원합니다. 혹시 고향에 도착하기 전 당신이 겪게 될 고난과 아픔 생각만 해도 끔찍할 텐데 내가 영생을 줄 터이니 여기에서 나하고 같이 살면 안되겠냐고 간청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 아내보다 더 이쁘고 더 날씬하지 않은가 하고 남자의 약점을 슬쩍 건드려봅니다. 오디세우스는 슬퍼하는 칼립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여신이시여, 내 감정을 미워하지 마세요. 나의 아내 페네로페의 얼굴이나

     몸매가 어디 당신과 비교나 되겠어요? 내 아내는 인간이고 당신은 영원한 젊음을

     소유한 여신이잖아요. 그럼에도 고향이 그리워 미칠 것 같아요. 이는 한결같은

     나의 소망입니다. 하늘의 신이 포도주 빛 바다에 내 가 탄 배를 집어 던질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이미 고통에 익숙해졌으며 또한 고통을 견디도록 나 자신을

     더욱 단련시킬 각오가 되어 있어요. 저는 사는 동안 전쟁터에서 그리고 바다위에서

     뼈가 부서지도록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었습니다. 새로운 재난 얼마든지 오라고

     하세요. 제게는 또 하나의 재난에 불과 해요.   (93, 5 권)       



고향을 향한 오디세우스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을 뿐 더러 어떠한 역경도 불사한다는 그의  불굴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이에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포기하고 그에게 항로를  알려줍니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가 가라는 방향으로 18일 째 항해하던 중 파이아키아 사람들이 사는 섬 근처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다시 한 번 이타카의 왕에게 고난을 선사합니다. 왜 포세이돈을 이렇게 기를 쓰고 오디세우스의 홈커밍을 방해하는 걸까요? 우리는 아직 그 이유를 모릅니다. 오디세우스가 탄 배는 포세이돈이 보낸 다시 풍랑을 만나 뒤집어 지고 부서집니다. 그는 배에서 떨어져 나온 널빤지 하나를 부여잡고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립니다.  그는 섬을 발견하곤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해변 쪽으로 헤엄을 칩니다. 그는 강어귀까지 도달하자 안도감과 피로가 겹쳐 이내 잠이 듭니다.


     

     


부계사회에서의  칼립소와 오디세우스의 관계  

오디세우스를 위로하는 칼립소 , 존 클르스 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 칼립소 이야기에는 호머시대 남자가 어떤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칼립소는 여신이기 이전에 여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칼립소와 오디세우스의 관계는 여성이 남자를 사랑의 포로로 잡고 있는 형태입니다. 한마디로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형태의 삶이며 이는 부계 사회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남녀의 관계입니다. 위에서 잠간 언급했듯이 여신 즉 여성이 주도하는 모든 사랑은 실패로 귀결되었죠. 이는 남성지배사회에서는 결코 여성의 주도권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입니다. 에르메스가 오디세우스를 풀어주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했을 때 칼립소가 한 말 기억하시나요? 자신은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남자를 골라 법적으로 전혀 하자 없는 배우자로 선택했는데 왜 남자 신들은 그 꼴을 못 보느냐고 했지요. 이는 당시 남성중심의 사회적 규범에 대한 공격입니다. 왜 여자들은 남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나요?  그래서 이를 부당하게 생각한 아일랜드에서는 4년에 한번 오는 윤년 2 월 29일에 여자가 남자에게 청혼 할 수 있도록 정했으며 이때 남자는 여자의 프로포즈를 무조건 승낙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일랜드 전설에서 유래된 관습이며 이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리프 이어(Leap Year)이죠. 아일랜드에서는 4 년에 한 번이라도 정해놓았지만 그나마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하니 여자 주도의 청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오딧세이』가 가정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부부간 정조의 의무를 강조하는데 이는 사실 남자보다는 여자를 향한 외침입니다. 칼립소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칼립소는 베틀기 앞에서 베를 짜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으로 처음 선을 보입니다. 이는 여신을 오디세우스의 고향에 있는 페네로페와 비교하려는 의도입니다. 오디세우스와 페네로페는 사실 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남편은 여신의 구애를 받고 있고 아내는 108명의 남자 중 한명의 남편을 선택하라고 강요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의 선택은 정반대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아내는 베틀기 앞에서 베를 짜는 구실로 구혼자들의 청혼을 물리치고 있었지요.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성적인 유혹을 받아들여 7 년을 같이 살면서 아이도 2 명을 낳았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마음은 자신의 아내인 페네로페에 가 있지만 몸은 칼립소와 하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호머시대의 사람들이 정조의 의무에 관해서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좀 더 관대했다는 말이 아닐까요?    



 상징적 의미의 칼립소와 오디세우스의 관계



  칼립소와 오디세우스의 관계는 상징적인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칼립소와 오디세우스가 사는 주거지인 동굴이 가리키는 메시지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송강호 가족이 사는 반 지하 주거 공간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호머가 여신과 트로이 전사와의 살림집을 동굴로 만든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에르메스가 칼립소의 동굴을 처음 찾아갔을 때 메신저의 신은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다음과 같이 묘사 합니다.   



     동굴은 싱그러운 초록 빛 자작나무, 사시나무, 사이프러스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푸르름을 한껏 머금은 숲은 깃털 달린 새들의

     휴식 공간입니다. 동굴의 입구는 덩굴나무가 감싸고 있으며 그 주변은 잘 익은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크리스털 같이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시냇물 주위로 파란 잔디가 펼쳐져있고 붓꽃과 파슬리 꽃이 만발해 있습니다.

     이곳은 방문객인 신조차 감탄하여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장소입니다.

     ( 89-90, 5 권)      




요약하면 동굴의 입구는 숲과 풀이 우거져있고 그 주변은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는 거죠.  신도 감탄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이곳은 여성의 성기를, 동굴은 자궁을 상징합니다.  이곳에 칼립소와 같이 살고 있는 오디세우스는 여신의 자궁 안에 착상된  어른 오디세우스란 말입니다.  우리가 탄생 전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어머니에 의해 생명이 유지되듯이 오디세우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둘 만이 즐기는 성적관계는 이곳은 먹기 위해 노동이 필요 없고 오로지 육체적인 행복만 가득 찬 곳임을 암시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7년으로 명시 되어 있습니다. 서양에서 7 은 육적 영적의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이제 여신의 자궁에서 나올 시기가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그렇다면 호머는 왜 오디세우스를 마치 아기처럼 취급하여 칼립소의 자궁에서 7년 간 보내게 한 걸 까요?  이곳에 오기 전 오디세우스의 과거와 칼립소의 이름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포로가 되기 전 트로이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10 년을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10 년 간 늘 긴장하면서 하루하루를 적과 싸우며 지냈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는 그러한 생활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냉혈동물처럼 잔인해졌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부하 전사 아니면 싸늘한 주검이 된 병사들을 보는 일은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을 겁니다.  오디세우스가 살아온 피비린내가 가득한 전쟁터에서 10 년의 삶은 어찌 보면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야생의 삶 그 자체였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인간다움을 없애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이 끝난 후 약육강식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야생의 삶에서 이제 다시 문명의 세계로 재진입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겁니다.  즉  서로를 존중하고 살아가는 인간된 모습으로 재탄생을 해야 하는 거죠.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사실 이 과정의 상징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일종의 인간 재교육 코스인 셈입니다. 전쟁터에서 보낸 시간이 길수록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시간 또한 길게 마련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칼립소의 섬은 중 범죄자들이 교도소에서 장기간 복역 후 사회로 복귀하기 전 적응을 도와주는 일종의 중간 처우의 집 혹은 소망의 집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트로이 전사 오디세우스의 사회복귀 과정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서 겪는 일은 바로 재탄생 첫 번째 단계이며 그 시작은 바로 과거의 기억 즉 전쟁의 기억을 지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신의 이름이 칼립소입니다. 개기일식이란 뜻의 이클립스가 바로 칼립소에서 유래된 영어 단어입니다. 즉 이클립스는 해를 가리듯이 중요한 사실을 퇴색시키거나 덜 중요하게 만든다는 뜻의 동사로도 쓰입니다.  

스티븐 킹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1995년에 제작된『돌로레스 클레이본』이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돌로레스가 딸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알콜 중독 남편을 살해하기 위해 폐우물로 유인해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날 어둠을 이용하여 남편을 오래된 우물에 빠뜨려 죽게 만듭니다. 우물은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이며 결국 여성의 성기를 탐닉한자 여성의 성기에 갇혀 죽는다는 이야기겠지요. 그 후 새사람으로 재탄생하라는 메시지가 느껴지는데 호머의 칼립소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은 듯 합니다. 칼립소가 지배하는 섬은 바로 오디세우스의 기억을 지우는 혹은 퇴색시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신은 트로이 전사를 욕심내어 전쟁의 기억 뿐만 아니라 그의 고향에 있는 가정에 대한 기억마저도 지우려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요즈음 관점으로 보면 오디세우스의 7년은 그의 정신에 각인된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우는 일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명령으로 월남이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다 귀국한 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참전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았나요? 전쟁 이전의 자기를 찾는 과정에서 실패한 케이스들이며 그만큼 전쟁 후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디세우스의 다음 행선지는 위에서 잠간 언급한 파이아키아 섬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는 오는 도중 포세이돈이 보낸 풍랑을 만났고 그의 배는 산산이 부서졌고 그는 죽음 힘을 다해 헤엄쳐 강 어귀까지 도달했고 이내 잠이 듭니다.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그가 강가에 도착했을 때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의 상태입니다. 노끈으로 허리를 묶는 헐렁한 옷을 입었으니 풍랑을 만나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면서 옷이고 뭐고 다 사라졌을 겁니다. 어른 오디시우스의 나체는 칼립소의 자궁에서 막 나온 어른 아기의 모습입니다. 재탄생의 순간이란 말입니다. 서양 최초의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파이아키아 사람들이 사는 섬에서 오디세우스가 겪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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