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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r 18. 2022

5.  노시카 공주  


노시카 공주를 만난 오디세우스  


   강가의 숲 사이에서 잠이 들었던 오디세우스는 여자들이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소리에 놀라 깹니다.  그들은 파이아키아 왕의 딸인 노시카 공주와 그녀의 하녀들이었습니다. 공주는 전날 밤 꿈에 나타난 아테네가 일러준대로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하녀들과 함께 강으로 빨래 겸 놀겸 나온 것이죠. 아테네는 오디세우스를 도울 목적으로 공주의 꿈에 나타나 그녀를 강가로 보낸겁니다. 그녀는 14 세. 파이아키아의 모든 청년들이 결혼하고픈 여자 일순위로 여신급 미모를 자랑합니다. 오디세우스는 강가에서 공을 갖고 놀고 있는 여자들을 보고 놀랍니다.  여기가 어디인가?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혹시 무자비한 야만인들이 아닌가 아니면 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인가? 여자아이들이 지르는 날카로운 소리는 또 무언가? 산 꼭대기 혹은 강가나 푸른 들녘에 사는 요정들인가? 아니면 내가 말을 걸을 수 있는 인간들인가? 내가 가서 직접 내 눈으로 확인을 해보아야겠어. 전쟁 후 바다위에서 이리저리 떠돌다 칼립소에게 구조되어 그녀의 섬에서만 7 년을 보낸 오디세우스가 처음 접하는 사람들인 탓으로 그는 상당히 신중했습니다. 그는 나뭇잎으로 가려할 부분을 가리고 여성들에게 다가 갑니다. 이에 다른 여자들은 다 놀라 도망가는데 아테네의 도움으로 대담해진 노시카 공주만 자신이 서있던 곳을 지킵니다. 오디세우스는 그녀의 무릎을 부여잡고 도움을 요청해볼지  아니면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옷을 부탁하고 도시로 가는 길을 물어볼지 망설입니다. 그러다가 낯선 남자가 여성의 무릎을 두 손으로 잡는 다는 것은 결례라고 생각하여 거리를 유지한 채 부탁을 하기로 맘 먹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정중하게 부탁을 합니다.    



     아가씨여, 당신의 자비에 나를 맡깁니다.  헌데 당신은 여신인가요 아니면

     사람인가요? 하늘에 사는 여신이라면 무적의 제우스 딸인 아르테미스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연상시키네요. 그러나 당신이 땅에 사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면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행운아 이십니다. 그들은 당신이

     춤을 추는 것을 볼 때 마다 그들의 가슴은 기쁨으로 벅찰겁니다. 그러나

     결혼선물을 준비하고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는 이가 가장 행복하겠지요.  

     남자나 여자나 당신같이 그렇게 완벽한 모습은 본적이 없어요. ... 당신은

     내가 풍랑을 만나 바다 위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만난 첫 번째 사람입니다.

     도시로 가는 길을 알려주시고 제 몸을 덮을 천이라도 있으면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은 당신의 소원을 들어 주실거예요. 신들은 당신에게

     남편과 집을 선물할 겁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하모니를 허락할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 둘이 남편과 아내로 서로 눈을 마주보며 사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경탄할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 106-7, 6 권)       



노시카에게 도움을 청하는 오디세우스


노시카는 오디세우스의 정중한 태도와 진정성 있는 부탁에 맘이 끌립니다. 그녀는 당신이 온 이곳은 파이아키아라는 나라이고 자신은 이 나라 왕인 알시누스의 딸이라고 소개한 후 신이 우리를 너무 좋아해서 어떤 적도 우리 땅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니들이 보는 이분은  배가 자초되어 우리나라로 온 불행한 방랑자이셔.

     지금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잖아. 모든 이방인들과 거지들은 제우스의

     보호를 받지. 베푸는 일은 우리에게는 하찮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귀중한 법이야.

     애들아, 움직여. 손님에게 음식과 물을 대접하고 바람을 피해 지냈던 강가에서

     목욕을 시켜드려야지. ( 107, 6 권)      




이렇게 말하며 아버지가 사는 궁전으로 가는 길을 상세히 알려줍니다. 왕과 왕비를 먼저 알현하고 왕비의 무릎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부탁하면 당신은 곧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덧붙입니다.  이 말에 고무된 오디세우스는 아테네에게 파이아키아 인들이 자기를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아주도록 기도를 올립니다.        



오디세우스의 인간사회 복귀 프로젝트 2 단계



   칼립소 에피소드가 오디세우스의 인간 사회 복귀 프로젝트의 제 1 단계이라면 노시카 아버지가 다스리는 파이아키아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제 2 단계에 해당됩니다. 전사의 문명사회 재진입 과정을 보면 처음은 자연과의 싸움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내던 칼립소의 섬에서 거칠고 위험한 바다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다위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사투를 벌입니다. 이제 그의 적은  트로이 전사에서 자연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는 게 전쟁이란 말입니다. 다른 점은 전쟁터에서는 전술과 전략이 필요한 팀플레이로 싸우지만  홀로 남은 바다위에서는 자신의 판단력과 불굴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살아남는 비결은 자신이 놓여있는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배에서 떨어져 나온 나무 조각을 잡고 바다위에서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오디세우스는 끊임없이 스스로 물어보고 답하며 어떻게 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는 결국 강의 신의 도움을 받아 강가에 안착하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생존을 위한 질문은 계속됩니다.  바위 투성이인 해변가로 갈까? 강에서 쉴까? 아니면 숲속에 있을까? 고대사회에서 애원시 하는 관습인 엎드려 노시카의 무릎을 잡는 게 좋을지 아니면 멀리서 말하는 게 좋을지. 오디세우스는 전사로서 공격적이며 결단력이 있지만 이렇게 주도면밀하고 성급하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살아남고 인간사회에서 잘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이자 태도입니다. 『일리아드』가 주로 경쟁, 공격, 전투, 영광  같은 보이는 세계를 다루고 있다면 『오딧세이』는 외로움, 혼돈, 절망 등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노시카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아타카의 왕이 14 살 짜리 공주에게 처음 건네는 말은 우리가 배울 점이 많습니다. 요즈음 간단한 말도 하기 귀찮아서 이모티콘으로 대화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대화는 적을수록 뇌는 퇴보 합니다. 위에 인용한 대화를 다시 읽어보면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먼저 칭찬하고 그 다음 자신의 처지를 진솔하게 밝힌 후 부탁을 정중히 하는 것이죠.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우리 학생들이  이모티콘으로 대화하는 데 익숙해져있고 이는 점점 긴 대화를 꺼리는 경향으로 귀결되고 있는 듯합니다. 청소년들은 점점 참을성도 부족해지고 직장이나 군대에서  아주 사소한 일로  퇴사를 하거나 사고를 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대화법에 대한 훈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람사이의 갈등의 기본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이고 이는 제일 먼저 언사에서 표출됩니다. 오디세우스의 대화법은 그가 남을 정중하게 대접하는 일이 결국 자신이 같은 식으로 정중하게 대접받는 일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생면부지의 남자이지만 그의 말을 듣자 노시카는 그의 매너에 매료되고 맙니다. 그리곤 하녀들에게 그를 극진히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환대의 법칙이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이는 오디세우스가 도착한 이곳이 문명국임을 보여줍니다. 오디세우스가 그의 고향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이곳은 서양최초의 유토피아로  현명한 왕이 다스리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완벽한 형태의 사회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즉 7 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겠지만 이를 읽을 때는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호머가 바라보는 문명국의 조건입니다. 어떤 관점으로 문명국과 야만국을 구별하는 지를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두 번째는 시인 데모도쿠스 ( 호머의  카메오 역할) 의 이야기의 숨은 뜻입니다. 세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두 번째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이야기와 세 번째  트로이 목마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셔서 읽어 보세요. 이 이야기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 삽입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호머의 메시지와 관계가 있는지 말이죠. 마지막으로 파이아키아 왕과 오디세우스와의 관계입니다. 이 둘은 단지 호스트와 게스트의 관계일까요 아니며 그 이상일까요? 그 이상이라면 어떤 관계일까요?  책을 읽는다는 건 내용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생각해보고 답하는 과정입니다. 영화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결국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대답이 맞거나 틀린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답을 찾아 사고를 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제가 제시하는 의견은 문학을 평생 공부한 학생으로서 일종의 교육받은 추측(educated guess)일 뿐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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