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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r 25. 2022

1.『오딧세이』 : 들어가는 말

평화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전쟁 이야기


   우리의 두 번째 여행지는  『일리아드』의 후속편인  『오딧세이』입니다. 『오딧세이』의 뜻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란 뜻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이름은 '고통의 아들' (son of pain)을 의미합니다. 트로이  전쟁터에서 10 년, 집으로 돌아오는데 10 년이 걸렸으니  거의 20 년간을 고통속에서 산 사람의 이름답습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후 10 년간에 걸친 고향으로의 귀환을 노래한 에픽입니다.


   2018 년 영국의 BBC 방송국에서 전 세계 전문가들을 상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내러티브를 선정하는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오딧세이』대상 리스트에서 당당히 정상을 차지한 서사시이며 이 작품이 지닌 불멸의 영향력은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딧세이는 이제 모험여행을 의미하는 명사이자 방랑 또는 방황의 대명사입니다. 장기간 집을 찾는 모험 가득한 여정 속의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정신적 방황을 거듭하는 현대인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바로 조이스가 1922년에 발표한 명작『율리시즈』의 내용이죠.


   호메로스의 서사시의 시그니쳐 마크인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은  1968년에 스탠리 큐뷰릭 감독의 공상과학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로 팝 컬쳐에 데뷔합니다. 이후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1982 년  영화 『람보』로 재 탄생합니다.  주인공은 월남전에 참전했다 귀국했지만 사회의 냉대와 부적응으로 인해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다 결국 폭력적인 전사로 되돌아갑니다. 1993년에 나온 영화 『폴링 다운』의 주인공 마이클 더그러스 역시 오디세우스의 유전인자(DNA)가 흐릅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그는 어느 더운 여름날 이혼한 아내의 집을 방문하려 합니다. 전 처가 양육하고 있는 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함이었죠. 그러나 그날 로스엔젤레스의 모든 기운이 그의 방문을 방해 합니다. 도시를 이곳저곳 배회하는 우리의 주인공, 마이클 더글러스. 아내에게 이혼 당했지만 딸을 만나고자 전처의 집에 가고자 혼신의 힘을 쓰지만 여기저기에서 방해 세력을 만나 번번이 좌절 하며 분노하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 아버지의 자화상이며 고난과 역경의 삶을 영위하는 20 세기 판 오디세우스이기도 합니다. 21세기에 들어서 『오딧세이』는 『니모를 찾아서』로 재포장됩니다. 아이들을 겨냥한 이 만화 영화는 아들 니모를  찾아서 미지의 세계인 바다로 떠나는 아빠 말린의 험란한 여정을 그립니다. 말린은 지나치게 간섭하며 꼰대같은 스타일로 아이를 키우지요.  아이는 이에 반항하여 가출합니다. 아빠는 이를 후회하고 아들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며 다니는 말린의 모습은 영락없는 21세기 오디세우스입니다.


   방황하는 건 사람 뿐만이 아닙니다. 골프 경기에서 공도 마찬가지입니다. 골프공 주인의 실력에 따라 공은 때론 엄청난 여정을 거쳐 마지막 목적지인 그린 위의 홀 컵으로 귀환합니다. 이 마지막 귀환을 도와주는 장비가 바로 퍼터이죠. 미국 골프 용품회사가 자사의 골프 퍼터의 이름을 오딧세이라고 지었는데 센스있는 작명이 아닌가 합니다. 바다 위를 떠도는 거친 남성의 이미지에 끌렸는지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는 오딧세이를  남성 스킨로션의 상표로 사용합니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인 혼다에서는 자사의 미니밴의 이름을 오딧세이라고 명명했는데 오랫동안 문제없이 잘 돌아다닌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느껴집니다.  스타벅스의 로고에 그려진 사이렌도 『오딧세이』에 나오는 여신입니다. 요정 사이렌은 목소리로 유혹하지만 커피회사 로고인 사이렌의 무기는 커피향기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아직도 호메로스의 영향력 하에 살고 있습니다.      

   


  호메로스가 쓴 두 편의 서사시를 이야기할 때 아킬레스 보다는『오딧세이』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에 대해 더 애정을 쏟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차별이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시인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영웅의 모습은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함께 읽고 두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함께 생각해 볼 때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다른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둘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둘 중의 하나만 읽거나 둘의 별개의 작품으로 따로 취급한다면 호메로스가 의도한 더 큰 그림을 놓친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인이 쓴 에픽의 전반부에 해당하는『일리아드』는 전쟁 다큐멘타리로 전쟁터에서 명예를 추구하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이미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후반부에 해당하는『오딧세이』에 초점을 맞추면서 두 작품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오딧세이』는 10 년간의 전쟁 후 트로이 참전용사들의 귀환(Nostos)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지요.  그리워한다는 의미의 향수인 노스텔지아(nostalgia)가 바로 이 그리스 단어 노스토스에서 유래했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세상에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평화 시대의 영웅을 다룰 차례란 말이며  주인공이 바로 오디세우스입니다. 아킬레스의 이야기가 인간 삶 중  처음의 반을 상징한다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그 이후의 반을 보여줍니다. 아킬레스는 전쟁놀이를 좋아하고 물 불 안 가리는 아이 같은  청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만 오디세우스로부터는 보다 현명해지고 성숙해진 어른의 모습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여러모로 아킬레스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입니다. 일리아드의 한 에피소드에 그 두 사람의 상반된 성격이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킬레스의 절친 패트로클로스가 적장 헥터의 손에 죽자 분노한 아킬레스는 마침내 아가멤논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전쟁터로 지체 없이 나가고자 합니다. 일분일초라도 빠르게 헥터를 죽여 원수를 갚고자하는 맘 뿐이었습니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그를 말립니다. 당신은 용감하고 또한 싸우고자 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나 먼저 식사부터 해야 한다는 거였죠.  부하들을 충분히 먹이고 그리고 당신도 배불리 먹은 다음 싸우라는 조언을 해 줍니다. 전투는 금방 끝나는 게 아니며 전투력은 영양분에 달려있다고 강조합니다.  


   아킬레스가 용감하지만  과도한 자만심과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 만보고 달리는  단세포적인 인물이라면 오디세우스는 반대로 이성적이며 사리 판단을 정확하게 하며 지혜와 재치를 겸비한 리더입니다. 또한 머리도 잘 쓰고 상황에 따라서는 거짓말과 속임수에도 능한 복잡한 성격의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가 수립한 트로이 목마작전은 결사항전의 결의로 10 년간 끈질기게 버티며 싸워 온 트로이를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가 함락되자 지체 없이 부하들과 함께 전리품을 챙겨 고향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쟁터에서 결국 파리스의 창에 발목을 찔려 그의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스스로 분노를 주체 못해 분노의 희생자가 된 아이같은 아킬레스. 실리를 챙긴 어른스러운 지혜의 오디세우스. 호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마침내 세상에 평화가 왔지만 그래도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 평화는 또 다른 형태의 칼날을 숨기고 있습니다. 전쟁의 적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분명한 적이지만 평화시대의 적은 그렇지 않습니다. 매력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의 여성도 언제 감추고 있던 발톱을 꺼낼지 모르며 살을 맞대고 애까지 낳고 살았던 아내도 남편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적인지 모릅니다. 사는 거 자체가 전쟁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동물의 왕국에 혼을 빼앗기는 이유입니다. 야생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먹고 먹히는 잔인하고 치열한 싸움은 실상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트로이에서 그리스까지 바다 길로 약 540 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아무리 배를 타고 움직여도 넉넉잡아 보름 이면 올 수 있는 길이지만 집으로 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주의 온갖 세력들이 트로이 영웅의  귀환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탄 배는 고향에 가지 못하고 에게해와 지중해 주변을 빙빙 돕니다. 거의 십년간을 바다 위를 떠 돌며 이 섬 저 섬에 머물며 돌아 다녔습니다. 평화 시대이지만 적은 여전히 존재함을 상징한다는 말입니다.  

   


   트로이 영웅이  귀환하는 지도를 보면 그 움직임이 원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오딧세이』의 플롯은 일리아드와 다르게 서클 형태입니다.『일리아드』의 선이 남자라면『오딧세이』의 원은 여자를 상징하지요. 남자들은 앞 뒤만 보지만 여자들은 앞뒤도 보고 주변도 잘 봅니다. 둥굴둥굴한 원은 영락없는 여자의 모양새입니다.  남자들은 한 번에 하나씩만 하지만 여자들은 한 번에 이것 저것 다 합니다. 물론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오딧세이』에는 여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전쟁은 남성들의 이야기 이지만 평화는 여자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서사시에는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오디세우스 아들인  텔레마쿠스를 도와주는 멘토 역할을 하는 여신, 남자를 유혹하는 여신,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여신, 결혼을 꿈꾸는 어린 여자, 남편을 배반한 부인, 그리고 끝까지 남편을 기다리는 정숙한 부인 등.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여신, 여자들이 다 나옵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평화의 시대에 남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슈도 다루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성장이야기이며 연예컨설팅 책이자 부부 탐구서이기도 합니다.   

     


   호머는 오디세우스를 꼬이고 굴곡 (Twist and turns) 많은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칭합니다.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오디세우스는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도 지나친 호기심과 명성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어디에 있던 주어진 환경을 최대로 이용하며 결국 시련을 극복해내는 용맹과 지성의 영웅입니다.  다음부터 본격적으로『오딧세이』를 이야기하고자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야생의 전사에서 문명세계의 영웅으로 재탄생하는 그 삶의 궤적을 따라 가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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