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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Oct 07. 2022

『데카메론』 : 중세 시대의 야설 살롱 (1)

   1346년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전염병이 발생합니다. 들쥐가 옮기는 페스트균에 의한 펜데믹 바로 흑사병입니다. 1346년 크리미아 반도에서 시작된  흑사병은 3년 만에 유럽의 각 도시를 초토화시키는데 보카치오가 살던 피렌체도 이 역병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피렌체 인구의 5/3 정도가 병으로 희생되었다고 하니 도시 탄생 이래 가장 비참하고 어두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시기 아이러니하게도  이태리 역사상 가장 밝고 유쾌한  산문 문학이 탄생합니다. 1348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353년에 완성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입니다. 단테가 죽은 지 32년 된 시점으로『데카메론』은『신곡』과 함께 유럽의 르네상스를 연 작품입니다.

   


   르네상스는 재탄생이란 뜻을 가진 프랑스어입니다. 여기에서 재탄생은 사람의 재탄생이 아니고 시대의 재탄생입니다. 중세시대는 신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탄생이후 인간 생활과 사고의 중심은 서서히 하나님이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찬양했고 미술가들은 성경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연극은 기독교의 교리를 극화하여 무대에 올렸습니다. 과학적 사고는 종교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지구도 우주도 중심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14세기를 기점으로 신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인간이 다시 무대의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중심사상이었던 인본주의의 재탄생입니다. 또한 이와 발맞추어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화도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수많은 인물들의 동상들과 그림들 또한 이 르네상스시대에 탄생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주역인 시대 르네상스의 시대가 시작된 겁니다.  

  

  

  단테는 그 당시 극히 소수의 권력자들과 성직자들의 언어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척하고 그의『신곡』을 보통사람들의 언어로 집필함으로써 르네상스 시대의 물꼬를 텄습니다. 모든 사람과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야 말로 진정한 애민 정신이요 휴머니즘 정신입니다. 단테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지오바니 보카치오도 『데카메론』을 일반 사람들의 언어로 집필하여 자신의 문학적 스승이 개척한 길에 동참합니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당시 피렌체에서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전 문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시도입니다. 과거에는 주인공들은 무조건 왕족, 귀족, 기사 계급이었습니다. 싸워도 왕이 싸우고 사랑을 해도 왕비와 기사가 하고 하나님의 시험을 받아도 왕의 조카가 받습니다. 위기에 처한 나라의 운명, 전쟁 중에 일어난 배반과 복수, 죄와 구원의 문제 등 주제는 스케일이 크고 한결같이 무겁고 심각합니다. 그러나 보카치오의 주인공들은 왕과 공주, 귀족 등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가 매일 만나는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이들의 관심사 또한 일상적인 일들로 남녀의 성과 사랑이 대부분입니다. 이야기는 가벼우나 재미있고 짧지만 여운이 남습니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감성, 행복과 불행, 선과 악 그리고 운명의 피해자 혹은 수혜자가 되는 예측 불가한 삶을 그만의 따뜻한 감성으로 제시하며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인간 정신을 찬양합니다.『데카메론』이 휴머니즘 문학의 백미라고 불리우는 이유입니다.   

  

  『데카메론』을 쓴 이유를 적은 저자의 서문을 읽어보면 인간 특히  약자나 그 당시 여성에 대한 그의 따뜻한 감성을 그대로 느껴집니다.『데카메론』의 서문을 아래에 간략하게 번역하여 옮겨 보았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정신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할

     인간의 자질입니다. 특히 과거에 어려움을 겪다가 다른 사람에게서 위안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더욱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 위로가 필요했고 그 위로의 가치를

     진정으로 느꼈으며 그 위로로 기쁨을 받은 이가 바로 저입니다. . . . 내가 고통을

     받을 때 친구와 나눈 유쾌한 대화 친구들에게 받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위안이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고통은 사라졌지만 내가

     받은 혜택은 영원하니 나의 무거운 짐을 같이 짊어져준 그들의 따뜻한 마음은

     내가 죽을때까지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마음이 모든 덕 중 가장

     고귀한 덕이니 내가 가진 하찮은 능력을 내가 진 빚을 갚는데 사용하고자 합니다.  

     나의 지원이 혹은 나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더 도움이 되고 더

     가치를 발하게 되길 희망합니다.     


     사실 이 도움이 정작 필요한 이들은 남자보다 여자입니다. 여자들은 공포와

     수치심으로 사랑의 불꽃을 그들의 섬세한 가슴속에 가두어 놓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시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런 불은 밖에서 타는 불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부모나 오빠 남편의 욕망, 변덕 그리고 명령의 사슬에 묶여 여자들은

     대부분 작은 방에 갇혀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지내고 있습니다. ... 남자는 사랑하다

     잘못되어도 얼마든지 스스로의 우울감에서 나올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사냥, 낚         시, 도박, 승마, 아니면 비즈니스 등을 통해 마음을 추스르고 고통 속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힘이 약한 여자들에게 도움을 주는데 인색한 죄를

     저지릅니다. 저는 이에 대한 치료법을 제공하고자합니다. 사랑에 빠지거나 아니면

     방안에서 바느질이나 물레를 돌리는 여자분들에게 도움 혹은 안식처 드리고자

     합니다. 제 계획은 100개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겁니다. . .  (3-4)           


『데카메론』속 이야기를 전하는 7명의 여자와 3 명의 남자


피렌체에 창궐 중인 흑사병을 피해 한적한 시골의 대저택으로 피난을 온 열 명(여자 7+ 남자 3)이 하루에 열편의 이야기를 열흘에 걸쳐 나눈 총 100편의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들은 그 당시 유럽에서 구전으로 돌아다니던 손바닥 크기의 작은 스토리들로 보카치오의 펜을 거쳐 수정되고 재창조되어『데카메론』에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보카치오가 정신적으로 힘든 약자들 특히 여성분들에게 힘과 위안이 되고자 했던 『데카메론』의 이야기 세계를 잠간 들렀다 가고자 합니다.


  『데카메론』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사랑입니다. 총 100편의 이야기 중 89편이 남녀 간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사랑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네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할까 합니다. 카테고리 1의 이야기는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에 포커스를 맞춘 음담패설 급 이야기이며 이 숫자가 올라갈수록 더욱 격조가 높아지는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우선 카테고리 1 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수도승, 수녀, 남편, 아내, 처녀, 총각, 과부, 학자, 공주, 하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신분, 직업, 성별, 나이 혹은 결혼의 유무 등은 사회구성원으로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외적 정체성에 불과 합니다. 검은색 수녀복을 입었던 화려한 옷차림을 했던 다 헤진 머슴의 옷을 입었던 이 옷 안에는 모두 원초적인 모습의 인간이 존재하며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섹스입니다. 그리고 육체적 요구를 만족시키려는 이들의 계획은 어떤 방법을 쓰던 한 번도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누구든 일단 섹스파트너로 결정이 되면 낙점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방을 받아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행위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념은 애초부터 없고 오로지 섹스의 즐거움만 부각됩니다. 보카치오의 야설은 성에 관한 도덕과 윤리가 완전히 사라진 섹스의 에덴동산이며 여기에 사는 남자와 여자 모두가 승자이고 모두가 행복합니다.

   

 



  대표적인 보카치오의 섹스담 몇 편을 읽어보겠습니다. 수녀원에 취직한 마세토라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마세토라는 청년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척 위장하여 한 수녀원에 취업합니다. (수녀원은 정상적인 남자가 취직하기 힘들다고 하네요). 월급은 박하지만 여기에는 자신의 평생의 로망을 실현해 줄 8명의 수녀가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수녀들도 청년과 똑 같은 로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세토가 말도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8명의 수녀는 마세토를 유혹합니다. 자신들의 비밀이 지켜진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8 명의 수녀들은 아예 순번까지 정해 놓고 청년과 돌아가면서 침대 승마를 즐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느날 수녀원장이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녀는 마세토를  꾸짖기는커녕 자신도 침대 승마 클럽의 회원이 됩니다. 그러나 수녀원장은 야간 승마를 더 좋아합니다. 이제 마세토는 밤낮으로 말을 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칠대로 지친 어느날 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더 이상 못해먹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마세토 아래에 있던 수녀원장은 깜짝 놀랍니다. 그녀는 이를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서 청년의 말문을 트게 만들었노라고 감사기도를 올립니다. 마세토는 수녀원장에게 자신의 체력을 고려함과 동시에 모든 수녀들을 골고루 만족시킬 스케줄을 요구합니다. 아니면 떠나겠다고 최후통첩을 하니 수녀들은 합의 안을 제시했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 후 그 수녀원에는 아기가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에브리바디 해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번엔 수도승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수도원에서 젊은 수도사가 수도원 근처에서 허브를 따는 처녀를 발견합니다. 그는 처녀를 유혹하여 자신의 육체적인 욕구를 채웁니다. 그날도 여느때와 같이 그 처녀랑 승마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만 선배 수도승에게 들키고 맙니다. 그래서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꾀를 냅니다. 그 처녀를 선배 수도승에게 넘겨주고 그 장면을 문틈을 통해서 지켜보기로 한 겁니다. 여자를 넘겨받은 수도승. 그러나 그는 배가 너무 나와 남자위 여자아래의 선교자 자세가 불가능해서 여자가 위에서 주도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영어로 정상체위를 선교자 자세(missionary position)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한 유일한 자세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물의 행위를 연상시키는 다른 자세는 권장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일을 마치고 나온 선배 수도승. 그는 어쨌든 후배를 꾸짖습니다. 그러나 후배는 엉뚱하게도 제 테크닉이 부족한 탓에 여자를 만족시켜주지 못 했노라고 동문서답식 답변을 합니다. 젊은 수도승은 수도원이 여자들도 지원해주는 기관인지 몰랐다고 말하며 다음에는 더 잘 해서 선배님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노라고 다짐까지 합니다. 두 수도승의 웃음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섹스 이야기에 처녀 총각이 빠질 수 없습니다.  한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카타리나라는 이름의 이쁜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잘생긴 리카르도라는 청년이 집에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처녀 총각은 서로 눈을 몇 번 마주쳤고 이내 사랑에 빠졌습니다. 둘은 처음에 점잖게 탐색전을 벌이다가 서로 원하는 게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둘이만 같이 있을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집에 들락거리니 딸에 대한 부모의 감시는 한층 강화 되었습니다. 리카르도는 정원이 보이는 발코니에서 잘 수 있다면 밤에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제안합니다. 딸은 부모에게 방이 더워 밤에 잠을 못자겠다고 불평을 시작합니다. 카타리나는 발코니에 침대를 놓고 자면 시원하고 또한 나이팅게일 새의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더 잘 잘 수 있다고 하며 아빠를 졸라댑니다. 문학적으로 수면용 소리 ASMR(자율감각쾌락반응)이 언급된 최초의 케이스입니다. 발코니에 침대가 놓여지고 이를 본 리카르도는 신이 났습니다. 어서 밤이 오기만을 기다린 두 남녀. 둘 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로 밤새 여섯 번이나 몸을 섞었다고 합니다. 격한 운동 후 그 둘은 잠이 들었습니다. 둘 다 발가벗은 상태였고 여자의 손은 남자의 물건을 잡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발코니에 간 아빠가 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약간 모자란 그는 웃으며 아내에게 이렇게 농담합니다. “여보, 우리 딸이 손으로 새를 잡았어.”  새는 이태리어로 남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속어입니다. 미국은 남성물건을 칵(cock)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 역시 새(수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새머리가 물이 졸졸 나오게도 하고 멈출 수도 있는 수도꼭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리카르도와 카타리나는 부모의 허락 하에 그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식이 끝나자마자 두 번을 더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결혼을 아홉 번한 공주의 이야기입니다. 바빌론에 왕이 이었는데 그에게는 자신의 딸 중 알티엘이라는 이름의 가장 이쁜 딸이 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왕에게 딸을 시집을 보내기로 하고 그녀를 배에 태워 신랑의 나라로 보냅니다. 그러나 그녀가 탄 배는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신부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그 후 그녀는 4년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8명이나 되는 남자의 침대를 거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아버지 나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아버지는 4년 전 사위로 정한 왕에게 아직도 내 딸을 신부로 맞이할 의사가 있다면 딸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했고 신부를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모셔왔습니다. 그래서 8명의 남자하고 수도 없이 잠자리를 같이 한 그녀는 처녀인 척 왕의 침소에 들어가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여왕으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습니다.  


“키스 받은 입술은 언제나 그 신선함을 잃지 않고 달처럼 계속 새로워진다.”       


여성은 사랑을 받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열 남자를 마다하겠습니까? 보카치오가 이야기하는 음담패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성 그 자체입니다. 성은 어떠한 제약을 가하고 규제를 해도 소용이 없으며 종교적인 의미로 금욕을 강요하는 행위 역시 위선일 뿐입니다. 섹스는 거절하기 힘든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로 삶의 원동력입니다. 작가는 섹스에 관한한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내리지 않습니다.

   

   이번에 읽은 보카치오의 음담패설은 그가 이야기하려는 사랑의 큰 그림 중 극히 일부입니다. 야설 몇 편 만 보고 『데카메론』을 끝낸다면 작가가 가꾼 커다란 사랑의 정원에 심어진 꽃 몇 송이 정도를 본 것과 다름없습니다. 다음은 『데카메론』의 사랑이야기 중 좀 더 격조가 있는 카테고리 2, 3, 4 급 이야기를 읽을 계획입니다. 이를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보카치오가 추구하는 사랑의 의미를 음미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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