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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Jun 17. 2022

오비드의「변형」: 로마시대 강간 백서

    동물의 왕국을 보면 늘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자, 호랑이, 치타, 독수리 같은 맹수들이 사슴, 얼룩말, 영양이나 토끼 같은 먹잇감을 쫓는 장면입니다. 먹이사슬 상단에 위치한 포식자들은 일단 타깃이 설정되면 전력을 다해 목표물을 쫓아갑니다. 죽기 살기로 뒤 따라 가는데 자신과 가족의 생존이 걸린 탓입니다. 이러한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는 인간사회에서도 존재합니다. 바로 스토커와 강간범 그리고 그들의 피해자들인 여성의 관계입니다. 동물은 상황에 따라 포기도  하지만 이 정신병자들은 대상을 정하면 절대로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동물처럼 살기위해 쫓는 게 아니고 자신들의 병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따라다닙니다. 이런 성범죄자들과 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문학작품이 있습니다. 버질, 호레이스와 함께 로마의 삼대 시인으로 추앙받는 오비드 (BC 43-AD 17)의 서사시『메타모포시스』즉『변형』입니다.  총 15 권으로 구성된 이 로마시대의 서사시에는 매권마다 성범죄에 관한 다양한 스토리가 등장합니다.『변형』의 성범죄자들은 주피터, 아폴로, 넵툰, 팬, 헬리오스 같은 남자 신들이나 왕의 지위에 있는 남자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은 일단 먹잇감을 포착하면 빨간색을 보고 흥분하여 달려드는 황소처럼 여성을 향해 돌진합니다. 이때 남자 신들은 실제로 뱀, 독수리, 백조 등 다양한 동물의 모습으로 변한 채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기도 합니다. 동물과 여성의 섹스는 여성신체에게 행해지는 가학적인 폭력의 절정입니다. 그러나 오비드의 『변형』은 N 번방이나 박사방의 성 착취물을 이용하는 가해자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가해자의 시선이 아닌 당하는 여성의 아픔과 고통을 전달하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접근합니다. 성폭행 가해자의 동물적인 면을 강조하며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피해를 당한 여성에게 공통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결같이 이들의 신체가 변형된다는 겁니다. 오늘은 이 여성 신체 변형이야기를 다룬 로마시대의 강간백서『변형』을 만나봅니다.    

   

    버질(BC 70–19)의『아에네이드』는 로마의 건국을 찬양하며 로마시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의도로 탄생된 서사시입니다. 시인은 주인공 아니아스를 통해 개인의 감정, 사랑보다 더 고귀한 가치는 리더로서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죠. 그는 이러한 개인의 희생이 결국 로마의 안정과 번영의 초석을 세웠음을 시사합니다. 내전에 승리한 후 집권한 오거스터스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작가 자신도 새로운 체제의 안정을 원했을 것입니다. 실패하면 로마는 다시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고 자신의 삶을 비롯한 모든 로마인들의 삶이 위태로워지는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버질은 로마는 위대했고 위대하며 영원히 위대할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버질보다 27년 늦게 태어난 오비드 (BC 43-AD 17)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거스터스 체제 출범 후 로마는 안정을 되찾았으며 평화도 정착되고 나름대로 물질적 풍요와 번영으로 활기가 넘치던 때였습니다. 오비드는 이런 풍요로운 로마의 모습 뒤에 혼돈과 무질서의 그림자가 숨어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버질의 주제가 바위같이 튼튼한 안정이었다면 오비드의 주제는 액체나 기체같이 형체가 끊임없이 바뀌는 혼돈과 변화입니다. 시인은 인간은 혼돈에서 태어나고 혼돈 속에서 살다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의 매그넘 오퍼스이자 마스터피스인『변형』은 신과 인간의 성범죄가 세상의 혼돈과 무질서의 산물임을 시사합니다.   

  

   『변형』은 15 권에 총 250 여편의 그리스 로마신화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서사시의 기본주제인 변형을 염두에 두고 시인이 기존 신화를 부분적으로 개정 또는 수정하여 자신 만의 스타일로 다시 쓴 결과물입니다. 서사시는 변형에 대한 노래로 시작합니다.   


       형태가 또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에 대해 노래하고자 하오니    

       모든 것을 변화시키시는 천상의 신이이시여

       도와주소서 나의 시에서 세상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다룰 수 있도록 ( 1권 )    



시인은 이 세상 같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일도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도 변하고 역사도 변하고 인간도 변합니다. 혼돈에서 창조된 세상은 세월이 흐르면서 금, 은, 동, 철의 시대로 변했고 인간 역시 나무, 꽃, 뱀, 암소, 곰, 새, 바위 등 온갖 형태의 자연으로 변합니다. 일면 우리나라의「전설따라 삼천리」나 「전설의 고향」을 생각나게 합니다. 연꽃으로 변한 심청,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아내, 까마귀로 변한 못된 시어머니, 구렁이가 된 스님 같은 우리나라의 전설은 선인들의 지혜와 슬기, 미풍양속, 경로사상, 충효사상을 재미있게 전파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합니다. 그러나 『메타모포시스』의 변형담은 인간의 신체가 다른 형태로 변한다는 틀만 같을 뿐 이야기의 출발점과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로마시대의 변형담은 남녀 간의 사랑 혹은 미움과 시기, 질투, 맹목적 사랑과 소유욕으로 인해 야기되는 인간 형태의 변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인간 형태의 변화 뒤에는 사랑에 대한 인간의 순수한 감정 뿐만 아니라 삐뚤어진 욕정, 지나친 열정, 병적인 심리도 자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순수한, 애절한 그리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도 있지만 남녀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되어 성폭행을 당한 후 비참한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도 허다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이든지 결론은 주인공들의 신체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이중에서 남녀가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자합니다. 이 경우 주로 피해자인 여성의 몸이 다양한 형태로 변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여성신체의 변형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려하는 지를 살펴보고자합니다.    

   

     스토커를 만난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1 권에 나오는 아폴로와 다프네의 잘못된 만남으로 벌어지는 가슴 아픈 스토리입니다. 어느날 아폴로는 아름다운 요정 다프네를 보자 사랑에 빠집니다. 옛날 사람들은 쭉쭉 빵빵한 모델급 미인을 요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그는 밤낮으로 다프네의 꽁무니만 쫓아다녔습니다. 스토커란 말입니다. 강의 신인 페네우스의 딸인 다프네는 처녀로 남기로 맹세하여 어떤 남자의 구애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폴로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폴로는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다프네는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일 뿐입니다. 다프네는 늘 자신의 동선에 나타나는 아폴로를 두려워했지만 요즘같이 접근금지 제도도 없었던 그 시절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타난 아폴로. 그의 끈질긴 스토킹을 피해 달아나던 다프네는 다가오는 위험을 직감하고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녀의 뒤를 쫓던 아폴로의 손이 그녀의 몸에 닿는 그 순간 강의 신인 아버지는 딸을 위험에서 구하고자 그녀를 월계수나무로 변형시킵니다. 성추행 성공 직전에 일이 틀어지는데  그녀의 머리는 나뭇잎, 그녀의 손은 가지 그리고 그녀의 다리는 뿌리로 변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아폴로는 월계수 나무로 변한 다프네를 껴안습니다. 그러나 다프네는 나무가 되어서도 온몸으로 저항을 합니다. 다프네는 이렇게 아폴로의 구애를 피해 나무로 변하지만 아폴로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폴로가 그녀를 끝까지 사랑했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저는 그녀의 몸을 향한 병적인 집착으로 봅니다. 신은 월계수를 자신의 머리위에 쓰고 그 나무를 승리의 상징으로 만들어 그녀에게 영원한 영광을 선사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분명합니다. 여자로서 자신의 몸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다른 사물로 변하는 길 뿐이라는 겁니다. 여자로 남아있어서는 결코 자신의 처녀성을 스스로 지킬 수 없다는 슬픈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아폴로와 다프네


   운 없이 포식자의 먹이로 전락한 여성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 권 마지막에 삽입된 주피터와 아이오 스토리입니다. 주피터는 올림포스 최고의 신으로 여성 포식자중 최상단에 위치한 포식자입니다. 그가 누리는 신이란 지위는 자신의 잘못된 욕정을 만족시키는 도구에 불과 합니다. 주피터는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한 건을 기대하며 인간사회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레이다망에 한 명의 피식자가 걸려듭니다. 숲속 길을 산책 중인 요정 아이오입니다. 주피터는 아이오에게 숲이 위험하니 내가 안전하게 숲을 통과하도록 같이 동행하겠다고 제안합니다. 괴한이 밤길을 홀로 걷고 있는 여성에게 접근하는 장면을 연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피터의 의도를 알아챈 아이오는 도망을 갑니다. 주피터 앞에서는 뛰어보았자 벼룩입니다. 신은 그녀를 멈추게 하고는 구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저항하는 아이오의 몸을 유린합니다. 구름은 하늘에 있는 자신의 아내인 주노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보지 못하게 하려 부른 것입니다. 주노는 하늘에서 남편이 구름아래서 무언가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직감하고 구름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가해자 주피터는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을 감추기 위해 아이오를 하얀 암소로 변형시킵니다. 의심을 지우지 못한 주노는 남편에게 암소를 자신에게 선물로 줄 것을 요구합니다. 주피터는 꼼짝 못하고 암소를 아내에게 선물로 줍니다. 주노는 재발방지 목적으로 눈이 백 개나 달린 아거스로 하여금 암소를 감시하게 만듭니다. 암소로 변한 아이오는 발로 땅바닥에 글씨를 써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이오를 불쌍히 여긴 주피터는 머큐리를 시켜 아거스를 죽이고 아이오를 구하도록 시킵니다. 주피터는 주노에게 더 이상 여자문제로 맘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을 하곤 아이오를 인간으로 다시 변형시킵니다. 여성은 몸을 빼앗기는 성범죄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신체가 암소로 변형되는 2 차 피해까지 당한 겁니다. 변형은 가해자가 선택한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게다가 몸이 암소로 변한 아이오는 포로 아닌 포로가 되어 아거스의 감시 하에 살아가야 하는 고통을 겪습니다. 처녀성을 빼앗긴 여성을 대하는 로마사회의 태도를 말해줍니다.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병자호란때 청나라로 끌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환향녀들도 아이오와 같은 수모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피터와 아이오



 성폭행 피해자가 겪는 아픔과 고통의 정도는 점점 강해집니다. 2 권 초반에 등장하는 주피터와 칼리스토를 보면 피해자는 주피터에게 절개를 빼앗긴 후 주피터의 아내 주노의 분풀이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주피터의 이번 표적은 다이아나의 추종자인 요정 칼리스토입니다. 어느날 주피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카디아 숲을 관찰하고 있던 중 칼리스토를 발견하게 됩니다. 보는 순간 그녀에 대한 욕정 생겼습니다. 그는 자신을 다이애나로 변신하곤 저항하는 칼리스토의 몸을 취합니다. 9개월이 지나자 그녀는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애나에게 들키지 않으려 배를 손으로 가려보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다이애나를 따르는 요정의 무리에서 쫓겨납니다. 처녀성을 잃었다는 이유였습니다. 남편의 간통을 목격한 주노는 자신의 분노를 피해자인 칼리스토에게 폭발시킵니다. 그녀는 남편의 애를 임신한 요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내 남편의 아이를 낳음으로써

       나의 배우자인 주피터의 명예를 더렵혔다.  

       망할 것, 너는 너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너와 내 남편에게 기쁨을 준 너의 몸의 형태를

       빼앗을 것이다.  


       주노는 칼리스토의 머래 채를 잡고 그녀를 얼굴을 바닥에 던졌다.

       요정은 두 팔을 벌려 간청을 했다. 그러나 그때 그녀의 양팔에서

       곰의 거친 털이 삐죽 삐죽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두 손은 안으로

       굽어지면서 곰 발바닥으로 변했다.

       한때 주피터가 그렇게 칭찬했던 그녀의 입은

       엄청난 턱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칼리스토의 기도와 눈물 섞인 간청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주노가 말을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었고 위협적이었으며 분노와 위협으로 가득 찼다.

       칼리스토는 비록 곰으로 변했지만 마음만은 전과 똑 같았다.

       그녀는 말을 못할지라도 그렁 그렁 소리를 내며  손을 하늘로 들어

       그녀의 고통을 표현했다. 그러나 주피터는 무관심 했다.  

       숲속에서 홀로 자는 것이

       한때 자신이 살았던 집과 들에서 떠도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이 자신을 바위너머로 쫓긴 기억이 얼마나 많은지.

       또 사냥꾼이 무서워 공포에 떨며 도망간 적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종종 야생 짐승을 보면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린  채  숨어 있었고

       자신이 곰이지만 산 위에 있는 곰을 보면 또 얼마나 떨렸는지.   

       ( 2 권 466-495)



강간당하고 자신의 생활터전에서 쫓겨난 것도 모자라 곰으로 몸이 변했으니 피해자의 억울함과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칼리스토가 곰으로 변한지 어느덧 15년이 지났습니다. 그녀의 아들은 이제 성장하여 사냥꾼이 되었고 어느 날 곰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곰으로 변한 자신의 엄마였습니다. 그는 곰이 자신의 엄마인지 모르고 창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준비를 합니다. 아들은 여차하면 곰을 찔러 죽여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겁니다. 이를 본 주피터는 칼리스토를 불쌍히 여겨 둘을 밤하늘의 별로 만들어 버립니다.  

   성범죄를 당하면 가족도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정조를 잃고 아버지에 의해 목숨까지 잃은 케이스입니다. 4 권에 나오는 루카쏘에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는 루카쏘에를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상대방인 여성이 전혀 원하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그에게는 클라이티라는 이름의 애인이 있었지만 루카쏘에를 본 후 클라이티는 그의 기억에서 금방 지워졌습니다. 헬리오스는 루카쏘에의 엄마로 위장하여 그녀의 방에 들어갑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지키려 있는 힘껏 저항했지만 황소 같은 힘의 남자를 막아내기에 역부족 이였습니다, 이를 알게 된 헬리오스의 옛 애인 클라이티는 질투에 사로잡혀 어쩔 줄을 모르다가 루카쏘에 일을 왕인 그녀의 아버지에게 고자질합니다. 이 사건을 알게 된 루카쏘에 아버지는 딸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노라고 격분합니다. 겁에 질린 딸은 아버지 앞에 엎드려 이렇게 항변합니다.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애원합니다.  그리고 사건에 대해 설명합니다.

       나를 약탈한건 그예요. 내가 그에게 육체적 즐거움을 준 게 아니란 말입니다.

       ( 4 권 238-240)



딸의 눈물어린 호소는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산채로 묻어버립니다. 처녀성을 잃음으로서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를 알아챈 헬리오스가 루카쏘에를 구하려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그녀는 죽고 맙니다. 그는 그녀의 무덤에 향수를 뿌려주었고 그녀는 나무로 변형됩니다. 헬리오스는 비록 가해자지만 그의 양심과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성폭행을 당한 장소 때문에 피해를 보는 여성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바로 메두사 신화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강간에 혐오스럽고 엽기적인 폭력장면이 추가된 섹스 호러물입니다. 메두사는 그리스 신화에서 흉측스럽게 생긴 괴물 고르곤 자매 증 한 명입니다. 그러나 괴물처럼 생긴 여자는 강간당한 후 변형되는 오비드의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여자를 쫓아다닐 남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메두사를 사랑스러운 머릿결을 소유한 아름다운 처녀로 바꾸어 등장시킵니다. 어느날 바다의 신 넵튠은 볼륨있는 글래머인 그녀를 보고 반해 그녀의 몸을 취합니다. 그러나 하필 그 장소가 미네르바의 신전이었습니다. 성스러운 자신의 신전에서 불경스러운 일이 일어난데 격분한 미네르바는 메두사의 사랑스러운 머리털을 우굴거리는 여러 마리의 뱀으로 변형시킵니다. 그리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자는 모두 돌로 변하리라는 저주를 내리지요. 성폭행 피해자에게 2 차 도 모자라 3 차 가해까지 가한 셈입니다.  페르세우스는 이 저주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 자고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칼로 절단 냅니다. 그리곤 메두사의 잘린 머리를 손에 들고 승리를 쟁취합니다. 누구든지 메두사의 얼굴만 보면 돌로 변하니 적을 무찌르는데 이보다 더 좋은 무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 신화의 영웅대접을 받는 페르세우스는 오늘도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시뇨라이 광장에 우뚝서서 메두사의 잘린 머리를 들고 관광객을 맞이합니다. 페르세우스는 승리자의 상징이고 잘린 뱀이 우글거리는 메두사의 머리는 사탄의 표상이며 승리자의 전리품에 불과합니다. 남자의 삐뚤어진 욕정의 피해자는 이제 당하는 장소에 의해 가중처벌을 받습니다. 장소가 아무리 성스럽다 한들 인간의 생명보다 더 귀하겠습니까? 오비드의 메두사는 잘못된 사회적 인습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메두사의 목을 들고 서 있는 페르세우스 동상

   

   성범죄는 남자 신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인간도 빠질 수 없죠. 이제 섹스범죄의 강도는 더욱 세져서 근친상간, 신체훼손, 복수, 살인 온갖 엽기적인 일들이 한 세트로 등장합니다. 6 권에 소개된 필로멜라 스토리가 이에 해당됩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트로키아의 왕 테레우스는 자신의 왕국에서 원군을 이끌고 출정하여 야만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위기의 아테네를 구해줍니다. 그 댓가로 아테네 왕은 테레우스에게 자신의 딸인 프로크네를 배필로 줍니다. 먼 나라로 시집간 프로크네는 남편인 테레우스에게 아테네에 살고 있는 동생인 필로메라를 보고 싶다고 애원을 합니다. 테레우스는 필로멜라를 데려오기 위해 아테네로 항해를 떠납니다. 테레우스는 처제인 필로멜라를 보자마자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졌습니다. 형부는 자신의 왕국으로 필로멜라를 데려온 후 처제를 수차례 반복하여 성적으로 착취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말을 못하도록 그녀의 혀를 잘라버렸습니다. 필로멜라는 천에다 자줏빛 글자를 짜 넣어 형부의 범죄를 새겨 언니에게 전달합니다. 분노한 언니는 복수를 위해 자신과 남편사이에 낳은 유일한 아들을 살해한 후 시체를 요리하여 남편이 먹도록 만듭니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격분하여 자신의 아내와 처제를 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편을 피해 달아나다 신의 도움으로 새로 변신 탈출에 성공합니다. 한 명은 나이팅게일이 되고, 다른 한 명은 제비가 되었고 합니다. 슬픔과 복수심 때문에 걸음이 빨라진 테레우스도 후루티라는 새로 변했습니다.   

   여태까지 다룬 피해여성들의 이야기의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당한 여성들은 피해 후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그들이 항변이 무시된다는 점입니다.  피해자가 동물로 신체 변형을 겪는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는 여성의 인간성 말살, 정체성 제거 등의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피해자인 여성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킨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동물로 변하는 순간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특징인 언어 수단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동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없는 인간이 가해자인 경우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성범죄 피해자의 혀를 잘라버리는 겁니다. 동물로 변형시키든 혀를 자르건 그 의미는 같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의사소통 수단을 근본적으로 없애 침묵을 강요하는 겁니다. 메두사의 비극적 운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메두사는 강간의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신체의 일부가 끔찍한 뱀으로 변하고 그것도 모자라 머리마저 절단 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녀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은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승리자인 페르세우스에 의해 전달됩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유일하게 언어 능력을 빼앗기지 않은 피해자의 예도 보았습니다. 바로 루카쏘에입니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피해자는 눈물로 호소하며 자신의 처지를 항변해보지만 아버지에 의해 묵살되고 목숨마저 빼앗깁니다. 성 범죄 피해자의 절규는 근본적으로 봉쇄되거나 아니면 무시됩니다.    

   

   그렇다면 여자가 남자를 쫓아가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남자가 주도하는 케이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끝을 맺습니다. 3 권에 삽입된  에코와 나르시서스의 사랑이야기에 반영된 내용입니다. 나르시서스는 요정 리리오페와 강의 신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누구나 좋아하는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여자도 그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에코는 다른 사람의 마지막 말만 반복하는 운명의 소유자로 등장합니다. 어느날 그녀는 나르시서스를 보았고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를 쫓아갔지만 그의 말을 반복하지 않곤 결코 그에게 말을 걸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나르시서스도 에코에게 말을 걸려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에코가 남자의 마지막 말만 따라했기 때문입니다. 에코는 나르시서스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거절당합니다. 이에 에코는 숲속으로 도망가서 숨어버렸습니다. 에코는 그를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신체는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뼈는 바위가 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그녀의 목소리 뿐입니다. 나르시서스도 사랑을 거절했기 때문에 신들은 그가 사랑하는 어떤 것도 가질 수 없도록 운명을 정했습니다. 여자를 쫓는 남자는 정복에 성공하지만 남자를 쫓는 여자는 공기처럼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뿐입니다. 에코와 나르시서스의 변형 이야기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뿐 『변형』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큰 틀로 보면 결국 같은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에코가 사랑에 실패한 근본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마지막 말만을 되풀이해야 하는 에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할까요? 이는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 이며 여자는 정체성이 없다는 로마시대 사회의식의 반영입니다.  

    에코와 나르시서스


   그렇다면 여자로서 원치 않는 남자의 성적 접근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오비드는 12 권에 나오는 카니스의 이야기를 통해 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젊은 처녀인 카니스(Caenis)는 바닷가에 산책을 갔다가 바다의 왕 넵튠에게 여자의 명예를 빼앗깁니다. 카니스의 순결을 더럽힌 바다의 신은 미안했는지 카니스에게 그 대가를 주겠다며 소원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남자로 만들어 달라고 빕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남자에게 강간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신체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하는 방법 뿐이기 때문입니다. 넵튠은 그녀를 카니우스 (Caeneus)라는 이름의 남자로 만들어 줍니다. 그는 나중에 위대한 전사로 거듭납니다. 남성 중심사회에서 태어나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은 여성들이 남자들을 얼마나 부러워했을지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비드의 『변형』이 나온 지 2000 여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현재의 우리 사회를 생각해 봅니다. 세상은 달라졌을까요? 최근 뉴스 중 무작위로 뽑은 성범죄 관련 헤드라인을 아래에 한번 정리해보았습니다.  


마리우폴 19세 성폭행 생존자 증언 ... 뉴시스 (2022. 06. 9)

등굣길 초등학생 80 대 남성 집 끌려가 성폭행.  KBS  (2022. 05. 13)

성폭력 의혹 00 교수 해임.   아트다 뉴스 (2022. 04. 21)

軍성폭력 연간 400건…왜 끊이질 않나.  CBS 노컷 뉴스 (2021, 07. 05)

前부총리가 성폭행"...中 테니스 스타의 충격 폭로.  중앙일보 (2021.11.03)

빌 게이츠, 성 추문으로 MS 이사회에서 쫓겨나.  한국경제 TV (2021. 05. 17)

두 딸 8년 간 성폭행 인면수심 친아버지에 역대 최고형.  뉴스 1 (2020. 04. 04)

연예계 성폭력 사건, 진상 규명하라”…여대생들, 법원 앞 시위.  여성신문 (2019. 03.24.)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스 로마의 신, 왕이란 명칭이 이제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 정당대표, 장교, 언론사 사주, 회사 대표이사, 검사, 의사, 교수, 연예 기획사 대표, 스포츠계 코치나 감독들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들도 피해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당한 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신체적, 직업적 약점을 겨냥한 금품제공, 좌천, 회유, 공갈, 협박 등 이에 해당 될 겁니다. 이런 성범죄자들의 2차 가해를 견디는 일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피해자를 동물로 변형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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